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30 [칼럼니스트] 2005년 11월 1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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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느낌”이 통해야 사랑을 나눈다.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animalpark@korea.com )
http://www.animalpark.pe.kr


가을, 바야흐로 사랑의 계절이다.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 아무리 생각해도 또 생각나고 눈을 뜨나 감으나 앉으나 서나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사랑에 빠진 것이다.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런 사랑은 과연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일까?

사실, 동물도 낭만적인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으레 동물들의 짝짓기하면 본능적, 육체적, 충동적, 야만스러움, 이런 도식들이 떠오르기 일쑤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 동물도 아무와 짝을 이루진 않는다. 그들도 첫 눈에 반한 혹은 느낌이 통하는 ‘특정 대상’에게만 이끌려 짝짓기를 한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 세계에도 나름의 ‘이상형’ 혹은 ‘feel’ 이라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임신 기간이 무려 22개월인데다 새끼 돌보기에 전념해야 하는 약 2년간은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수컷들은 일단 발정기가 된 암컷 모두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암컷들은 어떤 수코끼리는 더 좋아하고 또 어떤 수코끼리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30년 넘게 케냐에서 코끼리를 연구하고 있는 신시아 모스는 발정기가 된 암컷 티아가 자기 주변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젊은 수컷들에게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따돌리기에 급급해 했지만, 배드 불 이라는 풍채 넉넉한 늙은 수컷에게는 한 눈에 반했는지 서서히 걸어가며 그가 자신을 따라오는지 끊임없이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마침내 사랑을 나눈 그들은 3일간을 함께 머물며 끊임없이 서로를 문지르거나 두드려주며 한 순간도 떨어질 줄 몰랐다. 이 둘은 오직 서로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지도 못했고 잠을 이루지도 못했다. 사랑에 빠진 우리 인간도 그렇지 않은가? 밥을 먹지 않아도 잠을 자지 않아도 행복하다!

또, 야생에서 코요테나 오소리 등의 행동을 관찰하는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들 역시 육체적으로 성적 활동을 보이기에 앞서 짝짓기를 먼저 하는 경우가 있다 한다. 즉, 새끼를 가질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사냥하고, 여기저기 함께 숨바꼭질하듯 뛰어다니며 놀고, 앞발로 서로의 얼굴을 두드려주고 핥아주다가 함께 몸을 붙인 채 서로에게 기대어 잠이 든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콘라드 로렌츠도 첫 눈에 반하는 갈가마귀들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갈가마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첫사랑'에 흥분한다며 이들도 사람처럼 첫 눈에 반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고 밝혔다. 더 놀라운 일은 '첫 눈에 반한' 두 마리의 새들은 곧바로 '약혼 기간'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 세계의 연인들처럼 조용하게 소근대며 서로를 바라보며, 수컷은 자신의 아내를 위해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신기한 것은 무엇이든 가져다 주고, 암컷 또한 그 선물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최근 들어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트거스 대학 인류학 교수 헬렌 피셔(Helen Fisher)는 ‘낭만적 사랑은 종족 보존 메커니즘의 일종’이라고 한다. 즉, 한 상대를 만나 함께 2세를 낳고 양육하는 부모 역할을 마치기에 충분할 만큼의 기간 동안 함께 지낼 수 있게 해 주는 ‘장치’라는 것이다. 그녀는 동물들도 인간처럼 사랑을 한다며, 그 특정 상대에게 끌리는 상태는 단 몇 시간, 며칠, 몇 주만에 끝나기도 하지만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그야말로 ‘푹 빠진’ 상태로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인간의 낭만적 사랑도 결국에는 이런 동물의 끌림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윈은 이미 100년 전에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에서 수컷이 성적 조건과 관계없이 특정 암컷을 더 선호하듯, 암컷도 가장 강하고 용기있는 1인자, 즉 그의 지위나 서열에 관계없이 특정한 수컷에게 더 끌린다며, 동물들도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다고 믿었다. 수많은 종의 새들을 비롯해 모든 고등동물이 서로 사랑에 빠져 애정과 애착을 느낀다면서 말이다. 헬렌 피셔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자연의 조화다” 라고 했다.

자아, 아직도 동물들의 짝짓기가 짐승(?)같게만 느껴지는지?

<서울예대학보> 200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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