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48 ]칼럼니스트[ 2006년 1월 1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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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진정한 힘이 되려면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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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의 내용을 모두(그대로) 믿는다면 그런 책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盡信書則不如無書)'. 이는 중국 전국시대 진보적 사상가였던 맹자가 한 말로 여기서 말하는 책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서경'을 가리킨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폭군 주왕을 정벌하러 간 장면이 서경에 기술되어 있는데 맹자는 여기에 실제와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며 그 중에서 큰 뜻만  취하겠다고 했다. 경(經)이란 성인이 저술한 책으로 누구도 고치거나 부인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어 지금도 그 영향이 적지 않다. 기독교의 성경, 불교의 불경이란 용어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러니 맹자 당시에는 오죽했겠는가. 따라서 그 파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말은 후세의 명언으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단 책은 서경뿐만 아니라 모든 책으로 확대되었으며 나아가 지식이라는 말로도 대치되고 있다. 즉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말에 '아는 것을 다 믿으면 힘이 아닌 병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결정적 물꼬를 터 준 조나라의 조괄은 아는 것이 병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재앙임을 입증한 불행한 장군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병법을 열심히 공부해 어느 누구도 그의 이론을 당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뛰어난 장군인 아버지 조사도 아들의 해박한 지식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들을 장수로 기용한다면 조나라는 망할 것이라며 걱정을 많이 했다. 전쟁터는 목숨을 내건 사지로 예상치 못한 일과 변화가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병법이론만 앞세우며 자신만만해 할 아들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조나라는 기어이 조괄을 기용했고 아버지 우려대로 진나라 백비에게 대패, 장병 40만 명이 생매장되는 비극을 초래했다.
'조괄의 병서'라는 속담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맹자 말대로 조괄에게는 병서가 없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배수진'으로 유명한 한나라 장군 한신은 정반대였다. 그가 조나라(통일 진나라가 망한 이후 생긴 다른 조나라)와 전투를 할 때 강을 등지고 싸우는 배수진을 택했다. 이는 손자병법에서 위험한 것으로 지목했기 때문에 조나라 군사는 물론 한신의 부하들까지도 병법을 모르는 무식한 짓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대승을 거두었다. 부하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도 병법에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다. 병법에‘죽을 곳, 망할 곳에 있어야 생존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웠는데 그들을 죽을 땅이 아닌 살 수 있는 땅에 두었다면 모두 달아났을 것이다"
한신은 조괄처럼 병서를 기계적으로 외우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깊고 큰 뜻을 헤아려 독창적으로 소화한 것이다. 그야말로 아는 것을 자신의 힘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활자, 전파매체 등을 통해 얻은 지식을 전적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선진국의 이론이라면 우리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숭상하기에 바쁘다. 거의 맹목적이다. 교육현장에서도 이런 흐름이 없지 않다. 교과서적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면 그 학생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데 정신을 판 녀석' 쯤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면 입시준비에 많은 차질이 생기므로 학부모 역시 '시험에 나오지도 않을 것에 신경을 쓴다'고 펄펄 뛰기 마련이다.
'근사록'에 '배우는 사람은 먼저 의문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學者先要會疑)'라는 정이천의 말이 있다. 즉 배우면서 의문을 품지 않고 그대로 외우기만 하면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19세기 영국 재상을 지낸 정치가이자 소설가였던 디즈레일리가 "단 한 권의 책 밖에 읽은 적이 없는 인간을 경계하라"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아는 것이 절대 필요하지만 그것을 맹신하면 본인은 물론 주변에 끼치는 해가 막대하다는 말이다.
상대성원리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은 누구나 말을 하지만 그 출발이 의문에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사람은 드물다. 3백년 동안 불변의 진리로 군림한 뉴턴의 고전물리학 아성을 무너뜨린 것은 그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의 많은 학자들이 기존의 물리학에 갇혀 진전을 보지 못하던 빛으로부터 한 걸음 앞으로 나온 그는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견지하여 '빛의 속도는 불변이다'라고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기존의 지식에 대한 의문과 거기에서 싹튼 창의성의 결과였다. 현대의 문을 열었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은 여기에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이어졌다. 그가 그렇게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현대는 아직도 먼 곳에서 서성거리고 있을지 모른다.

'교육마당 21' 1월호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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