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54 ]칼럼니스트[ 2006년 2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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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을 뛰어넘는 평범한 진리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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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사람들의 호와 자, 또는 요즘 사람들 이름 가운데에서 '기백(己百)'이나 '기천(己千)'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글로 보면 별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은 흔한 이름 같지만 한자로 보면 이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세파를 헤쳐나가는 용기와 원리를 제시하는 매우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중용'에서는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물으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구별하여 독실하게 행하라'고 한 뒤 '인일능지 기백지, 인십능지 기천지(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비범한) 다른 사람이 어느 일을 단번에 해낼 때 (평범한) 자기는 좌절하지 말고 백 번이라도(또는 백 배 노력을 해서)시도해서 이루어내며, 다른 사람이 열 번에 해낼 때 자신은 천 번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비록 어리석다 하더라도 반드시 총명해지고, 유약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날 선비나 우리 조상들은 이 말을 매우 좋아해서 '기백' '기천' 등을 따다가 이름이나 호로 삼기를 좋아했다. 자녀나 후손이 뛰어난 천재나 수재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꾸준히 노력하여 평범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기원한 것이다.

천재, 수재 등이 역사와 인류발전에 기여한 역할과 공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은 소수의 엘리트만으로 꾸려나갈 수 없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이 엘리트들의 총명에 못지 않은 공헌을 해왔다. '기백'이나 '기천'은 바로 이 점을 중시하여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이다.

반면 이른바 잘난 사람들 즉 비범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 뛰어난 사람들은 대개 자기 머리를 믿고 노력을 그다지 하지 않으며 자만심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창시절을 예로 들면 보통 학생들보다 덜 애써도 성적이 좋게 나오고, 명문학교에 어렵지 않게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얕보는 못난 성격이 형성되기 쉽다. 이는 자신만의 손해가 아니라 남에게 끼치는 해 또한 적지 않다.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해 독단에 빠지기 쉽고, 조직의 다른 구성원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자신은 암적인 존재로 타락하고 소속집단은 그런 이들 때문에 능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꾸준한 노력 끝에 성취한 것을 진정으로 축하하지 못하고 '학교 다닐 때는 나보다 떨어졌는데 뭘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 '나는 어느 명문학교를 다닐 때 그 친구는 별 볼일 없는 학교를 다닌 정도였다'며 비난하거나 그 성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추태를 보인다. '기백'과 '기천'의 정신을 체득하지 못한 탓이다.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배우고 사자성어를 익히기 위해서 '우공이산(愚公移山)' 같은 말을 열심히 외었으련만 시험지 메우는 걸로만 끝났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 라는 '우공이산'은 '열자' 탕문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산이 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부터 후손대대로 이어가며 산을 파 옮기겠다는 어리석은 영감의 투지에 놀라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 주었다는 우화다.

쉬지 않고 꾸준히 하면 마침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이 말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비범한 사람들에게는 자기보다 못하다고 믿는 이들이 끊임없이 뒤쫓아오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다.

삼국시대 오나라 주유가 죽으면서 '하늘은 왜 제갈공명을 내고 또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가'하고 한탄한 것으로 묘사돼 있다. 주유도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공명을 도저히 당해내지 못했고, 위나라의 사마의도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라는 비웃음의 주인공이 됐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견디다 못해 그를 살해한 뒤 '저렇게 천하고 더러운 모차르트에게는 천재적 재능을 주시고 저에게는 그걸 알아보는 눈만 주셨습니까?,라며 한탄한 살리에르의 호소도 주유와 같은 맥락이다. 살리에르는 신에 대한 그의 항의가 '보통사람들을 대변한 것'이라고 절규하여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재능이 뛰어나지 못한 이들의 비애가 뭉텅 묻어 나오는 피울음이다.

그러나 주유는 능력이 공명 못지 않았고, 사마의는 공명의 죽음을 예측하고 있다가 촉을 멸망시켰다. 살리에르 역시 우수한 인물이었다. 제갈공명과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강조하기 위해 삼국지 작가 나관중이나 '아마데우스' 극본을 쓴 피터 셰퍼가 창작한 것이다. '기백' '기천'의 정신보다 천재성에 중점을 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이 때문에 기죽을 필요는 없다. 단 '인일능지 기백지...'라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교육마당' 2월호(20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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