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43 ]칼럼니스트[ 2005년 12월 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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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하객에게 식사비 주는 '부산방식' 좋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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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사를 앞둔 부모로서 매우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가 피로연이다. 어느 수준으로 음식대접을 하느냐는 것이 커다란 숙제가 된다. 돈을 적게 들이면 맛이 없으니 하객들의 비난을 살 것이고, 돈을 많이 들이자니 부담이 커진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능력보다 조금은 높은 수준에서 음식준비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결과는 시원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의 경우 떡과 과일, 소주, 사이다에다 김치, 잡채, 부침개 등 반찬이 나오지만 맛이 그저 그렇다. 나중에 나오는 갈비탕이나 설렁탕 역시 수준미달이다. 먹고 나면 욕이 나올 지경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호텔에서 하는 결혼식은 어떨까. 갈비탕만 주는 경우보다 낫다. 그러나 호텔식사라고 해서 맛도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객들은 특히 얼마짜리 식사인지를 알고는 곧 실망하게 된다. 적어도 5∼6만원, 많게는 10만원 안팎인데 맛은 돈의 가치를 따라가질 못하기 때문이다. 혼주로서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하객들이 만족스러워하지 못하게 되니 억울(?)한 일이다.

한라라당 안상수 의원이 결혼식과 관련하여 특급호텔에서의 결혼식을 금지하는 관련법률 개정안을 낸다는 소식이다. '특급호텔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여러 차례 충격을 받은 것이 동기라고 한다. 중앙일보 김진 정치전문기자는 오늘(19일) 신문의 칼럼에서 안 의원이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점점 더 심해졌다. 7만원 하던 특급호텔 점심이 10만원, 15만원으로 뛰었다. 최근엔 '수백 명 한정'으로 20만원 짜리까지 등장했다. 식사뿐만이 아니다. 안 의원이 참석한 어느 특급호텔 결혼식은 꽃값이 1900만원이었다고 한다.』

김기자는 이어 "그는 호텔들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수익만 생각해 호화 결혼식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호텔협회는 그를 찾아가 '법으로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자율로 조절하겠다'고 했다. 일종의 항의였다. 안 의원은 입법을 강행하겠다고 했다."고 쓰고 있다.

안의원의 이 같은 생각에 대해 "법으로라도 막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반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론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자기 돈 자기가 쓰는데 무슨 규제냐"라든가, "문제가 있어도 캠페인 같은 걸 해야지 법으로 막을 일인가"라는 비판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산방식'은 아주 괜찮아 보인다. 음식대접을 하지 않고 아예 하객들에게 '식사비'를 주는 방식이다. 하객들은 혼주가 주는 돈으로 마음에 드는 음식을 사먹으면 된다. 타지 사람들은 "그래도 음식을 대접해야지 돈을 주는 것은 삭막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부산사람들은 그런 방식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맛도 없는 예식장 음식을 어쩔 수 없이 먹는 것보다 백배 나은 일이 아닌가. 그야말로 실속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몇 명이 이 돈을 모으면 좋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돈만 주는 혼주가 미운 게 아니라 오히려 고마워진다.

'부산방식'을 서울에서 써먹기는 사실상 어렵다. 정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맛이 있으나 없으나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결혼식에서의 오랜 전통이다. 그 것을 서울사람들이 쉽게 깨뜨릴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만 말하고 싶지 않다. 하객들에게 음식 대신 돈을 주는 행위는 일단 '현실적'이다. 그리고 매우 '이성적'이다. 잘 알려진 대로 부산사람들은 현실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못하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마도 무모하다싶을 정도로 밀어붙이기 좋아하는 부산사람 특유의 기질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싶다. 피로연의 불합리성과 불편함 등을 뼈저리게 느낀 어느 혼주가 용기를 갖고 '맛없는 음식' 대신 '쓸모 있는 돈'을 하객들에게 제공(?)했을 것이다. 이를 받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돈으로 때운다"며 욕을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괜찮다는 생각에 하나 둘 이런 방식을 택하면서 관행으로 굳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상수 의원의 지적대로 부산에서도 호텔결혼식은 돈이 많이 든다. 비싼 음식을 제공하는 혼주도 있다. 그러나 식사비를 주는 경우가 더 많다. 혼주로서는 비용이 다소 적게 들고, 하객들도 그런 방식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하객들에게 식사비를 제공하는 '부산방식'을 적극 권유하고 싶다. 이런 제의에 많은 사람들이 예절에 어긋난 일이라고 비난을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배금사상(拜金思想)이나 금전지상주의에 사로잡힌 발상이라고 욕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 30여년을 살았던 필자로서는 서울사람들의 정서가 어떤지를 잘 알고 있다. 서울사람들은 분명히 부산사람들보다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래서 부산방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누구 용기 있는 사람은 없는가. 딱 한번만 시행해 보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처음에는 "형편없는 혼주"라는 비난의 소리를 듣겠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것 참, 괜찮은 방식이군"이라면서 웃을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그런 분위기라면 기대해봄직도 하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이라도 문제가 많으면 깨지기 마련이다. 부산사람들에게도 결혼식에서의 음식제공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식사비제공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돈도 적게 들고 편리하니까. 한마디로 현실적이니까.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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