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18 ]칼럼니스트[ 2005년 10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사라지는 골목길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한달 전쯤, 공식 일정이 빈 날을 택해서 피레네산맥쪽으로 관광을 가던 우리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넷이 다쳤는데 그중 한 친구가 보름동안이나 의식불명상태에 빠진 중상을 입었다.

사고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조그만 시골도시 만레사의 한 병원에서 긴급수술을 받는 동안 다른 동료와 나는 병원 안팎을 서성이며 속수무책으로 한숨만 쉬고 있었다. 워낙 큰 사고인데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병원이라서 그 외로움과 어려움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서 있기도 힘들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것이다.

병원은 우리의 상식과 달리 일반주택가 가운데 있었다.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잠시 바람이나 쐬려고 옆문을 통해 골목길로 나갔다. 동네는 산비탈에 위치했는데 그런 곳에 어떻게 세웠는지 의아할 정도로 5층짜리 아파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서울의 달동네에 아파트만 지어 놓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겨우 오갈 좁은 길만 있고 부대시설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동네는 깨끗하고 조용했다.

길가에 그대로 주저앉아 하릴없이 한숨만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여자들의 수다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어디인지 모르고 두리번거리다가 위를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 앞 동과 뒷 동 5층에서 창문을 열고 마주보며 세 여자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인간들이 조잘거리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어느 아파트촌을 가더라도 동과 동 사이가 그렇게 가까운 곳은 없을 것이다.

너무 놀라서 한참 쳐다보니 자기들도 그런 시선을 느꼈는지 내려다보더니 깔깔댔다. 낯선 동양인들이 그런 동네까지 온 것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반갑다는 표시를 했다. 내친 김에 손짓발짓을 해가며 목이 말라 뭘 음료수라도 사고 싶은데 가게 같은 것이 없느냐고 물으니 우리의 오른쪽을 가리키는데 아무리 봐도 아파트뿐이었다. 그때 마침 어떤 꼬마가 골목으로 나오니 그 녀석에게 뭐라고 하면서 따라 가라고 했다.

우리는 또 한번 놀랐다. 바로 옆 동의 1층에 큰 가게가 있는데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1층의 두세 집 정도를 터서 만들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았다. 가게도 우리네와 달라 한쪽에는 당구대가 있고 여기저기 탁자에서는 주로 노인들이 카드를 하고 있었다. 가게라기보다 동네 종합사랑방이라고나 할까. 그때가 오후 3시경이었다. 밖에서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아 낮잠을 자는 듯하던 마을의 활기를 거기서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이 사람 저 사람이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어 그 동안의 피곤함이 많아 가셨다. 따뜻한 인간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골목동네에서 오랜만에 고향을 만난 듯 안온함을 느꼈다. 비록 낯선 나라이지만 대로에서 느끼던 긴장감과 이질감이 슬슬 풀리면서 정겨움으로 바뀌었다. 골목이 아니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 동안 가본 적 있는 다른 나라 도시들 중에서 만레사의 그 아파트촌을 지금도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치 고향처럼... 그러나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나 고향도시에서는 그런 골목들이 속속 사라져 가고 있어 허전하기 그지없다. 개발의 광풍에 고향의 골목은 날아가고 대신 고층아파트가 비정한 모습으로 서 있고 서울도 재개발로 골목이 없어지거나 있더라도 차에 밀려 예전 같은 인간의 훈김을 느낄 수 없다.

70년대 중반 나는 만리동에 거주하며 직장까지 약 2년 간을 걸어다녔다. 일터가 한국일보 부근이라 걸으면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무슨 거룩한 뜻이 있거나 운동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출근시간 만원버스가 싫어 그냥 걸었다. 몇 십년간 골목만 카메라에 담은 사진가 김기찬씨의 작품에도 많이 나오는 만리동에서 걷기 시작, 중림동 순화동 골목을 거쳐 덕수궁 돌담이 있는 정동길로 접어든다. 이어 덕수초등학교 앞을 지나 광화문 지하도를 뚫고 나와 청진동 골목으로 들어서서 회사까지 가는 순서였는데 처음에는 교통불편 때문에 시작했던 것이 차츰 그 길에 정이 들었다.

