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38 ]칼럼니스트[ 2005년 12월 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글보기 | 거시기머시기 | 손님칼럼 | 배달신청 | columnist.org(홈) |

기자저널리즘과 PD저널리즘의 차이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MBC PD수첩팀이 ''황우석 파문''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PD저널리즘''이라는 용어가 키워드로 등장했다. 아울러 ''기자저널리즘''이라는 용어도 관심을 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자저널리즘''은 어느 정도 알듯하지만, ''PD저널리즘''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PD저널리즘은 처음부터 없는 저널리즘이다. 기자저널리즘도 그렇다. 그냥 저널리즘이 있을 뿐이다. 저널리즘이란 간단히 말해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보도(報道)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일, 즉 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사람을 저널리스트라고 말한다. 보통은 기자(記者)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왜 ''PD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저널리즘이 기자들의 영역이다보니 이것과 구별하기 위해 이런 용어를 만든 것이라고 하겠다. 이 용어는 순전히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국산품''이다. 그러니까 PD들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하면서, 아니 기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생긴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자저널리즘''과 ''PD저널리즘''이 어떻게 다른지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1. ''기자저널리즘''은 적자(嫡子)이고, ''PD저널리즘''은 사생아이다.

기자저널리즘은 출생의 근본이 분명하고, PD저널리즘은 그 근본을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권위주의가 무너진 1990년대 이후 PD들이 ''잘못된 시대상을 바로 잡겠다''며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PD저널리즘이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군사정권의 언론정책에 따라 태어났으며, 이에 '원죄'가 있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초반 제5공화국 정부가 정권 홍보를 위해 방송사에 강요해서 만들게 한 것이 바로 PD들이 취재와 연출을 병행하는 PD저널리즘이라는 것이다.

후자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쨌든 PD저널리즘은 비정상적으로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탄생과정이나 배경이 불확실한 것도 PD저널리즘이 ''사생아''라고 보는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 사생아가 덩치가 커지더니 급기야는 엄청난 ''사고''를 친 것이다.

2. 기자저널리즘은 취재전문가들의 일이고, PD저널리즘은 비전문가들의 일이다.

기자는 보통 6개월 이상의 가혹한 수습기간을 거친다. 군대 신병훈련도 이보다 더 혹독할 수는 없을 정도이다. 수습기간에 배우는 것은 취재방법과 기사작성법 등이다. 취재윤리를 익히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를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다.

수습기간이 끝나면 ''꼬리''를 떼어주고 ''기자''로 승격시켜주지만, 사내에서는 한마디로 '애숭이' 취급을 당한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기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겨우 6개월 만에 ''완벽한 기자''가 되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와는 달리 PD는 취재 훈련을 받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의 직책은 ''연출''이기 때문이다. 취재에 관한 한 ''비전문가''인 셈이다. 그래서 진실보도가 얼마나 어렵고, 오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른다. 제대로 ''기자교육''을 받았다면 이런 사항들은 머리 속에 각인시켜 놓았을 것이다.

PD들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어떤 사안을 취재할 때는 매우 저돌적이다. 이 점에서는 기자들보다 더하다. 아마도 취재가 본업인 기자들을 의식해서가 아닌가싶다. 여기에서 공갈, 협박, 위협 등의 수법을 동원하는 등 범죄나 다름없는 비윤리적 행태를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PD는 취재와 관련해서는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3. 기자저널리즘은 국제적인 것이고, PD저널리즘은 국내적인 것이다.

저널리즘은 원래 서구에서 먼저 생겨나서 발달해온 것이다. 기자들이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이 저널리즘, 즉 우리들이 말하는 기자저널리즘이다. PD들이 취재·보도하는 PD저널리즘은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독특한 저널리즘이다. ''PD=연출''이라는 등식을 깨고 ''PD=연출 및 보도''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참고로 외국의 예를 들어보자. 필자는 해외소식에 정통하지 못한 만큼 대부분 최근에 일간지에 난 것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영국 BBC의 대표적 시사프로그램인 ''파노라마''는 기자와 PD가 함께 제작하고 있다. 취재와 보도는 기자가 한다. PD는 연출과 제작을 책임질 뿐이다. 미국 CBS의 대표적인 프로그램 ''60 Minutes''와 ''48 Hours'', ABC의 ''Nightline'' 등도 PD가 전체 제작을 총괄하지만 개별 취재는 기자들이 맡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의 간판 프로그램 ''벨트 슈피겔''도 마찬가지이다.

