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92 [칼럼니스트] 2005년 7월 1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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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식량(쌀) 제공은 현대판 조공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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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합의문 11번째

2005년 6월22일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예년 수준 규모'인 쌀 40만톤을 요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7월12일 남북경협위에서는, 퍼준 것인지 뺏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10만톤이 더 늘어난 50만톤으로 합의했다.

이 50만톤은 국내산 40만톤과 외국산 10만톤이라고 한다. 작년에는 국내산 10만톤과 외국산 30만톤을 보냈었다. 가격은 국내산이 1톤당 약 1920달러, 외국산은 약 300달러라고 한다. 작년에 비해 금년에는 분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품질도 월등히 좋아진 셈이다. 이렇게 북한에는 신토불이 좋은 쌀을 보내면서, 한국에는 중국 등지의 싸구려 쌀을 수입해 시장에 푼다 하니, '배 주고 뱃속 빌어먹는다'는 속담이 현실화되고 있다.

7월12일 합의에서 11번째가, '남측은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북측에 쌀 50만톤을 차관 방식으로 제공한다'다. 이 짤막한 내용만 발표됐을 뿐 세부 사항을 정했다는 합의서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단편적으로 보도된 국내산 몇 톤, 몇 년 거치 따위의 간략한 사항만 서로 얘기가 됐지, 이를 합의서로 만들어 확정한 것 같지 않다. 왜냐 하면, 북측 대표단이 토요일인 7월9일 저녁 서울에 도착해서 만찬을 하고, 12일에 평양으로 떠났다. 일요일, 월요일 이틀 동안, 사회 전반에 걸친 그리고 다른 기관의 의견도 수렴해야 될 12개 항의 세부 사항을 일일이 합의해서 정했다는 것이 시간상으로 가능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11번째 자체만 봐도, 50만톤이란 알맹이 하나 달랑 쓰고 앞뒤로 어울리지도 않는 낱말 몇 개 붙인 불성실한 내용이다. 동포애니 인도주의니 하면 '공짜'를 의미한다. 이런 수식어를 붙이면, 차관(借款)이란 조건을 붙일 수 없다. 차관은 언젠가는 돈을 갚는 '외상'이지 공짜가 아니다. 그런데도 남한 국민들 감정을 의식하다 보니 이런 모순의 표현을 쓴 것 같다.

이 11번째는 남한에서만 발표되고, 북한에서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왜냐 하면, 위대한 장군의 강성대국에서 동포애니 인도주의니 소리 들어가며 쌀이나 얻어 먹는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적당히'가 공산 국가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큰 낭패를 부르곤 한다. 11번째도, 남한은 50만톤을 반드시 줘야 한다는 족쇄를 찼고, 북한은 언제 어떻게 받아가든 맘대로라는 백지 수표를 손에 쥔 것이다.

2. 알고나 줘야지

말이 간단해 50만톤이지 25톤 대형화물차로 2만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1인이 1년에 쌀 120kg을 먹는다면, 약 4백만명의 1년치 식량이다. 한국인 12명이 북한인 1명을 먹여 살리는 꼴로, 원가만 1조원대다. 이런 쌀을 보내면서도 지금 우리는 북한에 식량(이를 구입할 외화도 같다)이 부족한지 풍족한지조차 모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금년 6월부터도, 유엔의 대북 식량 지원 창구라는 WFP가, '북한에 10년만에 최악의 식량난'이 온다, '영양 실조율 36%'다, '노인, 초등생, 임산부 등 360만명을 취약 계층으로 보고 그들을 우선 지원'한다, '현재 200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 따위의 얘기를 언론에 흘렸다. 누구든 이런 얘기를 몇 번 들으면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항상 굶는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정부 및 민간 단체는 이런 얘기를 대북 식량 제공의 주요 근거와 명분으로 삼았다.

그런데 2005년 6.15평양 축전에 대한 '연합' 보도와, 그 축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얘기는 WFP와 딴판이다. 그 얘기의 일부를 뽑아 쓰면,
이제 매대(판매대)는 평양 시내에서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잡았다. 청량음료, 빙수, 아이스크림, 냉차.... 각종 빵이나 과자, 떡을 팔고 있다/ 고려호텔 앞 대로변 200m 가량이 '음식거리'다. 창광식당, 승리식당, 지짐집, 닭구이집, 생맥주집 등 이름을 붙인 식당들이 즐비하여, 밤이 되자 형형색색으로 된 네온사인을 밝히고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개선문부터 평양역까지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도.... 상점과 식당들이 적지 않았다/ 대동강 영빈관에서.... 레드와인까지 곁들여 곰발통찜, 칠면조 꽃바구니, 상어날개 인삼탕, 숭어냉수탕 등이 올랐다/ 한번에 3천명이 앉을 수 있다는 옥류관에는 냉면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과 그들이 타고 온 차량으로 북적였다/ 평양 주민들의 표정이 밝은 것 가운데 하나는 올해 농사가 풍작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순안공항에서.... 오가며 본 도로 주변의 농사는 얼핏 보기에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굶기는커녕 곰발, 상어날개 등 먹거리만 풍족하다. 평양만 그렇고 시골은 굶주린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식량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지역 간 또는 주민 간 식량 분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북측이 요구한 '예년 수준 규모'의 쌀에서 10만톤을 더 얹어 준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3. 북한 식량난의 원인은 김씨왕조 건설

남북 관계는 애초부터 진실은 실종되고 야바위만 판쳤다. 식량에 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북한 지형이 식량 생산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계속 식량난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인 것이, 북한이 필요한 식량이 매년 600만-650만톤이라는데 그들은 이미 84년에 626만톤의 식량을 생산했었다. 더구나 80년대 이후 종자 개량과 농업 기술 발전으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농업 생산량이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도 지형 때문에 북한만이 식량난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평야가 좁아 쌀 생산은 인구에 비해 부족할 테지만, 쌀만이 식량이 아니다.

