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31 ]칼럼니스트[ 2005년 11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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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카메라를 지닌 뒤부터는
박강문 (대진대학교 통일대학원 초빙교수,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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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산 것은 1999년이지만, 그 때의 카메라는 부피가 큰지라 잘 지니고 다니지 않게 되어 사진을 별로 찍지 않았다. 올해(2005년)에 산 작고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많이 찍는다. 봄날 양지쪽에 핀 귀여운 제비꽃도 찍었고 가을의 불타는 단풍도 찍었다. 여행하면서 동행들을 찍어 주기도 하는데,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을 알면 찍힌 사람이 대개는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한다. 보내줄 사람이야 물론 이 방법을 환영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메일 주소가 없다고 한다. 거주지가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는 형편이 아니면, 인화한 사진을 우편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데, 필름 카메라로 찍던 시절에는 당연하게 여긴 이 과정이, 디지털 카메라 사용자가 된 뒤로는 묘하게도 아주 번거롭게 느껴진다.

다행히 이번 가을 여행길의 동행들은 이메일 주소들이 없지만 자신들의 지인 한 분이 지닌 이메일 주소로 사진을 다 보내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보내는 족족 부재중 응답 메일이 왔다. 수신확인을 하니 여전히 열어 보지 않은 채였다. 이 이메일 주소의 주인은 부재중 응답 메일 표현 방식으로 보아 그 지인이 아니라 그의 자녀인 듯했다. 이메일 주소의 진짜 주인은 어디 긴 여행이라도 간 듯, 돌아오면 곧 답장을 주겠다고만 하고는 여러 주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별 수 없이 인화하도록 사진점에 맡기려고 사진 파일들을 시디에 옮겨 담았다.

앞서 말했듯, 디지털 카메라로 찍고서 이메일 처리가 안 되어 인화해서 우송하려면 매우 번거롭게 느껴진다. 또 한 가지, 찍었다가 확인하고 지울 수 있기에 셔터를 누를 때에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필름 카메라 사용 때와 다른 점이다. 많이 찍어대고는 골라 지워간다. 필름 카메라 때처럼 기다림과 설렘이 없다. 한 마디로, 사진을 덜 경건하게 다루게 되었다.

- 벼룩시장 200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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