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04 ]칼럼니스트[ 2005년 8월 3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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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읽는 방법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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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서울, 제자의 서울-

스승이 슬하의 제자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낼 때는 비장한 당부와 결연한 각오 등이 필연적으로 등장, 자못 감동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나이들의 이별은 쓸쓸함까지도 아름다워 보일 때가 많다.

중국 전국시대 합종연횡으로 천하를 주름잡던 소진과 장의를 배출한 귀곡선생이 또 다른 제자 손빈과 방연을 하산시키는 것도 그렇다. 방연이 먼저 스승을 떠나 위나라 실세로 이름을 크게 떨치고 있을 때 뒤늦게 하산하는 손빈에게 귀곡선생은 위험에 빠졌을 때 보라면서 비밀주머니를 준다. 손빈은 나중에 이 주머니 지시에 따라 적으로 변한 친구 방연의 함정에서 벗어나, 통쾌한 복수극을 펼친다. 이처럼 감동적인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려있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토토가 떠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사제간 이별로 관객의 뇌리에 오래오래 남는 장면이다. 무학(어린 토토 덕에 컨닝으로 학력자격증 같은 것을 받긴 하지만)인데다 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는 알프레도영감이 토토한테 궁벽한 시골을 떠나라고 권하는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여길 떠나라. 너에겐 희망이 없는 곳이다. 로마로 가서 돌아오지 마라. 내게 연락도 하지마. 여기 있으면 세상 전부인양 착각해서 나보다 더 눈이 멀게 돼. 인생은 영화와 달라. 영화보다 더 힘들어”

얼마나 멋지고 의미심장한 말인가. 그런 스승과 선배들은 더 넓은 세상에 도전하는 제자와 후배에게 남다른 희망과 격려를 보낸다. 없던 자신감도 용솟음칠 지경이다.

그런데 내가 대학진학을 위해 서울로 올 때 친아버지 같던 고교 선생님은 귀곡선생이나 알프레도영감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내가 손빈처럼 훌륭한 제자도, 토토처럼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도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울에 도전하는 비법이나 당부 말씀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시긴 하셨는데 솔직히 말해 멋지고 의미심장하기는커녕 누가 들었을까 싶어 은근히 걱정되던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서울이란 곳에서 살아 남으려면 인맥, 혈연, 지연, 학맥 등 빽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시원치 않다며 한숨을 나보다 더 쉬셨다. 초.중.고교 졸업까지 제대로 학교 다닌 날이 절반 될까말까 했으니 학맥, 지연 등은 애저녁에 글렀고, 집안이 한미하면 친척도 외면하는 법이니 혈연, 인맥도 아니올시다였다.

그래도 서울이 절대 승부처이니 희망을 가져야 한다며 격려를 하셨다. 그러나 말이 격려이지 누가 들으면 우세스럽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다. 넉살 좋고 숫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번 만난 사람도 형, 동생할 정도로 뻔뻔해야 하며, 곧 죽어도 없는 티 내지 말고 호기있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어디까지 숫기이고 어디서부터 사기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서울은 그런 사람들이 득시글대므로 그렇지 않으면 밥 굶기 딱 알맞다고 하셨다.

또 여자를 잘 다루고, 돈 잘 꾸어쓰는 것도 능력이고 재산이니 명심하라고 하셨다. 세상에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가는 제자에게 당부할 말씀이 따로 있지... 돈 많은 과부, 가정교사하는 부잣집 딸, 하숙집 아줌마, 식모 등 누구든지 허투루 대하지 말라고 했다. 어느 구름에서 비올 줄 모른다던가. 완전히 삼류소설과 주간지 수준이었다.

그러나 없는 놈이 외모가 번듯하거나 여자들이 줄줄 따를 매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영 거리가 멀어 놓으니 어쩌면 좋으냐며 큰 걱정을 하셨다. 마치 주무기 없는 투수를 등판시키는 감독처럼 불안한 표정을 쉽게 감추지 못하셨다.

덧붙여서 늘 말씀하시던 “종세속(從世俗.세상의 속됨을 외면하지 말고 기꺼이 따름)”을 더욱 강조하셨다. 괜히 대학생이라고 고상해 보이는 것, 이를테면 민주화, 낭만, 청춘 같은 따위들에 매몰되지 말고 실속을 챙기라는 말씀이였는데 그런 것은 내 경제적 여건상 사치나 다름없으므로 걱정 안 하셔도 될 일이었다.

