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57 ]칼럼니스트[ 2006년 2월 2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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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근성 못 버리는 네티즌과 언론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이 추운 겨울철,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던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의 결혼식이 진짜가 아니라 가짜였음이 드러나 우리를 황당하게 만들고 있다. 고아로 자란 20대 젊은 남녀가 "형편이 되지 못해" 서로 처음 만났던 지하철 5호선에서 올린 가슴 뭉클한 결혼식은 뜻밖에도 연극학도들이 벌인 '상황극'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언론에서는 '철없는 장난에 널뛴 냄비 인터넷'이라는 등의 제목으로 네티즌들의 행태를 꾸짖고 있다. 네티즌들 역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연극을 꾸몄던 학생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마구 퍼붓고 있다. "아무리 좋은 뜻에서 벌인 연극이었다고 해도 사실을 밝혔어야 했다"는 것이다.

화가 난 네티즌들은 당사자들이 다니는 호서대 홈페이지를 비롯해 각종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온갖 악의적인 댓글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문제의 학생들을 처벌하자"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순식간에 찬사가 비판으로 돌변해버린 것을 보면 언론과 네티즌 둘 다 냄비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학업의 차원에서 벌인 상황극을 벌인 6명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큰 파문을 일으키자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들은 교수의 입을 빌어 "더 이상 지하철 결혼식 연극으로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본의 아니게 이런 결과가 빚어진 데 대해 사과했다. 학교 측은 그러나 학생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언론과의 접촉을 막고 있다.

지난 14일 처음 이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자 감동 먹은 네티즌들이 잇달아 댓글을 올렸고, 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식'이라는 등의 미사여구를 써가며 이를 보도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호들갑을 떠는 네티즌과 언론이 자신들의 냄비근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도시철도공사에서는 '결혼식 주인공을 찾는다'는 공고문을 9곳의 인근 지하철역 매표소에 내걸었고, 네티즌들은 '지하철 커플 신혼여행 보내기'나 '축의금 주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브리핑 도중 이들을 격려하는 시를 낭송할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결국은 이들 모두가 책임 없이 떠드는 네티즌과 언론의 호들갑에 휘말린 셈이다.

네티즌들이 주장대로 과연 지하철에서 연극을 한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네티즌들은 "어렵게 살아온 고아 운운"하면서 상황극을 벌인 것은 진짜 고아를 욕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그 결혼식이 가짜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밝히지 않은 것이 나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피해자는 누구로 보아야 할까. 어렵게 자란 고아출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보다 더 큰 피해자는 학생들인지도 모른다. "각박한 세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기 위해 상황극을 꾸몄다"는 그들이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은 그들이 무슨 큰 범죄나 저지른 듯이 뭇매를 가하고 있다.

어떤 네티즌은 "그냥 좋은 연극 한 번 보았구나 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난리법석인지 모르겠다"며 "웃어서 좋고, 울어서 좋고 깨닫게 해 주어서 좋고, 그럴 가능성을 열어 준 것도 좋고, 젊은이의 용기도 좋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학생들이 학업이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인 만큼 이를 긍정적으로 보아야지 이처럼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학생들은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게 실제상황이 아니라 연극이라고 말하는 게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본의 아니게 속인 것 같아 죄송하다"며 사과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나쁘다고 나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처사라고 하겠다.  

필자는 연극을 벌이고도 실제상황인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학생들의 처신을 나무라는 것에는 반대입장이다.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이들이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꾸민 연극이 연극인지도 모르고 감격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네티즌들과 언론들의 경솔한 태도에 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네티즌들과 언론들이 이런 행태를 보여 준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 4월에 있었던 '떨녀 신드롬'과 6월에 있었던 '개똥녀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개똥녀 사건에서는 네티즌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장본인을 욕하고 얼굴까지 노출시킨 채 인터넷사이트 여기 저기에 퍼다 나름으로써 '인격살인'을 저지르는 횡포를 부렸다.

불난 데 부채질한 것은 언론이었다. 신문과 방송들은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할 때 "인터넷에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내린 여성이 있고, 이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에 담은 네티즌이 게시판에 올렸는데 네티즌들은 지금 이 여성을 '개똥녀'라고 부르면서 비난하고 있다"며 아주 객관적(?)으로 보도했다.

그 것이 언론의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네티즌들이 '개똥녀'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사실보도'만 했을 뿐이다. 언론은 결국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게 하면서 사건을 더욱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잠시라도 '개똥녀'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살폈다면 사태가 그 지경까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이버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올바른 정보가 넘쳐흘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불확실하고 선정적인 정보로 가득 차 있고, 이런 정보를 접한 네티즌들은 흥분부터 먼저 한다. 이런 사실을 보도하는 언론도 덩달아 흥분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가짜 결혼식'사건은 우리 사회의 냄비근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네티즌과 언론은 이제 쉽게 흥분하는 습성을 버리고 매사를 차분하게 보는 안목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어느새 현실공간이나 다름없게 된 인터넷세상을 우리들의 바람대로 밝고 명랑하게 만들 수 있다.

-200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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