정이 든다는 것은 골목의 푸근함과 사람냄새,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친근감과 분위기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당시 '대한민국 소설' 가운데 밑바닥 인생이나 불량배가 주인공인 작품에는 반드시 한번 이상 등장한다는 만리동과 중림동,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그 동네 출신이라고 해서 한 대 더 맞는다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로 거칠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이라 크게 체면 차릴 틈도 없었다.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을 떠난 이들이 알음알음으로 고단한 몸을 일단 풀어놓는 서울역 부근이라는 점도 그런 분위기 조성에 한몫을 했다. 그러나 비록 시끄럽고 가난한 골목이었지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나름대로 미래와 더 나은 벌이에 부에 대한 꿈을 곳곳에서 가꾸고있었다. 지나면 부엌이나 방들이 예사로 들여다보였지만 그 집사람들이나 행인들은 그걸 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탓할 만큼 삶이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몰인정하거나 각박하지도 않았다.

중앙일보를 지나 들어서면 정동길은 만리동쪽의 분위기와는 달리 정색을 하며 웬만한 틈은 허용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직장인들의 메인스타디움이라 할 각 사무실들이 근처에 많이 있으므로 마치 큰 시합을 앞둔 경기장 부근처럼 긴장이 감돌았고, 미국 대사관저의 삼엄한 경비 때문에 유행가의 '덕수궁 돌담길'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또 구한말 격동기를 온 몸으로 겪어야 했던 덕수궁 주변은 지난날의 그늘과 상처가 아직도 어디선가 편치 못한 숨결을 보내고 있어 마음이 무거웠다. 정동제일교회 등 민주화 운동의 한 마당을 담당했던 곳들도 한참 극에 달했던 유신정권의 숨소리를 반사하고 있었다. 덕수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재잘거림 소리만이 그 골목의 무거움을 덜어주는 활력소였다. 그곳을 뒤로하고 청진동에 들어서면 해장국 손님을 받느라 밤을 낮같이 지낸 업소들의 부산함과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늦잠에 빠져 든 술집들의 축 늘어진 표정이 뒤섞여 기묘한 부조화를 이루었다. 또 서울에 출장 온 지방공무원들이 숙식을 위해 주로 모여 든 곳이라 삼삼오오 길에서 목적지나 그 날 일정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투박한 사투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행여 아는 이는 없나 하는 가벼운 기대감도 가질 때가 더러 있었다. 그때만 해도 차가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 그렇게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과 숨결을 피부로 느끼며 거기에 동화될 수 있었다. 그 길들과 사람들 그리고 나는 하나였다. 제2의 고향이었다.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듯이 골목에 얽힌 추억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고향 속의 작은 고향이랄까. 나이 든 뒤 눈을 감고도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는 것이 어린 시절 고향의 골목길이다. 어느 집 문간에 놓인 쓰레기통, 그 옆을 자주 얼씬거리던 도둑고양이, 늦게 돌아오던 이들의 발자국 소리나 누구네 아버지의 술에 취한 음성이 지금도 보이고 들릴 것이다. 속살처럼 살갑고 정다웠지만 너무 가까워서 불편함도 적지 않았던 골목. 하지만 싫어도 고향은 고향이고 미워도 가족은 가족이듯이 골목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일부였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골목길들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골목들은 불량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달고,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되어 개발에 밀려 사라지며 있더라도 차에 빼앗겨 사람냄새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 모두 또 다른 실향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흔히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큰길로 다녀야 한다)이라고 해서 보무당당하게 큰길로 다니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인생의 참 진리를 찾고 행하려면 큰 길 곧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는 차원의 말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좁은 길, 지름길로 가지말고 돌아가더라도 넓고 큰길로 가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골목길은 느슨하게 풀어지고 매무새가 흩어진 약간 불량스러운 곳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람이 항시 일과 긴장 속에만 살 없듯 도시도 그렇다. 그래서 골목은 필수적이다. 선진국에서는 재개발을 해도 골목 기능을 그대로 살려두며 일부 전문가들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한국의 골목을 부러워하며 자기들도 그런 골목을 조상할 수 없을까 하고 연구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내 버리고 있다.

<자연과 꿈> 9,10월호(2005. 10)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