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28 [칼럼니스트] 2005년 11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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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와 그의 애견 팔라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animalpark@korea.com )
http://www.animalpark.pe.kr


1. 루즈벨트와 팔라 스피치 (The ‘Fala Speech’)

워싱턴 D.C에 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Roosevelt, Franklin Delano)의 기념관. 그 입구를 들어서면 루즈벨트의 동상과 함께 조그마한 개의 동상도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을 지닌 개이길래, 루즈벨트와 나란히 이 기념관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동상의 주인공은 바로 스코티시 테리어, '팔라'다. 팔라는 미국 32대 대통령 플랭클린 루즈벨트의 애견으로, 백악관에서 생활했던 역대 퍼스트 펫(first pet)들 중 가장 사랑 받았던 개이자 가장 유명한 개다.

어려서부터 워낙 개를 좋아했던 루즈벨트는 1932년 백악관에 들어온 뒤에도 여러 종류의 개를 길렀는데, 그 중 몇 마리가 크고 작은 말썽을 일으킨 이후로 한 동안 개를 키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촌으로부터 생기 넘치는 강아지 한 마리를 선물 받게 된 루즈벨트는 한 눈에 그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유난히 팔라를 아꼈던 그는 자신의 식사 시간 이전에 팔라에게 손수 밥을 주었는데(자신의 서재에서 직접), 덕분에 백악관을 방문한 각국의 고위 인사들조차도 종종 팔라의 식사 시간이 끝나야만 저녁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팔라 없는 루즈벨트를 떠올리기란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딜 가나 그들은 항상 함께 다녔다. 팔라는 루즈벨트의 침대 아래 의자에서 잠을 잤고, 그가 집무실에서 일을 할 때나 손님을 만날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 루즈벨트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할 때면 팔라도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 포스 원을 타고 날아가 각국 정상들을 만났다.

‘My Little Dog, Fala’로 시작하는 유명한 ‘팔라 연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알류산 열도의 한 섬을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팔라가 행방 불명된 사실을 안 루즈벨트는 그를 찾기 위해 섬으로 사람들을 보낸 적 있었는데, 선거 기간이 되자 이 일을 놓고 공화당과 뉴스 미디어들이 ‘개 한 마리를 찾기 위해 그는 군함을 보냈다, 납세자들의 엄청난 세금을 낭비했다’고 말을 부풀려가며 그를 공격했다.

그러자, 루즈벨트는 1944년 9월 23일, 팀스터스 노동조합 연설에서 이런 연설을 한다.

"공화당은 나와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아들들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분명히 그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이제는 나의 작은 개 ‘팔라’마저 공격하고 있다. 물론 나와 나의 가족들은 그들의 공격을 불쾌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팔라는 분개할 것이다. 아시다시피 팔라는 스코틀랜드 태생이다. 의회에서 공화당의 소설가들이 날조해 낸 이야기, 즉 내가 팔라를 알류산 열도에 남겨둔 뒤 되찾기 위해 군함을 보냈고 그래서 수천만 달러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이야기를 팔라가 듣게 된다면, 그의 스코트랜드 영혼은 분개할 것이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비방에 익숙하며, 그 것은 벌레 먹은 밤나무처럼 오래된 일인 만큼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작은 개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 개를 대신해 분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연설을 들은 대중들은 그를 또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팔라는 모든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최고의 퍼스트 펫이 되었다.

* TIP : Roosevelt, Franklin Delano (1882.1.30~1945.4.12) / 제32대 대통령인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부터 1945년에 뇌일혈로 사망하기까지 12년 동안 무려 네 번이나 대통령에 선출되어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대통령직을 맡은 기록을 세웠다. 그는 유례없는 장기 집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의 대공황 타개를 위하여 뉴딜정책을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을 지도함으로써 이후 미국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지도력을 발휘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1년 39살 때 갑작스럽게 찾아온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불편했음에도 인간 승리를 이루어낸 위대한 인물로 칭송된다.

2. 루즈벨트 서거 그리고 팔라의 영원한 바램

연설이 있은 후 이듬 해인 1945년 4월 15일, 루즈벨트가 뇌일혈로 세상을 뜨자, 팔라는 루즈벨트의 사촌이자 그에게 팔라를 선물한 장본인인 마가렛 서클레이와 함께 장례식에 참가했다. 웨스트 포인트 사관 학교 생도들의 총성에 낑낑거리며 울던 팔라는, 사람들의 찬송가 선율과 함께 루즈벨트의 관이 땅 속으로 내려지자 잔디밭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루즈벨트가 살아 생전 가장 좋아했던 팔라의 재롱이였다.

그 후 팔라는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함께 발킬(Vall-Kill)에서 여생을 보냈다. 팔라는 집에 돌아온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거실에서는 항상 그녀의 의자 옆에 머물렀으며, 그녀와 함께 산책을 다니는 등 둘은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지만, 팔라는 여전히 루즈벨트를 그리워했다.

엘리노어 루즈벨트는 1945년 어느 날 아이젠하워 장군이 루즈벨트의 묘에 꽃을 두기 위해 방문했던 날을 이렇게 회상한다.

“에스코트하는 경찰차들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아이젠하워 장군의 자동차가 도착하자, 팔라는 네 다리를 쭉 뻗으며 귀를 쫑긋 세웠다. 팔라는 분명히 루즈벨트가 살아 생전 그랬듯이, 그가 기나 긴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곧, 루즈벨트는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팔라는 힘없이 제 자리에 주저앉았다.”

“팔라는 루즈벨트가 살아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항상 모든 출입문을 볼 수 있는 부엌문 가까이에 누워 있곤 했다. 항상 바빴던 루즈벨트는 곧잘 어디론가 나가야만 했고 팔라는 언제라도 그가 부르면 즉각 따라나갈 수 있도록 두 입구가 모두 보이는 곳에 있으려 했던 것이다. 남편이 죽은 후 팔라는 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나는 자신의 진짜 주인, 즉 루즈벨트가 돌아오기 전까지 잠시 동안만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많은 개들은 종종 어떤 사실을 잊는다. 그러나 팔라는 루즈벨트의 존재, 또 그와의 우정 및 사랑에 대해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팔라는 죽는 그 날까지도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는 또 다시 루즈벨트과 함께 외출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 엘리노어 루즈벨트, 1958)

늘 루즈벨트를 그리워 하던 팔라는 1952년 4월 5일 숨을 거두었고 이틀 후 하이드 파크에 묻혀 있던 옛 주인, 루즈벨트의 옆에 묻혔다. 7년의 긴 기다림 끝에 주인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 날은 팔라의 열 두 번 째 생일이기도 했다.

* TIP : 스코티시 테리어 / 검은 털에 작고 단단한 체구를 가진 스코티시 테리어는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지방에서 여우나 족제비 등의 사냥에 이용되던 개로, '웨스트 하일랜드 화이트 테리어'와 친척 관계이다. 1800년대 말 캐나다를 비롯한 미국 등에도 소개되기 시작했고, 루즈벨트 덕분에 더 많은 인기를 누린 품종이기도 하다. '스코티(Scottie)'란 애칭을 지닌 이 개는 작고 짧은 다리를 가져 마치 구르는 듯한 걸음걸이를 보이는데, 강건하고 용감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KTF 드라마클럽] 200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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