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62 ]칼럼니스트[ 2006년 3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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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보고 달리 보면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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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직장생활을 하던 때였다. 어느 일요일 새벽,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심신이 넝마처럼 해어진 터라 휴일이라 해도 머릿속은 개운하지 않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다.
그렇다고 뭉개고 있을 수만은 없어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방향을 정하고 나섰다. 산자락에 들어서자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 기슭을 에돌았다. 천천히 나무와 풀숲을 헤쳐나가다 보니 새벽기운이 완전히 걷히고 아침햇살이 나무 사이로 퍼져들었다.
 반시간쯤 걸어 어느 곳에 이르니 낯선 산길이 나타나 잠시 주저앉아 망설였다. 어느 쪽을 택할까 하며 언뜻 보니 왼쪽이 오른쪽보다 더 아름다웠다. 달력에 나오는 그림 같은 길이었다. 그다지 깊거나 높은 산도 아니고 동네 주변에 있어 친숙하지 않은 길이 없는데 여태까지 이 길을 몰랐다니...
그 길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져 한참 앉았다가 그 쪽으로 꺾어들던 나는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처음이라고 의아했던 그 산길이 바로 늘 다니던 길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내 머리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어떻게 익숙한 길이 그렇게 생소하며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가.
더 올라갈 의욕이 사라져 그 자리에 다시 앉아 곰곰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심신이 피곤하다 해도 그런 착시현상은 이해할 수 없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등산객이 혼란스럽고 멍해진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 같아 혼자 얼굴을 붉혔다. 기운이 쭉 빠졌다.
그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흔한 것은 경험하지 않고 살피지도 않는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 일상을 뒤덮고 있는 낯익은 껍질을 벗긴 다음, 그것을 낯설게 하여 지각의 신선함을 되살리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라는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의 말이었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늘 다니던 산길을 으레 다니는 걸로만 알았지 길을 진정으로 속속들이 체험하거나 깊고 넓은 마음으로 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다녔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날 아침 우연히 다른 시각으로 고쳐 보게되면서 평소 몰랐던 그 길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늘 다니던 산길에서 쉬클로프스키가 정의한 일종의 예술행위를 경험한 셈이었다. 나름대로 해답에 근접하자 어리둥절하여 가라앉았던 기분이 다시 나아졌다.
이어 나를 괴롭히는 갖가지 스트레스도 시선이나 시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산길처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고 여러 모로 접근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평범한 진리가 나와 무관하거나, 어렵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출근길 발걸음은 평소와 달랐고 회사일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그 산길처럼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방법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익숙한 것을 고쳐 보며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 일은 꼭 그런 유명 학자의 이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고개를 숙여 가랑이 사이로 보면 늘 보던 것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꾸로 서있어 신기해하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처럼 흔한 사례가 있음에도 어른이 돼가면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또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인가 추석이 이틀 지난 뒷날 밤, 우리들은 동네 뒷산에 올라갔다. 산은 낮에만 올라갔지 밤에 올라간 일이 없었는데 명절 기분에 들떠 그랬다. 달빛으로 멱을 감고 있는 산뿐만 아니라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비로웠다. 멀리 산아래 누워있는 우리 동네도 항시 보던 마을, 조금 전에 우리가 있었던 그런 마을이 아니었다. 달빛 속에 가라앉은 초가마을은 마치 동화 속의 나라 같았다. 가난, 다툼, 욕설, 질투 등 추한 것들이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호우의 '달밤' 중 "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 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뵙니다" 라는 구절의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정신 없이 쫓기며 사느라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런 경험들이 이날 아침 산길에서 오랜만에 재생되었다. 쉬클로프스키 이론 같은 것들도 관념적인 것, 실제와는 먼 것으로만 입력되어 있다가 그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친밀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런 체험은 산길, 달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행처럼 낯선 곳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꼭 비용을 들여서 해야 하는 여행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일상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먼저 항시 다니던 길을 예로 들어보자. 그 길을 평소와 다른 시간에 지나보고, 다른 시각으로 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그저 다니기만 했지 그 속살을 접해본 적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길을 고쳐 보고, 달리 보면 전혀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어느 작가는 단골로 다니는 서점에서도 그런 것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다. 서점이란 온 세상의 축소판인데, 사람들은 자연히 자기와 관련된 코너만 찾으며 그곳으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가지 않던 코너에 가보면 예상 못한 새로움을 만날 수 있고, 그것은 또 다른 행복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은 여행인 것이다. 항시 생기가 넘치는 시장, 특히 재래시장에서도 비슷한 체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또 미국의 어떤 인생상담가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여러 가지 들었는데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가능하면 날마다 동이 트는 광경을 보라는 것이었다. 으레 오고 가는 듯이 보이는 아침과 저녁에 이런저런 이유로 지나치던 것을 새롭게 보면, 분명 삶의 활기를 강하게 느낄 것이라고 했다.
 동이 트는 것을 보려면 먼저 고요한 새벽을 보아야 한다. 인공 건조물이 가능한 적은 곳이라면 더욱 좋다. 새벽뿐만이 아니다. 평소 잊고 살던 황혼과 노을도 매일 볼 수 있다면 고단한 일상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꼭 보지 못해도 좋다. 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삶과 마음 속의 노폐물을 상당히 걸러낼 수 있을 것이다. 지친 세상살이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은 이처럼 평범한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

   '아름다운 사람' 3월호 (20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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