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08 [칼럼니스트] 2005년 9월 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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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탄생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http://www.animalpark.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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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 년 전 사람들은 고양이를 신으로 숭배했었다. 고양이는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 Terry Pratchett -

개의 조상인 늑대는 먼 옛날 인간의 주변에서 잉여물을 얻음으로써 인간 가까이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늑대가 약 1만 2천년 경 길들여지기 시작해 오늘날의 개가 되었다면, 도도해 보이기만 하는 고양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볼 때, 고양이는 길들여진 동물 중 가장 야성이 많이 남은 동물일 것이다. 개는 1만 2천년 전, 얼마 뒤엔 양과 염소, 약 9천년 전에는 소와 돼지, 그 뒤로 말, 당나귀, 낙타, 물소, 가금류가 가축이 되었고, 고양이는 마지막인 3-4천년 전에 이르러서야 애완동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조상은 야생 살쾡이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살쾡이(African Wild Cat, Felis silvestris lybica)가 오늘날 모든 애묘들의 직계 조상임이 밝혀졌다. 누가 어떻게 이 야생의 살쾡이를 길들이기 시작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있다. 오늘날까지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고대 이집트 유적지에서는 주인과 함께 먹고, 노는 고양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나 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그 당시 고양이는 가족원으로서의 가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보자. 약 B.C 4000년경, 찬란한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 범람원과 삼각주 지역에는 그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농경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인간은 정착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쥐 같은 설치류 동물들도 손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데다 천적으로부터도 안전한 인간의 정착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편, 이 현상은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토착 살쾡이, 즉 아프리카 살쾡이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워낙 두려움이 없는(지금도 아프리카 살쾡이는 어린 시절부터 키우면 고양이처럼 길들이기 쉽다) 아프리카 살쾡이가 풍부한 먹이, 즉 쥐를 찾아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농작물을 망치고 곡식창고를 약탈하던 쥐를 처리해 주는 모습에 이집트인의 마음 속에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살쾡이는 각종 전염병까지 옮기는 쥐는 물론, 집 안팎에서 독을 뿜어대는 독사까지도 용맹하게 처치해 주었다. 재산을 지켜주고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 덕분에 이들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다.

급기야,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신으로 만들었다. 고양이의 얼굴에 여인의 몸을 하고 있는 바스트(bast)는, 사랑과 자비,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었다. 태양신을 숭배했던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솟으면 좁아지고, 태양이 지면 둥근 두 개의 작은 태양처럼 변하는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며 고양이를 태양의 친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자였던 파라오가 태양신 라(Ra)의 아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바스트의 존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고양이를 위한 거대한 사원을 짓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으면 애도의 표시로 눈썹을 밀고 머리를 잘랐다. 썩지 않도록 처리해 금은으로 장식된 관 속에 매장하기도 했는데, 1860년 이집트의 베니하산 부근에서는 18만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묻힌 묘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먼저 고양이를 구하는 관습이 있었고, 함부로 고양이를 죽인 사람은 군중의 손에 살해당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심지어, 이집트인들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진 것이 고양이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cambyses)는 이집트를 공격하기에 앞서 전사 한 명 당 고양이 한 마리씩 주어서 전투에 임하게 했다. 적군과 싸우려면 고양이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이집트인들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고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한편, 이렇게 인간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살쾡이들은 길들여진 고양이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성격적으로 좀 더 온순해졌고, 신체적으로 위장술 역시 필요 없어져 털무늬 및 색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위장 체계도 보다 다양한 음식에 알맞도록 진화했다(길들여진 고양이의 장은 야생의 고양이들보다 더 길다). 뇌 역시 거의 30%가 작아졌다. 생존을 위해 그들의 감각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신격화하며 추앙했던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신성한 동물을 훔치는 행위를 사형으로 다스렸지만, 이들의 매력에 빠진 무역 상인들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4세기경에는 그리스에 유입되었고, 그리스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다시 독일로, 10세기경에는 영국에 유입되었다. B.C 200년경에는 인도에도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그 이후 중국과 일본 등지까지 퍼져나갔다. 한국에는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경전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중세 시대, 마녀 혹은 악의 추종자와 결부되어 억울한 삶을 살기도 했지만, 고양이는 어쩌면 오래 전 자신이 여신이었단 사실을 잊지 않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결국 고양이는 개와 함께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또 하나의 반려동물로 등극했으니 말이다.

- [KTF 드라마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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