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93 [칼럼니스트] 2005년 7월 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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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된 개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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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삶을 완전하게 해 준다. - 로저 카라스

개로 인해 새 삶을 얻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개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가 하면, 어린 아이를 지키기 위해 강도와 싸우고, 또, 무너져 가는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시각장애인 주인을 이끌고 지상으로 내려오는가 하면, 츠나미로 폐허가 된 곳에서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생존자를 찾는 데 열심이다. 한편, 아무런 훈련을 받지 않은 평범한 개 역시 주인과의 행복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기적 같은 일을 일궈내곤 한다.

뉴욕에 사는 마릴린은 셰틀랜드 쉽독, 트리샤를 가족으로 맞이해 몇 해 째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평범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고 다정한 성격을 가진 트리샤는 딱 한 가지 마릴린을 성가시게 만드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마릴린이 자세를 낮추어 앉아있을 때면 그녀의 등 아래쪽에 코를 들이민 채 미친듯이 냄새를 맡거나 코끝을 문질러대는 것이었다. 틈만 나면 계속되는 트리샤의 독특한 행동 때문에 마릴린은 적지않은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

호기심 많은 마릴린의 남편이 트리샤가 관심을 보이는 바로 그 곳에 작고 까만 사마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마릴린은 통증이나 가려움증 등 어떤 불편함도 느끼지 못 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릴린이 수영복을 입은 채 발코니에 엎드려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트리샤가 마릴린을 물었고, 놀란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물린 곳은 바로 사마귀가 있는 등이었다. 다행히 물린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마릴린의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사랑하는 트리샤가 자신을 물다니!

한편, 트리샤가 그렇게도 끊임없이, 급기야는 물기까지 했을 정도로 작은 사마귀에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마릴린의 남편은, 결국 아내를 데리고 코넬 의학 센터를 찾았다.

마릴린 부부는 의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검은 사마귀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으로, 조기에 발견되지 못했다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다는 것이다.

오해가 풀렸고, 마릴린과 트리샤 간의 신뢰와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사마귀 제거 수술을 받고 나자, 트리샤는 더 이상 마릴린의 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또 얼마 전 스코틀랜드에서는, 듀크라는 이름의 개가 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은 후 한 쪽 다리의 감각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여주인에게 새 삶을 찾아주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웬디는 목발 없이는 짧은 거리를 걷는 것은 물론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50여 년을 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 발끝에 얼얼한 감각이 느껴져 내려다보니 듀크가 열심히 자신의 발가락을 핥고 있었다 한다. 유난히 강아지 때부터 웬디의 발을 핥는 것을 좋아했던 듀크 덕분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고, 그 날 이후 웬디는 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트리샤와 듀크의 이야기를 보면, 개들은 끊임없이 사랑하는 주인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다. 그 것이 마음으로 전하는 말이건 몸으로 전하는 말이건 말이다.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쪽은 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인간인 것 같다.

약 1만 2천년 전, 동족인 늑대를 저버리고 우리를 택한 이후로, 인간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동물, 개! 우리를 향한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디까지인 걸까?

[삼성 국제화기획실_마음과 마음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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