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15 [칼럼니스트] 2005년 9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거시기머시기 | 손님 칼럼 | 배달신청 | columnist.org(홈) |
미끄럼 타는 갈가마귀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animalpark@korea.com )
http://www.animalpark.pe.kr


- 동물들은 어떻게, 왜 놀까?

가족과 함께 바닷가로 나들이 나온 아이들. 서로 쫓고 쫓기고, 한 데 엉켜 뒹굴고, 물장구를 치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동물들은 어떻게 왜 놀까?

먼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개의 놀이 세계를 살펴볼까? 개를 비롯한 개과 동물(개, 코요테, 늑대 등)들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특유의 인사를 나눈다. “놀이 인사”라고 불리는데,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이미 이 독특한 인사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앞 발을 구부려 몸을 납작 웅크린 상태로 엉덩이만 높이 치켜 세운 채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자세가 바로 이들의 놀이 인사법이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상대방에게 ‘자 이제부터는 노는거다.’라고 인사한 뒤 엎치락 뒤치락 폴짝폴짝 신나게 놀기 시작한다(개는 이 인사를 통해 주인에게도 놀이를 재촉한다). 서로 깨물고 낮게 으르렁거리기도 해서 싸우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개들은 놀이 중에는 힘을 조절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알래스카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에서 얼음지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 버팔로를 볼 수 있다. 호숫가 비탈길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무리를 등진 채, 한 녀석이 도움닫기를 하듯 비탈길을 달려 내려온 뒤 얼음판에 몸을 맡긴다. 마치 스케이트를 타는 듯 하다가 멈출 때는 꼬리를 치켜세운 채 발에 힘을 준다. 동시에 다리를 한 곳으로 모아 몸을 팽이처럼 뱅그르르 돌게 만든 뒤 “쿠아아”하는 울음소리를 낸다. 혹은 누가 더 멀리나가나 내기를 하는 듯한 모습도 발견된다고.

또, 모스크바 크렘린궁 꼭대기의 황금돔이 졸지에 까마귀의 미끄럼틀이 된 적도 있었다. 까마귀들이 떼로 모여들어 미끄럼을 타면서 남긴 발톱 자국으로 황금돔은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었고, 결국 궁에서는 훈련시킨 매들로 하여금 정기 순찰을 돌게 해서 까마귀를 내쫓았다.

고래 및 돌고래도 놀이를 좋아한다. 어느 해양 수족관의 돌고래는 우연히 떨어진 새의 깃털을 물어 물이 들어오는 파이프 입구에 가져다 놓더니, 빠른 물살을 타고 움직이는 깃털을 따라다니며 신나게 헤엄을 치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돌고래들도 놀이에 동참했다고 한다. 야생의 돌고래 역시 해초 양끝을 입에 문 채 서로 줄다리기도 하고, 산호조각이나 조개 껍질, 조약돌 등을 떨어뜨린 후 친구가 잡길 기다리기도 한다. 벨루가 웨일은 아예 머리 위에 돌멩이나 해초 등을 얹고 다니며 놀기도 한다. 오래 버티기라도 하듯 말이다.

워낙 장난꾸러기인 수달도 강둑의 진흙을 미끄럼틀 삼아 신나게 놀이를 즐기고, 북극곰, 곰, 너구리들도 눈 쌓인 비탈길에서 배를 깔거나 하늘 향해 누운 채 미끄럼을 타며 즐거워 한다. 새끼 호랑이나 표범은 나뭇 가지 아래 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며 놀고, 침팬지는 친구들과 레슬링놀이 혹은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으면, 혼자 작은 나무를 한 손으로 잡고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공중 제비를 넘기도 한다. 또 회색곰은 머리를 물 속에 처박은 채 코와 입으로 공기방울을 내뿜은 뒤 앞발로 연신 그 공기 방울을 잡아 터뜨리며 논다. 커다란 엘크나 양들은 숨을 헐떡이며 질주하나 싶다가 느닷없이 수직으로 튀어올라 몸을 비틀면서 즐거워한다.

이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 않는 이상, 이들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동물들의 놀이를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놀이는 인간은 물론 동물에게도 신체적, 사회적 발달 및 신경과 인지 능력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의 일부라는 것이다. 게다가, 기쁨을 느낄 때 인체에서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 놀이 중인 동물에게서도 분비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즐겁게 놀고 있는 동물들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진다.

- [한국 EMC] 가을호 (통권 30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http://columnis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