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40 ]칼럼니스트[ 2005년 12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애들이나 어른이나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영어권 국가의 한 교민은 한국, 일본 등지에서 언어 연수차 오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의 일부에 참가하고 있다. 어린이들을 일주일간 자기 집에서 묵게 하며 인근 초등학교에 배치하여 학교생활을 실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부터 한국 애들만은 받지 않기로 했다. 영어연수를 나올 정도면 부유한 집 애들일텐데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너무 무례하고 버릇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연수 기관으로부터 애들을 배정 받아 집으로 데려오면 한국 애들은 대부분 '이 집 몇 평짜리예요?' 하고 묻는다는 것이다. 애들 질문을 무시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대강 알려주면 곧 '그러면 집 값이 얼마예요?'라는 질문이 따른다.

무례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참고 응대해주면 서울의 자기 집과 비교하여 자기네보다 싼 집이라는 확신이 들면 자기를 내려다보는 눈치가 역력하다. 그 교민도 본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오고 직장의 해외지사에서 근무하다 그대로 정착을 해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런 반응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민다.

이어 자기 차를 보고 '이렇게 헌 차를 왜 끌고 다녀요?' 하는 질문에는 폭발직전까지 간다. 고급차는 아니지만 자기 수준에 맞고 그렇게 낡은 것도 아닌데 애들은 한심하다는 얼굴이다.

집안에서의 행동도 그렇다. 이 교민이 가장 질색인 것은 음식이 조금만 맞지 않으면 '나 이것 안 먹어' 하며 숟가락을 탁 놓는 것이다. 아무리 애들이라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가 전혀 없다.

다른 나라 애들은 정반대이다. 특히 일본 애들은 자기들이 이 집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먼저 묻고 그래도 폐를 끼칠까 봐서 매사를 조심한다. 집주인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규칙들을 철저히 익히고 어쩌다 실수를 하면 안쓰러울 정도로 사과한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도 집주인을 생각해 먹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래도 모국의 애들이라 이런 차이를 보고도 꾹 참아 왔는데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아예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한국출신이 한국 애들을 안 받는다고 하자 연수기관이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적당히 둘러댔다.

이를 전해들은 다른 사람이 한국과 일본 애들이 어른이 되는 날 어떻게 될까하고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어른들도 그 애들과 다를 게 없다고 대답했다. 아니 어쩌면 그래도 애들이 어른들보다 더 나을지 모른다.

언젠가 덴마크, 네델란드 등지를 가는데 일행 중에 사업가들이 상당히 있었다. 이런 나라들의 오래되고 낡은 건물을 보자 이구동성으로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 같다고 흉을 보는 것이 아닌가. 동행한 일본인들은 잘 보존된 그들의 건물 등에 관심을 보이는데 우리는 그랬다. 옆에서 듣다못해 이 나라들의 국민 일인당 소득이 우리의 3배를 넘는다고 하니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면 왜 이렇게 사느냐고 반문했다.

빈곤과 검소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통보존을 후진 것으로 아는 이들과 더 이상 말할 의미가 없어 입을 닫고 말았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그런 어른들과 연수하러 간 어린이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콩 심은 데 콩이 났을 뿐이다.

최근 정부가 처음으로 해외의 '추한 한국인' 대책회의를 가졌다. 술주정. 성매매. 조직폭력 등 해외에서의 각종 추태와 범죄를 근절할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앞에서 거론한 어린이와 어른들 행태는 문제 축에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추한 한국인'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작은 것 같지만 남의 나라에 가서 매사를 돈으로만 따지고 무례하게 구는 이런 행동에서 이미 싹튼 것이다.

[한국EMC] 사보. 2005 겨울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