No. 1269 ]칼럼니스트[ 2006년 3월 3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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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 안전운행하려면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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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을 따고도 도로주행은 따로 배워야 했던 때, 방법은 대략 세 가지였다. 자동차학원에 다시 가서 배우거나 바로 차를 끌고 나가 자기 혼자 눈치껏 터득하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개인교습 하는 선생을 찾아가 배우는 방법인데 나는 이를 택했다.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은 선생은 놀랍게도 예순 살을 코앞에 둔 고령자였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으나 차마 내색은 못하고 차를 끌고 나가려는데 애들은 없느냐고 물었다. 초등학교 4학년 딸애하고 이제 막 입학한 사내녀석이 있다고 하니 뒷자리에  태우라고 했다. 애 엄마까지 태우면 더 좋은데 무슨 일로 바쁜 것 같으니 오늘은 애들만 태우자는 것이었다.
 
이 양반 보아하니 갈수록 산이었다. 멋모르는 애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지만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어서 벌레 씹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운전연습 자체가 위험한데 왜 애들까지 태우느냐며 불만이 많으시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 싶습니다." 이미 그 선생한테서 마음이 떠난 터라 무슨 말을 해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선생을 어떻게 물색할까 하며 머리만 열심히 굴렸다. 내 생각은 아랑곳 않고 그 양반은 말을 이었다.

'운전이란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위험도가 그렇게 높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운전 아닌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답은 안전운행밖에 없다. 그러면 무엇이 안전운행인가' 이런 요지로 얘기를 했지만 운전학원, 매스컴 등을 통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미 들었던 것들이라 심드렁했다. 도로주행이나 가르치면 될 것이지 새삼스레 웬 원론 강의인가하며 일이 꼬여도 고약스럽게 꼬였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차에 자기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물건이 있다는 생각을 늘 하면 안전운행은 저절로 된다. 관계 법률, 규칙, 요령들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 두고두고 아끼는 귀중한 것을 차에 함께 태우고 달린다는 마음이다. 이것이야말로 원칙중의 원칙이다. 그래서 연습첫날부터 당신의 애들을 태우라고 한 것이다. 앞으로 운전을 늘 이런 마음으로 하도록 하시오. 당신 생명 또한 그들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요'

이상한 노인이라고 속으로 투덜대던 불만이 나도 모르게 어느 새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에 이미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연습할 때부터 이처럼 애들을 태우면 나중에 혼자 다녀도 그 녀석들이 뒤에 있는 듯한 느낌이 몸에 밴다는 것이었다. 그 놈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항시 귀에서 맴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난폭운전, 위험운전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에는 적극 동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6.25 전쟁 때 입대, 미군부대에서 운전을 배웠다는 그 분은 이처럼 분명한 원칙 몇 가지를  가르치면서 그걸 시행하지 못하면 연습을 중단했다. 말하자면 퇴학처분이었다.

그 동안 수 백 명을 가르쳤는데 딱 두 명이 연습중단을 당했다는 것이다. 40대 후반의 어느 남자는 중학교 교감선생이었는데 브레이크 밟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 앞에 뭐만 나타나면 급브레이크를 밟는데 도가 지나쳤다. 초보 때는 누구나 그렇지만 그 사람은 달랐다. 앞쪽에 나타난 것들과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을 때는 주시해가면서 천천히 대응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도 급제동을 걸었다.
 
장애물과의 거리가 길고 짧음을 고려하지 않고 병적으로 마구 제동을 거는 성격을 보면 학교에서도 문제가 매우 많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들은 천천히 해도 될 일에 호들갑을 떨고 조바심을 극도로 나타내 다른 사람 특히 아래 사람들을 괴롭힌다. 거기에다 운전까지 하면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들볶을 터이니 아예 운전을 배우지 말라고 했다. 운전솜씨가 아니라 성격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으니 자신과 남을 위해서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진단이었다.  
 
또 한 사람 역시 초등학교 선생이었는데 여자였다.  연습 시간이 적절하지 않아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출근시간에 맞춰 연습을 나섰는데 학교 앞이 학생들로 붐벼 차가 들어가기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어떻게 비집고 나와 교문을 막 통과하려는데 어린이 서너명이 차 앞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그녀가 신경질을 바락 내며 경적을 크게 울렸다.
 
바로 여기서 그 여선생에게 퇴학처분을 내렸다. 경적을 함부로 울리지 말라고 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그 정도로 퇴학이라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는 항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의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떻게 자기 제자들한테 그렇게 난폭하게 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문부터는 학교이지 도로가 아닌데도 그처럼 우악스럽게 경적을 울려대는 것은 운전매너 이전에 선생으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학교 앞이나 운동장에서 그런 식으로 하면 막아야 할 사람이 교사다. 그런데 그 모양이니 운전 이전에 자기 직업의 윤리와 책임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따끔하게 한마디한 것이다. 앞의 교감이나 그 여선생이 자기 아니면 배울 곳이 없나 하며 얼마든지 다른 데서 배우겠지만 자기 말을 불쾌하게라도 기억한다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양반은 자동차 운전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길 안전운행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나는 퇴학은 면할 정도로 간신히 과정은 끝냈지만 자동차 운전보다도 그 양반이 가르쳐 준 인생길 운전 방법이 더 강하게 입력되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사랑하는 것들을 태우고 다니는 심정으로 침착하게 참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마침내 풀리게 마련이라는 그 분의 말은 강력한 지침이 되었다.

또 살아가면서 장애물은 언제나 있는 법인데 그때마다 무조건 호들갑을 떨며 브레이크만 밟을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대응하면서 밀고 당기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말 역시 뚜렷하게 마음에 새겨졌다. 그 분한테 운전보다 더 귀중한 것을 배운 것이다.

그 분은 연습기간이 일정하지 않아 사람에 따라 다르며 수강료도 미리 정하지 않고 끝나면 알아서 내라는 식이었다. 이것 또한 특이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셨다. 오늘 날 보기 드문 진정한 스승이시었다.

    - '아름다운 사람' 4월호 (20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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