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칼럼니스트] 교단에 서린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 (이재일) - 제1194호 2005.07.31
No. 1194 ]칼럼니스트[ 2005년 7월 3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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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 서린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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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敎壇)이라고 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강의하는 단을 말한다. 교단의 크기는 보통 가로 3m, 세로 1m, 높이 20㎝ 가량 된다. 선생님들은 그곳에 올라서서 출석을 부르고, 칠판에다 분필로 강의내용을 적는다.

교실바닥보다는 높은 곳인지라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관찰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학생보다 키 작은 선생님을 돋보이게 하고, 풋내기 교사의 위엄을 도우는 것이 교단이요, 학생들이 선생님을 넘보지 못하는 교권(敎權)의 솟대역할을 하는 것이 교단이다.

그러니까 교단은 일종의 성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 교단이 교실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정말 뜻밖의 소식이다. 교단이 왜 없어지는 것일까. 30대 이상의 성인들 치고 교단이 없어지리라고 상상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선생님들에게는 꼭 필요했던 교단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첨단 학습기자재인 OHP(Over Head Projector) 필름이 등장하면서라고 한다. 최근에 와서 급속하게 보급된 실물 화상기와 이동식 칠판은 교단의 종말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자재들은 교사들이 교단에 올라서서 갖가지 색깔의 분필로 칠판을 장식하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필자는 교단과 관련하여 몇 가지 추억을 갖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교단에 팔을 대고 엎드린 채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맞던 일이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예사였다. 물론 학생들이 맞을(?) 짓을 자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가 매를 맞은 이유는 이렇다. 1956년이었을 것이다. 당시 가교사에서 공부하다가 미군이 딴 곳으로 옮기면서 5층짜리 본교사로 이사를 갔다. 시멘트로 지은 그 건물에는 옥상이 있어서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까지 가지 않고 그곳에서 놀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고무줄뛰기를 했지만 남학생들은 아주 위험한 놀이를 했다.

건물 옥상 외벽 맨 위에는 길이 10m에 폭 1m 가량의 공간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겁도 없이 그곳에 올라가 일정거리를 걷는 장난을 했던 것이다. 한순간 발을 잘 못 디디면 14∼15m 아래 땅바닥으로 추락사할 위험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용감성을 자랑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워낙 위험한 장난이었기에 누군가가 선생님에게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자기 반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놀이를 했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놀라셨을까. 다음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책을 덮어놓으라고 하시더니 옥상에서 놀았던 남학생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5∼6명이 나갔다.

"교단에 손대고 엎드려라!"는 선생님의 명령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엎드려 뻗친 채 매를 맞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열 대 정도 맞은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한 번 더 그런 장난을 쳤다가는 퇴학시키겠다는 경고를 받고서야 책상으로 돌아갔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일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공민선생님은 키가 아주 작으셨다. 교단 위에 서 있어도 우리들 보다 작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은 키 큰 학생만 골라 기합(?)을 주었다.

그 선생님의 체벌 방식은 딱 한가지. 학생은 교단 아래에 서 있게 해놓고 자신은 교단 위에 서서 학생의 귀를 잡고는 바깥다리걸기를 하는 것이었다. 벌을 받는 학생으로서는 다리가 걸린 상태에서 귀가 뒤로 당겨지게 된다. 귀가 아파지므로 뒤로 "꽈당!"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 광경은 우리들을 웃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몰래 킥킥거리는 게 아니라 마음놓고 웃어 제꼈다. 그러면 선생님은 더욱 신이 나서(?) 몇 차례나 그런 행동을 반복적으로 취했다. 만약 교단이 없었더라면 그런 기합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45∼46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교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또 있다. 수업시간에 교단에 올라가는 일이 왜 그렇게도 싫던지. 더군다나 교단에 서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부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는 말이 옳을 것 같다. 하기야 어른이 되어서도 많은 사람 앞에 서서 강의나 연설을 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교단이 없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옛추억이 아련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특히 함께 공부했던 여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성을 발휘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진다.

중·고등학교 때의 추억도 어찌 없겠는가. 공부시간에 엉뚱한 멘트를 자주 해 학생들을 웃기곤 했는데, 지나칠 경우 선생님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럴 때 몇몇 선생님은 손에 쥐고 있던 분필을 던지곤 했다. 다행히(?) 한번도 맞지 않은 기록을 세우고 졸업했다. 제법 순발력이 좋았던가 보다.

이렇듯 교단이 없어진다는 소식은 평생을 선생님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필자가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들이 "교직에 몸을 담다"는 의미로 쓰고 있는 "교단에 서다"라는 말도 사라지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숱한 추억거리가 새겨져 있는 교단이 없어지다니…. 디지털세상은 우리들로부터 또 하나의 아날로그추억을 앗아가고 있다.
                  - <0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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