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201 ]칼럼니스트[ 2005년 8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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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헌법(북한 헌법) 서문 읽어보기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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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그들 헌법에 '서문'을 새로 붙였다. 그 서문을 여기 옮겨 쓰고, 간략히 설명해 본다. 1-15까지의 번호와 ( )의 한자, (( )) 속 제목은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그리고 원래 서문은 한자형 낱말이 거듭되면 모두 붙여 썼으나, 여기서는 적당히 떼어 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서 문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령도(領導)를 구현(具現)한 주체(主體)의 사회주의 조국이다.
2.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創建者)이시며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始祖)이시다.
((김일성과 조선의 관계)) 1번을 쉽게 쓰면, '조선 곧 김일성'이다.
2번에 창건자와 시조를 거듭 썼다. 그게 그 뜻 같지만, 다음과 같이 다르게 봐야 할 것이다. 창건자는, 겉으로 보이는 조선이란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시조는 '사회주의 조선'에서 그렇다는 것인데, 유형의 나라는 물론 그 안에 있는 무형의 사상, 제도, 문화 등 모든 것에 대해서 시조다.
시조를 헌법에 규정한 까닭은, 고조선 하면 단군, 고려 하면 왕건, 조선 하면 이성계이듯, 사회주의 조선 하면 김일성이란 인식을 사람들 머리에 심기 위해서다. 그 결과, 조선의 정통성은 김일성 후손만이 유지한다는 고정 관념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시조와 같은 조치가, '주체ㅇㅇ년'이란 연기(年紀)를 사용토록 한 것이다.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이 '김일성민족의 시원'(始原)이다. 이 해를 1년으로 삼아, 김일성의 상징인 '주체'를 붙여 햇수를 표시한다. 현재 남한의 여러 신흥종교도 이런 형태의 연기를 쓰고 있다.

3. 김일성동지께서는 영생 불멸(永生不滅)의 주체 사상을 창시(創始)하시고 그 기치 밑에 항일혁명투쟁을 조직 령도하시여 영광스러운 혁명 전통을 마련하시고 조국 광복의 력사적(歷史的) 위업을 이룩하시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에서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튼튼한 토대를 닦은데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
((일제 때부터 건국까지)) 김일성이 14살(1926년) 때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해방까지를 조선 현대사 1기라 부른다.
해방은 '김일성동지의 항일혁명투쟁의 빛나는 승리가 가져다 준 고귀한 결실'로만 가르친다. '쏘련 군대의 협력'은 삭제했다.

4.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적인 혁명 로선(路線)을 내놓으시고 여러 단계의 사회 혁명과 건설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공화국을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나라로, 자주, 자립, 자위의 사회주의 국가로 강화 발전시키시였다.
5. 김일성동지께서는 국가 건설과 국가 활동의 근본 원칙을 밝히시고 가장 우월한 국가사회제도와 정치 방식, 사회관리체계와 관리 방법을 확립하시였으며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 번영과 주체 혁명 위업의 계승 완성을 위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시었다.
((건국 후 주체 사상)) 1955년 12월 조선로동당 대회에서 김일성이 '주체'를 처음 언급했다고, 70-80년대에 발간된 책에는 쓰여 있다. 그런데 위의 3번을 보면, '주체 사상 ..... 기치 밑에 항일혁명투쟁'을 했다고 하여, 주체가 등장한 시기를 일제 때로 끌어 올렸다. 어쨌든 4번에 쓴,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는 주체의 3대 원칙으로 잘 알려진 내용이다.

6.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仁德) 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大家庭)으로 전변(轉變)시키시였다.
((정 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 건국 후 북한의 최대 모토며 어디에나 붙이던 슬로건이었다. 그런데 이민위천, 인덕,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일심단결, 대가정 따위로 이뤄진 위 문장을 보면, 일제 때 천황에 대한 글을 어디서 따온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이 매도한 구체재 냄새가 난다.
<<이민위천>>의 << >>는 원문에 표시한 대로다. 동학의 人乃天과 비교해 보면 이 글귀가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人乃天은 사람이 곧 하늘이다 또는 사람을 하늘과 같이 받든다는 뜻이다. 사람만 한껏 높였지, 하늘을 낮추거나 바꾼 것이 아니다. 그런데 以民爲天은 백성으로써 하늘을 삼는다 또는 백성이 하늘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하늘을 무시하고 거스르는[逆天] 것으로, 한자만 빌어 전통 사상으로 위장한 짝퉁 4자성어(成語)다.
'대가정으로 전변'은, 각 가정의 안방에 김일성 사진을 의무적으로 걸게 하고, 전국 각지에 그의 동상을 세워 참배토록 한 행위를 말한다. 이는 공자 때나 자랑할 업적이지, 현대에는 '인권 말살'로 김일성을 오히려 욕보이는 내용이다.

