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22 ]칼럼니스트[ 2005년 10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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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다시 변해야 할 때다
이상일 (서울신문 논설위원,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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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백화점인 노드스트롬은 삼성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은 외국기업중 하나다.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 등은 일류기업의 특징중 하나로 ‘사교(私敎)같은 문화’를 들면서 그 예로 노드스트롬을 소개했다. 노드스트롬의 완벽한 고객서비스를 뒷받침하는 비결은 기업 핵심이념의 열렬한 고수, 사원들에 대한 강도높은 충성 요구, 엄격한 통제 등이다.‘노드스트롬은 미국 해병대와 비슷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삼성은 재계에서 노드스트롬처럼 ‘무서운 곳’이라거나 ‘냉혹한 곳’으로 비쳐진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상무에 대한 변칙 상속, 대선자금과 관련된 엑스파일, 정·관계에 대한 삼성장학생 시비, 일류 스포츠선수 독점 등의 사태로 삼성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요즘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그러나 제품과 서비스가 우수한 경우 특정 기업문화를 좋다, 나쁘다고 시비걸 필요는 없다. 또 오너 경영을 선호하는데 전문경영을 굳이 강제로 권고할 근거도 없다. 광복 이후 각 정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삼성 그룹이 정치자금을 내지 않고도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다.‘3류’인 정계와 정부에 인맥을 만들어 미리 손쓰려 한 경우도 비난은 할지언정 이해할 수 없지는 않다.

그러면 국제기업 삼성이 한국에서 당하는 것은 ‘반기업정서’탓만일까. 삼성 때리기를 잘못된 여론몰이 때문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모그룹 회장의 전직 측근은 삼성이 집중 난타당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사회성 부족 탓”이라고 지적했다. 즉 징검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신중함, 경제논리를 앞세운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삼성의 결정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주요 결정의 사회적인 반향에 대한 고려가 모자라기 때문이란 것이다.

실제 에버랜드나 서울통신 전환사채를 통해 이재용상무에게 변칙 상속한 것은 상속세 절약 논리만 내세웠지 수십억원의 세금으로 수조원을 상속하는 것을 보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전선의 창업자인 설원량씨 유족들이 13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문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생명이 계약자 몫에 인색한 바람에 10년이상 상장이 늦춰진 것도 ‘합리적이지만 사회고려가 부족한’대표적인 사례다. 삼성그룹이 사회성이 부족한 결정을 어떤 이유가 있어 내린 것이라면 의사 결정자들이 강성기질이란 증거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만큼 삼성그룹의 핵심라인이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다는 증후일 수 있다. 사회적인 이슈는 대부분 그룹 사령탑인 구조조정본부가 생산해온 점에서 구조본의 의사 수렴과정과 구성에 문제는 없는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이 지적한 경영 개선 사항을 그룹 핵심 의사결정자들이 “한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식의 전투개념을 바탕으로 모두 거부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삼성그룹을 움직이는 핵심인맥이 ㄱ대, 특정지역 출신과 재무팀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재무팀 인맥이 강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지역과 학교 파벌설은 무파벌을 자랑해온 삼성에서는 경계할 사항이다. 이를 의식해 이학수 본부장은 ㄱ대 출신을 구조본에 추가 배치하지 말라고 지난해 지시했다. 해병대 같은 노드스트롬이 강한 것은 종업원에게 엄청나게 많이 자율적인 의사판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계속 강해지려면 사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3류’라고 접어놓지 말아야 한다.10여년전 신경영 초기처럼 ‘마누라 빼고 다 바꿔보자.’가 삼성 사령탑에 필요할 때다. 새로운 신경영을 삼성에 기대해본다.


- 서울신문 200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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