일본도 이들 서구 국가와 비슷한 체제이다. 우리나라처럼 ''PD저널리즘''이라는 현상은 없다. 취재는 어디까지나 기자의 영역이고, 편집은 PD의 영역이다. 기자는 사실확인 작업을 충실히 하면 되고, PD는 영상과 편집에 전념하면 된다. NHK의 경우 처음부터 기자직과 PD직을 구분해서 뽑아 각기 본연의 업무를 맡게 하므로 ''PD저널리즘''이 생길 이유가 없다.

4. 기자저널리즘은 취재를 통해 결과를 얻고, PD저널리즘은 결과를 정해놓고 취재한다.

기자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의문이 가거나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취재계획을 세운 뒤 취재에 나선다. 취재를 하다보면 더 큰 ''진실''을 캐낼 때가 있지만, 당초의 목적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 취재과정에서 당초 예측했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거기에서 취재활동을 종료한다. 이것이 기자저널리즘의 바른 길이다.

그러나 PD는 처음부터 어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맞추기 위한 취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목적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갖은 방법을 쓴다. 이번의 경우 공갈, 협박, 위협, 거짓말, 회유, 종용 등 ''조폭''들이나 즐겨 쓰는 행태를 취했다. PD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해서 진실(?)을 캐내는 것이 PD저널리즘의 정도(正道)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5. 기자저널리즘에는 자체 검정시스템이 있고, PD저널리즘에는 아예 없다.

기자들은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아무리 훌륭한 기사로 만들었다고 해도 몇 차례의 검증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데스크로 불리는 차장이나 부장, 편집국장(또는 보도국장)이 체크한다. 이에 앞서 편집회의를 통해 보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결정하는 첫 절차도 있다. 그런 만큼 기사가 보도된 뒤에 회사의 명운이 걸릴 만한 ''불상사''가 일어나기는 힘든다.

그러나 PD저널리즘은 검증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언제라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PD저널리즘은 취재를 담당한 PD 혼자서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많은 것이다. 이번의 경우 국장을 포함한 윗사람들이 취재에서 보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전혀 몰랐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검정시스템이 결여되어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맺는 말  

PD저널리즘은 정치적 편향성, 2분법적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이 같은 지적을 받을 때면 경청하거나 승복하는 일이 없다. 그들은 심심하면(?)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고 PD는 진실을 말한다''는 말을 한다.

MBC ''PD수첩''이 지난해 7월 송두율 교수의 항소심 선고를 불과 8일 앞둔 상황에서 ''송두율과 국가보안법''을 방송했었다. 당시 대법원까지 나서 ''방송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했으나 MBC는 방송을 강행하고 말았다. 그때 그들은 ''우리는 진실을 말할 뿐''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말이 얼른 듣기에는 정말 멋지고, 그럴듯하다. PD들이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때 이런 말을 하지만, 궁지에 몰릴 때도 ''전가의 보도''처럼 이런 말을 써먹는다. 그러나 ''사실보도''와 달리 ''진실보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고 하는 ''건방진 언사''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며칠 전 한 경제지의 ''기자수첩''에 실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PD수첩팀은 기자들이 왜 참신성과 창의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객관성과 공정성에 매달리는지를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 차제에 MBC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PD저널리즘을 포기할 것을 제의한다. 대신 PD들이 소홀히 했던 자연·휴먼·역사 다큐멘터리 등을 활성화시켜주길 바란다.』

-<2005.12.7>

서울칼럼니스트모임 http://columni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