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42 ]칼럼니스트[ 2005년 12월 1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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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주는 한국 언론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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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파문''이 파문의 차원을 엄청난 위력을 지닌 쓰나미(지진해일)로 급변했다. ''줄기세포는 없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과학계는 물론 황우석 박사의 연구성과를 믿었던 국민들도 망연자실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들은 앞을 다투어 이 문제와 관련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골자는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엉터리로 판명 났으니 그는 사이비 과학자로 전락했고, 과학계도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15일은 우리나라 과학계의 국치일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박사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던 언론들은 이처럼 태도를 180도로 완전히 바꾸었다. 미즈메디 병원 노성일 이사장의 ''폭탄발언''을 완전히 ''진실''로 인정하고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노이사장의 발언에 얼마만큼의 진실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언론의 이런 모습들은 마치 들판의 소떼들이 늑대 한 마리를 보고는 놀란 나머지 우왕좌왕하는 광경을 연상시킨다. 방송사 주변에 서성거리던 10대 청소년들이 청춘스타가 나타났을 때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면서 발광이라도 할 것 같은 행동을 보여주는 형국이다.

우리 언론들에 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경마저널리즘(Horse race journalism)''의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용어는 선거 보도를 할 때 후보자의 득표 상황만을 집중 보도하는 것을 뜻했으나 지금은 ''진실에 바탕을 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가 생명인 저널리즘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 본질을 외면한 채 단순히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것''을 지칭한다.

언론에서 선거보도를 할 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여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을 도와야 하는데도 (각 후보의 득표 전략 및 전망, 득표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누가 앞서고 뒤지는가 만을 보도함으로써 유권자로 하여금 경마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는 점에서 그런 용어를 붙였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내용이 ''사이언스''에 실리게 되자 우리나라 언론들은 여지없이 경마저널리즘의 양상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황우석 영웅만들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다가 MBC PD수첩팀이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취재윤리를 어겼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일제히 ''윤리''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하기 시작했다.

황교수팀의 연구내용에 대한 보도가 ''경마저널리즘 보여주기''의 제1라운드였다면, PD수첩팀의 취재윤리에 대한 보도는 제2라운드였다고 할 수 있다. PD수첩팀이 궁지에 몰리자 일부 신문에서는 ''언론이 황우석 교수의 난자에 대한 의혹을 전혀 다루지 않고 찬양일색으로 ''황우석 신드롬''을 일으켰다''며 그들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자세를 나무라서는 안 된다고 옹호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언론들은 또다시 경마저널리즘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이렇게 되면 제3라운드가 되는 셈이다. 복싱이나 야구 등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경기를 벌이는 라운드가 정해져 있는데 언론에서는 그런 게 없으니 몇 라운드에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을 맞고 있다. 어떤 사람이 ''중대발언''이나 ''폭로''를 하면 제4라운드에서 서로 치고 받을 것이 분명하다.

경마저널리즘의 선두주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MBC이다. PD수첩팀은 15일 저녁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편을 방영하면서 실험결과의 재검증 과정 등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면서 ''체세포 핵이식 배아줄기 세포는 하나도 없다''고 못박았다. 너무나 확신에 찬 결론이어서 시청자들이 오히려 어리둥절해 할 정도였다.

필자가 분개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MBC는 며칠 전 분명히 ''제2탄은 일단 방영하지 않기로 했다''고 국민들에게 밝혔었다. 하지만 ''그래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며 적절한 때가 되면 방영할 수도 있음을 내비치기는 했다. 그러나 불과 며칠만에 자신들이 공언했던 말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이사장의 말은 어디까지나 주장이지 아직은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MBC는 또 한번 뻔뻔스러운 짓을 저질렀다.

''그래도 MBC가 싫은 건 왜 일까? 그래, 황우석 교수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다. 그들의 이 같은 교만스런 모습을…. 옳거니 하면서 특집방송 내보내고. 이 일 뿐이랴. 좀 더 기다려주고, 좀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는 없는 것인가.'' 한 네티즌이 오늘 아침 대형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이 네티즌의 시각은 정말 예리하다. MBC가 취한 ''행동''에서 ''교만''을 보았던 것이다. 교만이야말로 언젠가는 파멸을 가져다주는 독소가 아닌가. 그런데도 PD수첩팀은 기적(?) 같은 대역전의 승리에 도취되어 독이 묻었을지도 모르는 술잔에 ''승리주''를 담아 퍼마시고 말았다.

