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23 ]칼럼니스트[ 2005년 10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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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인네임은 힘센 자들의 것인가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며칠 전 서울동부지법 민사11부(부장판사 백춘기)는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요지는 ''도메인이름을 판매할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취지의 판결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필자의 기분은 언짢아진다.

우선 이번 사건의 재판과정과 내용을 살펴보자. 김모(46)씨는 2001년 11월 한국정보인증주식회사에 ''DONGBUSTEEL.COM''이라는 도메인네임을 등록했다. 그는 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동부제강주식회사가 2004년 11월부터 이전을 요구하자 3만4천달러(3500여만원)을 요구했다.

이에 동부제강은 김씨를 상대로 도메인네임 등록말소 청구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피고는 인터넷 도메인이름의 등록말소 절차를 이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씨로서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등록한 도메인네임을 동부제강에 강탈당한 기분일 것이다. 다음은 재판부의 판결문 내용 중 일부이다.

"피고는 원고와 유사한 이름을 등록한 뒤 3년9개월 넘게 사용하지 않은데다 원고가 도메인이름 이전을 요구하자 등록에 소요된 비용을 훨씬 초과하는 가격을 제시하는 등 도메인이름을 판매할 목적 혹은 이를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이를 등록했거나 보유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따라서 이는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며 원고는 피고의 도메인이름 등록 혹은 보유행위로 영업상의 이익을 침해받거나 침해받을 우려가 있는 만큼 피고에 대해 도메인이름의 등록말소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동부철강은 김씨가 ''DONGBUSTEEL.COM''이라는 도메인네임을 등록하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뿐만 아니다. 김씨가 등록한 때가 2001년 11월인데, 이전을 요구한 것은 무려 3년이 지난 뒤였다. 그러면서 ''DONGBUSTEEL.COM''은 동부철강의 것이니 자기들이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잘 알다시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도메인네임은 ''선처리·선입수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이는 ''도메인네임은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사이버공간에서 통용되는 도메인네임은 절대로 두 사람이 차지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국내외에서 특정 도메인을 먼저 차지한 사람과 뒤늦게 가지려는 사람들 간에 시비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럴 때는 일정 금액을 받고 넘겨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거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법정투쟁으로 이어지기가 일쑤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도메인과 관련해 국내에서 내려진 최초의 법원판결은 ''chanel.co.kr''관련한 것이 아닌가 한다. 1999년 5월, 세계적인 화장품 및 의류업체인 샤넬사가 도메인네임을 ''chanel.co.kr''로 등록해 향수 등을 판매하던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샤넬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재판을 맡았던 서울지법 민사합의 12부(부장판사 이흥기)는 그 해 10월에 내린 판결에서 ''샤넬은 이미 국내외에 알려진 상표이며, 피고측이 이 상표를 도메인네임으로 사용할 경우 수요자들이 영업주체를 혼동하게 만들고 타 상표의 명성에 편승한 부당이득을 취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었다.

이를 계기로 도메인네임과 관련한 재판에서 ''선처리·선입수의 원칙''이 깨지기 시작했다. 요즘은 이와 비슷한 내용의 분쟁이 있을 때는 거의 대부분 대기업이나 유명기업 또는 유명인이 승소하고 소기업이나 이름 없는 개인은 패소하는 결과로 끝나고 있다.

인터넷세상은 사이버공간, 즉 가상세계이다. 가상세계는 현실세계와 달리 물리적 영토가 없다. 미국 서부시대 때 개척자들이 먼저 가서 철조망을 치면 땅임자가 되었듯이 사이버영토 역시 먼저 차지하는 사람의 것이 된다.

이 같은 논리는 도메인네임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동부철강이라는 회사가 소기업보다 힘이 세고, 샤넬이라는 상표가 유명한 것은 현실세계에서의 일이다. 그런데 법원이 가상세계에서까지 그들의 힘과 명성을 보호하고 인정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힘세고 이름 있는 자는 가만히 앉아서도 가상공간을 모두 차지할 수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물론 타인의 상표와 같은 명칭을 도메인네임으로 등록하여 이를 해당자나 기업에 비싼 값에 되팔려는 사이버스쿼팅(Cybersquatting) 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수 좋은 사람은 당사자와 흥정을 잘해 거액을 챙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버스쿼터(Cybersquatter), 즉 도메인투기꾼의 ''부당이득''을 막기 위해 이런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chanel.co.kr''을 비롯해 ''himart.co.kr''. ''mastercard.co.kr'' 등이 좋은 예이다. 이미 등록된 상표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도메인네임으로 관련상품을 파는 행위를 할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유명상표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사용할 경우 소비자들이 혼동하게 됨으로써 ''부당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상표등록''제도는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한 것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유명회사는 자사 상표권을 지키기 위해 상표등록을 해놓는다. 이런 일은 어디까지나 현실세계에서의 일이다.

사이버공간은 사정이 다르다. 원칙적으로 국내에 상표를 등록했다고 해서 해당 상표에 상당하는 도메인 네임을 등록할 권리가 부여되지 않는다. 반대로 도메인네임을 등록하였다고 해서 해당 상표를 등록할 권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 남이 등록해놓은 것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대기업의 횡포이다. 법원은 이를 막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실세계에서 권력자나 재벌이라고 해서 가상공간에서도 권력자나 재벌로 행세하게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현실세계에서 장애인이라고 해서 가상공간에서도 장애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현실세계에서 땅부자가 가상공간에서도 ''땅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더욱 인정할 수 없다.



가상공간이야말로 어는 누구도 기득권을 행사할 수 없는, 그리고 만인에게 평등의 기회를 주는 ''신천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원에서 내려지는 일련의 판결을 보면 이 같은 상식을 무시하고 있다. 현실세계에서의 잣대를 가상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도메인을 선점한 사람이 판매를 목적으로 했건, 사용을 목적으로 했건 제3자가 간여할 바가 못된다. 사이버공간에서 ''좋은 땅''을 발견하고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다음 내가 먼저 차지하는 것이 왜 잘못이란 말인가. 법원은 사이버공간에서마저 힘 센자의 편에 서는 어리석음을 더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0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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