93년부터 97년까지 5년간 계속된 자연 재해 즉 냉해, 우박, 홍수, 가뭄 때문에 북한이 식량난이라는 얘기는 아예 정설로 됐다. 물론 자연 재해가 든 해나 다음 해는 극심한 식량난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재해가 들었다고 농업 시설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식량은 1년생 식물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풍년과 흉년이 매년 다르다. 따라서 90년대 중반 5년간 자연 재해인 것과, 2000년대 몇 년간 식량난이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북한 식량난이 이런 불가항력적 원인이 아니고, 인위적 원인임을 분명히 말해 주는 것이 그들 비료 생산이다. 즉 북한은 93년 이전까지는 매년 80만톤 정도의 비료를 생산했었다. 그렇던 생산량이 94년에는 33만톤, 95년에는 9만5천톤으로 급감했다. 2000년 이후는 5만톤 이하다(한국농촌경제연구소 자료). 이 수치를 보면, 94년 김일성 사망 때부터 비료 공장이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하여, 2000년대 들어서는 1개 공장이나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두 망가졌다. 이는 인구 35% 이상이 농민인 농업 국가에서, 10년 가깝게 농업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반면에 그들은, 김일성 시신 보관소인 '금수산기념궁전' 개축에 2억달러, 노동당 창건 기념비 건립에 6천만달러, 단군릉 건축에 3천9백만달러, 강동 '특각'(김정일 별장) 건축에 1억3천4백만달러, 덕천 특각 건축에 2천2백만달러, 용성 유락단지 건설에 3천4백만달러, 국제 선물 전시관 건축에 3천7백만달러, 4.15김일성 생일 축제에 2천3백만달러 등 농업과는 아무 관계 없는 데 5억4천만달러 이상을 썼다.
이 지출 내역은, 90년대 중반 이후 수많은 주민들이 굶어 죽고 식량을 찾아 중국으로 탈출하게 만든 원인이, 역사를 1백년이나 퇴행시킨 '김씨왕조' 건설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준다.

이렇게 상황이 진행됐음에도 한국 정부는 99년에 15만5천톤, 2000-2001년 각 20만톤, 2002-2004년 각 30만톤, 금년 5-6월에도 35만톤의 비료를 보냈고, 여러 사회단체들도 그 동안 다량의 비료를 북한에 보냈었다. 말 몇 마디 하면 나오는 비료를, 왜 북한이 돈 들여 공장 짓고 아까운 원료, 전기 써 가며 생산하겠는가? 이런 그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는 수치가, 10년 전에도 80만톤을 생산하던 비료를, 2000년 이후에는 5만톤밖에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남한의 지원이, 북한의 비료 공장 재건을 가로막고 따라서 식량 증산을 방해했다는 얘기다.

4. 현대판 조공과 책봉

남북 관계에서 2005년은 과거와 또 다르다. 지난 2월에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92년에 맺어진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깬 정당치 못한 행위다. 그리고 남측으로부터 많은 경제적 지원 특히 2000년에 60만톤, 2002-2003년 각 40만톤, 2004년에 40만톤의 식량을 제공받으면서도 남측의 뒤통수를 친 의리 없는 행위다.

그렇다면 남측은 북측에 대해 어떤 응징을 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레 북측이 놀랄 정도로, 6.15평양축전에 대규모 정부 대표단을 파견하고, 전광석화 같이 비료를 제공하고, 위와 같이 50만톤의 쌀을 주기로 합의했다. 또 북한 전체를 리모델링해 주는 '7대 신동력 사업'을 입안하고, 200만KW 전력을 북한에 공급하겠단다. 이런 움직임은, 남측에 한국이란 국가가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한국인들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서도 그들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그런 부담을 지는가다.

이번 보내기로 한 쌀 50만톤을 보자. 이 중 적어도 국내산 40만톤은 헐벗고 굶주린 북한 주민들이 받을 확률이 거의 없다. 인민군대 110만명과 보위부 등 김씨왕조의 핵심 계층 수10만명 등 북한 인구 10% 정도가 지금 월급 겸 배급을 받고 있다. 이들이 북한에서 최고급 품질로 통하는 '남조선쌀'을 차지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7.12합의서 11번째의 엉성한 내용을 보면, 금년도 예년과 다름 없는 쌀 분배가 북한에서 이뤄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쌀 제공은 동포애도 뭣도 아니고, 김정일에게 바치는 현대판 조공(朝貢)일 뿐이다. 그리고 조공의 반대 급부로 책봉(冊封)받아 영구 집권하려는 일부 권력자들의 책략일 뿐이다.

박정희가 영구 집권할 수 있었던 까닭은 김일성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정일과 결탁만 하면 헌법 개정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북쪽에서 위기 사태만 만들어 주면 되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만 되면 영구 집권쪽으로 사회가 저절로 굴러간다. 이런 역사적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쌀 제공부터 막아야 한다. 누가 막을 것인가 물을지 모른다. 응당 국민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고 제 욕심만 채우려는 권력자 또는 대표자들을 뽑은 국민이 막아야지 누가 막겠는가?

-200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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