MBC는 가증스럽게도 마음에 없는 제스처까지 썼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 ''취재윤리를 위반해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자신들이 짐짓 ''취재윤리''를 어기고 취재를 한 사실이 매우 잘못된 것이고, 그래서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는 ''진실을 알리기 위한 언론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취재윤리에 어긋난 짓을 한 사실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면, MBC는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다. 노이사장의 발언에 대한 보도나 논평은 하더라도 그들이 준비했던 ''특집''은 어제 저녁 당장 방영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도리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각(馬脚)을 드러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간사하게 숨기고 있던 본심, 즉 결코 죄송스럽게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내용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은 조만간에 밝혀질 것이다. 만약 엉터리였음이 밝혀진다면, 그때 가서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이 같은 노력을 했노라''고 큰소리 치면서 ''특집''을 내보내는 것이 순서였다. ''취재윤리''에서 자유스럽지 못한 MBC가 15일밤에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었다.

다른 매체들이 보여주는 경마저널리즘도 가관이다. 그야말로 확신에 찬 보도를 마음껏 하고 있다. MBC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조금도 뒤쳐지지는 않는다. 「침통한 과학계, ''한국과학 이미지 실추 걱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비교적 객관적이다. 「MBC, 나락에서 탈출…기사회생 계기되나」같은 기사는 그래도 차분한 편이다.

어떤 인터넷매체는 아예 「PD수첩, 125년 전통 美사이언스 넘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 매체는 ''과학은 사실의 영역이다. 검증되어야 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사이언스는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함으로서 백년이 넘게 쌓아온 권위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는 ''황우석을 잃었지만, PD수첩을 통해 진실을 얻은 것이 이번 사태의 유일한 위안''이라는 말로 기사를 맺고 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일을 마치 결론이 난 것으로 전제하고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기사화하고 있다. 무엇을 근거로 벌써부터 ''MBC PD수첩이 125년 전통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과학잡지 사이언스를 눌렀다''고 쓸 있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더욱이 ''과학은 검증되어야 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언론 역시 검증되고 확인되지 않은 것을 사실로 단정하고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한 일간지가 실은 기사는 더욱 어이가 없다. 「황교수 논문 가짜라면 검찰수사 불가피」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는데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에 대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남에 따라 검찰의 수사착수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썼다. 검사들이 뭐가 답답해서 수사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인가. 국민이 지금 관심을 기울이는 일 또한 연구결과의 진위여부이지 검찰의 수사여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는 언론보다는 네티즌들이 훨씬 현명한 것 같다. 노이사장의 ''폭로내용''이 보도되면서 맨 먼저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바로 네티즌들이다.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네티즌도 있지만 많은 네티즌들은 이 문제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차분하게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D수첩팀을 비난한 점에 대해 사과하고 용기 있는 보도에 감사드린다''고 말하는가 하면, ''줄기세포가 있다는 황우석 박사의 말을 믿어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필자는 황우석 교수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단을 미루어야 한 다는 입장이다. 그때 가서 칭찬을 하든, 비난을 하든 전혀 늦지 않다. 만에 하나 황교수의 연구내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신문들은 제4라운드의 경기를 치를 것이다. 경마저널리즘은 우리 언론의 속성이므로.

그때는 또 어떤 양상이 벌어질는지 걱정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우리는 한 사람의 능력있는 과학자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누구 말대로 황우석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비록 업적을 올리려는데 쫓긴 나머지 다소 연구업적을 부풀렸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더라도 황교수에게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가 남긴 업적이 크고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한국 과하계의 국치일이 아니라 잔칫날이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 과학계가 자정작용을 잘 갖추고 있음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가 있으나 없으나 갈길이 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상당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피츠버그대 의대의 설대우 교수가 연합뉴스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설교수는 ''한국은 인간생명 관련 연구의 허용폭이 넓고 기술도 갖추고 있어 줄기세포 연구 여건이 매우 좋아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황교수가 그동안 성취한 연구내용을 보면 줄기세포 연구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설교수의 말대로 황교수가 이룩한 성과를 잘 활용하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언론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있는 경마저널리즘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경마저널리즘에 몰입한 나머지 나라체면과 나라이익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이건 ''진실보도''와는 전혀 별개의 얘기이다. 욕심 같지만 우리나라 언론들이 보다 차분한 자세로 이번 사태를 보도해주었으면 한다.

-<200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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