하여튼 일제시대 경성의 명문학교 출신이었던 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서울을 읽고 해석하시는 방법이 속물(?)스러웠다. 8.15, 6. 25, 4.19 등 격동기를 남다른 아픔과 함께 지나 오고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으셨던 때이지만 그래도 서울에 대해서 얘길 하시려면 나의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동네 아낙네들보다는 나아야 할 것 아닌가.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비장하고 의미심장한 서울독법을 말씀해주셔야 제격이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대학진학을 마땅찮게 여기시던 어머니는 여름방학이 되어 내려가니 은근히 말씀하셨다. 국민학교 중퇴하고 몇 달전 서울로 간 어느 집 딸은 벌써 돈을 부쳐 오고, 뉘집 손자는 중학만 나왔어도 서울에서 취직해 부모들 자랑이 대단한데, 너는 계속 학교만 다닐 거냐는 식이었다. 그애들보다 학교도 더 많이 다녔으니 이제는 뭔가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기껏 한학기 다녔는데 그랬다. 어떤 이는 자기 아들이 서울 갔는데 어디 취직 좀 시키라는 간곡한 편지를 내게 보내기도 했다.

시골사람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서울은 그런 곳이었다. 바로 흥부네 박이었다. 톱질만 하면 원하는 것이 자동판매기처럼 쏟아지는 곳이었다. 그런 이들은 가방끈 짧고, 견문 좁아서 서울 독해력이 그 수준이라 하겠지만 그들과 하늘과 땅 차이인 우리 선생님의 서울 접근법도 오십보백보이니 기가 막혔다.

어쨌든 나는 선생님, 어머니 그리고 고향동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서울에서 지칠대로 지치고, 학교도 등록금사정에 따라 다니다 말다 하면서 남보다 늦게 졸업했다. 그것도 희망 찬 졸업이 아니라 그냥 세월에 밀려 무력감만 안고 나왔다. 선생님의 서울해독법을 되새겨 볼 여유도, 내 나름의 서울독법을 갖출 틈도 없이 보낸 대학시절이었다. 졸업후에도 생존에 급급, 동서남북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무작정 흐르고 흘렀다. 서울이라는 상대를 읽을 안목이 변변치 못했지만 그럴 여건도 아니었다.

하지만 상놈은 나이가 양반이라던가. 서울을 상대로 한 게임에서 철저히 패배한 종반전에 들어서야 선생님의 서울독법을 깨닫기 시작했다. 건성으로 보아왔던 것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인맥, 지연, 학맥 등이 서울이라는 시스템의 이면에서 당당하고도 정교하게 작동하고, 권력 이익 명예 등의 저변에 우리 같은 것들은 짐작도 할 수 없던 수단과 방법이 지하수처럼 깊고 은밀하게 흐르고 있음을 경험으로 체감했다. ‘속물’스럽다고 생각했던 선생님 독법의 정확함을 추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덕분이다.

그런 것들을 이전에 듣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우스개나 강건너 시아비 X처럼 남의 일로만 알았다.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면 어디서나 위태롭지 않다고 했는데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던 것이다. 승산 없어 보이던 고향의 뉘집 딸, 어느 집 손자들은 그동안 서울을 철저히 공략, 이제는 명실상부한 승전가를 부르고 있는데 나는 멍청하니 상대적 패배감이나 되씹고 있다. 패배는 둘째치고 이제야 뭔가를 눈치챈 멍청함을 보고 지하에서 가슴치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절망 이상의 비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주무기도 없고, 경기흐름을 읽는 눈도 시원찮으면서 시합에 나선 이 미욱함이 더욱 한스럽다. 능력미달이면 변칙 공격 및 수비능력이라도 있어야 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늘 달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유효기간 만료로 폐기처분된 꿈의 잔재, 소화불량 상태에서 배설된 희망의 찌꺼기들 속에 나뒹구는 내 자신이 처연하기만 하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주인공 말테는 28세에 이미 그런 것들을 간파했는데 나는 그보다 나이를 갑절 먹은 뒤에야 그것도 어렴풋이 눈치를 챘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도시로 온다는데, 내보기에는 오히려 죽기 위해 오는 것 같다”고 하던 말테의 절망과 불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우리 선생님의 치졸한 듯한 서울해독법의 진면목을 볼 줄 알았더라면 이처럼 발등을 찍고 있지 않을텐데... 모두 내 아둔함 때문이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이미 전세는 기울어 패전처리 절차밖에 남은 게 없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인생은 확실한 일회성 게임이라 패자부활전이나 다음 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할꼬...

<도시문제> 8월호 (20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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