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24 ]칼럼니스트[ 2005년 10월 2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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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思父曲

임영숙 (서울신문 논설고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si

 
어느 여학교 동창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예순살 나이를 넘어선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나누면서 서로 격려하며 보듬고 있었습니다.자기집 뜰에 핀 꽃이 아름답다며 사진을 올리고,교실에서 물구나무 선 학창시절 선생님 사진을 어디선가 찾아내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홈페이지에 들어간 것은 대한국민항공사(KNA)의 설립자인 신용욱(1901∼1961)의 따님 신미봉씨(61)의 권유를 받아서였습니다.그는 한강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한을 이곳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우리 민간항공의 선구자로서 아버지가 제대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며 동분서주하는 일과 관련사진을 올립니다.

 그의 글과 사진을 보고 여고 동창들은 이런 꼬리글을 답니다.“미봉아!너의 부친이 그렇게 훌륭한 분이신 것 알게 해주어 감사해. 너도 훌륭한 딸이야!마음으로 네가 뜻하는 모든 일이 잘 되도록 기도할께.힘 내!!!”“미봉 화이팅!!!아자아자!!!”

신용욱은 한국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1900∼1930)에 이어 우리 항공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 분입니다.안창남의 휘문고 후배로 그보다 1년 뒤 일본에서 비행사 자격을 얻은 그는 한국 최초의 자가용비행기 소유자였습니다.1930년 한국에 처음으로 비행학교를 세워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습니다.조선항공사업사에 이어 KNA를 설립해 민간항공 발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항공의 날’인 10월30일은 KNA가 1948년 서울-부산 노선에 첫 취항한 날을 기념해 정해진 것입니다.한·미 항공협정을 체결하는 등 국제노선도 그가 개척했습니다.그러나 1958년 창랑호의 납북으로 KNA는 치명적 타격을 입습니다.게다가 5·16후 박정희 정권은 그를 부정축재자로 투옥했고 무혐의로 석방된 뒤에도 부채상환 압력에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여의도 샛강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전북 고창의 만석꾼 지주의 외아들로 태어나 모든 재산을 하늘을 나는 꿈에 쏟아 부은 그의 생애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끝났습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막내딸이 지금 여고 동창들의 격려속에 이루고자 하는 소망은 인천공항에 신용욱 비행사의 동상과 유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장소’를 얻는 것입니다.미국 시카고 공항에는 항공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고 덴버 공항에는 비행사들의 글과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합니다.우리 항공사의 깊이를 알리는 측면에서도 아버지를 기리는 딸의 사부곡을 들어줄 만하다고 봅니다.

 안창남,신용욱 비행사 만큼은 아닐지라도 한국 항공역사에 빛나는 별들이 많습니다.일제 치하에서 임시정부는 일본과 싸우기 위해 많은 한국청년들이 중국 항공학교에서 공부하도록 주선했습니다.그 가운데는 최초의 여류비행사 권기옥도 있습니다.그분들에 대한 정당한 자리매김 또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이제 3년 후엔 한국의 민간항공 역사가 시작된 지 60년이 됩니다.

 아버지로 인해 제정된 항공의 날 기념행사에 올해 처음 초청받아 기뻐하는 딸,그 딸의 지극한 효심에 감탄하며 “참 우리는 특별히 행복한 사람들인것 같다”고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는 여고 동창들,그들의 따뜻한 마음처럼 우리사회도 따스해 질 수 있을까요?자신만을 내세우기 위해 남을 배제하는 뺄셈보다는 여럿이 함께 가는 덧셈의 생각들이 많아진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 서울신문 200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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