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構成)이시다.
8.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 지상(至上)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온갖 로고(勞苦)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9. 김일성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통일의 강유력(强有力)한 보루(堡壘)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통일의 근본 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여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 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으시였다.
((통 일)) 7번에 쓴 '구성'은 남한에서 통용되는 말뜻과 다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김일성은 그 요소를 합한 결과물 또는 결정체다. 이 결정체를 '구성'이라 표현한 것 같다.
7번에 '민족의 태양'과 '조국통일'을 이어 썼다. 그렇게 쓴 이유는, 통일의 구성 또는 구심점이 바로 '김일성=민족의 태양'이기 때문이다. 위의 2번에서도 썼지만, 북한에서 일컫는 민족은 '김일성민족'이다. 따라서 조국통일이란, 남한 사람들을 김일성민족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생존에 필요한 태양의 혜택을 남한 사람들에게도 베푼다는 것이다.
8번은 6.25사변, 9번은 80년 10월 노동당대회에서 채택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과 '10대 시정방침'에 대한 설명이다. 6.15선언은 이 10대 시정방침을 기초로 작성됐다.

10.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외 정책의 기본 리념(理念)을 밝히시고 그에 기초하여 나라의 대외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시였으며 공화국의 국제적 권위를 높여 떨치게 하시였다.
11. 김일성동지는 세계 정치의 원로로서 자주의 새 시대를 개척하시고 사회주의 운동과 쁠럭(bloc)불가담 운동의 강화 발전을 위하여, 세계 평화와 인민들 사이의 친선을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으며 인류의 자주 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
((외 교)) 인도의 네루,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등과 함께 '제3세계'를 형성하고, '비동맹 중립노선'을 선언한 것 등을 말한다.

12. 김일성동지는 사상 리론(思想理論)과 령도 예술(領導藝術)의 천재이시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靈長)이시였으며 위대한 혁명가, 정치가이시고 위대한 인간이시었다.
13.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사상과 령도 업적은 조선 혁명의 만년재보(萬年財寶)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륭성 번영을 위한 기본 담보(擔保)이다.
1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령도 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主席)으로 높이 모시며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사상과 업적을 옹호 고수하고 계승 발전시켜 주체 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 나갈 것이다.
((결 론)) 옛적에 왕이 사망하면, 'ㅇㅇ大王'이란 10여자의 시호와, 숙종, 영조와 같은 묘호, 무덤의 명칭인 능호 따위를 신하들이 지어 바치는 것이 중요한 장례 절차였다. 이 헌법 서문에 '김일성' 이름이 17번 나왔고, 그 이름에 '위대한'을 9번 붙였다. 호칭이거나 칭송하는 낱말은 수령, 동지, 창건자, 시조, 태양, 구성, 원로, 천재, 령장, 혁명가, 정치가, 인간, 만년재보, 담보, 주석으로 15개다.
사망한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모신다'는 것이 서문의 핵심이며 결론이다. 옛 왕조 때의 존왕(尊王) 의식을 따랐다.
김일성 시신을 매장이나 화장을 하지 않고 '금수산기념궁전'에 진열하여 사람들이 참배토록 한 것도 같은 의식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신(神)을 만들었다.
그리고 14번 문장 뒷 부분 '옹호 고수.... 끝까지 완성'의 내용은, 죽은 사람의 훈계로 통치한다는 이른바 '유훈(遺訓) 통치'다. 훈요10조가 나온 고려 왕건 때나 있음직한, 시대의 흐름을 인정치 않는 국가 운영이다.
이런 일들은 왕조나 종교 집단에서나 가능한데, 14번 문장은 북한이 그런 체재임을 스스로 확인, 공언한 것이다.

1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 건설 사상과 국가 건설 업적을 법화(法化)한 김일성헌법이다.
((부 칙)) 김일성을 구현한 것이 조선이듯, 헌법 역시 김일성 사상과 업적을 법으로 구체화[법화]시켰다는 뜻이다.
이 정의를 내리면서, 17자로 된 딱딱한 헌법의 정식 명칭을 '김일성헌법' 5자로 줄였다. '김일성'이 사람들 입에 쉽게 오르내리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한 까닭은, 앞 부분에 썼던 '시조'와 같은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다.

-200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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