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88 ]칼럼니스트[ 2005년 7월 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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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골프공을 손에 쥐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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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몇 가지 욕심을 갖고 있다. 우선은 싱글골퍼가 되는 것이다. 물론 초보자(비기너)일 때는 보기플레이(90타)를 하는 것이 소원이지만, 어느 정도 실력이 붙으면 스코어 81이하를 치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싱글골퍼가 되기는 정말로 어렵다. 1주일에 두 번은 필드에 나가야 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싱글골퍼 치고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골프만 치니 무슨 사업이 되겠느냐는 뜻이 담겨있다.

골퍼가 싱글의 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바둑으로 치면 3급(아마 초단), 당구로 치면 300점 정도에 해당된다. 바둑 3급, 당구 300점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해본 사람이면 충분히 안다. 싱글골퍼가 되면 이번에는 공을 단 한번에 홀에 넣는 '홀인원'을 해보자는 마음이 생긴다.

골퍼들 사이에 이글은 '실력'이고 홀인원은 '운'이라는 말이 있다. 일류 선수들 가운데 홀인원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하니 홀인원이야말로 실력 이전에 행운이 작용한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아마추어골퍼들은 홀인원을 해보지 못하고 은퇴(?)를 하게 된다. 평생에 한번 하기 힘든 것이 바로 홀인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에 쳐서 홀에 들어가는 '홀인원'을 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일까. 미국골프협회(USGA)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확률은 3만3천분의 1이다. 톱 프로골퍼들은 2천분의 1쯤 된다고 한다. 매년 40차례 라운드를 즐기는 주말 골퍼라면 160번의 홀인원 기회가 있다. 이를 20년 정도 계속할 때 홀인원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확률은 확률일 뿐이다. 1989년 US오픈 2라운드가 벌어졌을 때 6번홀에서 닉 프라이스 등 4명의 선수가 홀인원을 기록했다. 이렇게 될 확률은 40만분의 1에 가깝다. 그러나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는 훨씬 높다니 아마추어골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이 되겠다.

지난 달 22일 구력 20년 가까이 되는 필자의 친구가 드디어 홀인원을 했다. 그야말로 교과서(?)에 나오는 확률대로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양산시에 있는 '에이원'골프장의 남코스 4번 파3홀, 즉 거리가 150m 안팎인 '숏홀'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채를 휘둘렀는데 깃대쪽으로 쪽바로 날아가더란다. 공이 깃대 앞에 떨어져 조금 구르더니 그냥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느끼는 희열 때문에 흥분이 되었던 탓인지 스코어는 엉망이었다고 한다.

필자의 친구는 집에 가서 부인에게 홀인원을 한 사실을 자랑했다. 부인도 골프를 치는지라 무척 부러워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다음 날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부인이 사고(?)를 쳤다는 것이 옳은 표현인지 모른다. 이게 웬일인가. 자신이 홀인원을 한 바로 그 홀에서 홀인원을 한 것이 아닌가. 친구는 "마누라한테 24시간도 채 폼을 잡지 못했다"며 웃고 말았다고 했다.

필자는 골퍼들이 홀인원을 할 확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특히 부부가 모두 홀인원을 경험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부부가, 같은 골프장에서, 같은 홀에서와 같은 식으로 따져보니 확률이 점점 제로(0)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확한 계산은 골치가 아파서 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천만분의 1'은 되리라고 본다.

골퍼가 홀인원을 하면 친구들에게 한 턱 내고, 기념공을 주문제작하여 선물로 돌리는 게 관행이다. 기념패는 보통 동반 플레이어가 만들어 준다. 그 친구를 만났더니 자기와 아내가 기념공을 만들기로 했다고 하기에 "각기 따로 만드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러지 말고 부부 공동이름으로 만들라고 일러주었다. 부부가 하루 차이로 같은 홀에서 홀인원을 하는 것이 어디 예사로운 일이냐며, 이것이야말로 기념공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비록 하루 차이이지만) 부부가 같은 홀에서 홀인원을 하는 '기적'은 확률적으로 가능하지만 당분간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적어도 10년 이상은 지나야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필자는 며칠 뒤 친구가 만든 '홀인원 기념공'을 선물로 받았다. 요즘은 골프를 안 치고 있는 것을 아는 그 친구는 "골프장에도 안 가면서 왜 달라"고 하느냐며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하도 조르니까 12개가 든 골프공 박스(싯가 4만원)를 주는 것이었다.

이 공을 억지로 받아낸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부부가 같은 장소에서 함께 홀인원을 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을 나란히 써놓은 '홀인원 기념공'은 다시는 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친구는 기념공을 수백개 만들어서 선물로 돌렸다. 아마 몇 달 지나면 모두 없어지리라. 그러나 필자는 죽을 때까지 보관할 것이다. 몇 년 지나면 혼자만 이처럼 '아주 특별한 골프공'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여간 즐겁지 않다.

그 친구와 부인은 하루걸러 홀인원을 하여 골퍼로서 최고의 행운을 안았지만, 저는 골프를 치지 않고도 부부이름이 적혀 있는 홀인원 기념공을 갖게 되는 행운을 잡았다. 홀인원을 한 골퍼의 기쁨은 세월이 좀 지나가면 사라지겠지. 하지만 홀인원 기념공을 갖고 있는 필자의 기쁨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이게 바로 수집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참, 필자의 취미는 수집이다. 돈을 들이거나 노력을 해서 귀한 것을 모으는 수집(蒐集)이 아니라 돈이 전혀 들지 않는 것들 모으는 수집(收集)이다. 보다 엄격히 말하면 모은다기보다는 갖고 있던 것을 안 버리는 쪽에 가깝다. 남들이 예사로 버리는 것을 그냥 갖고 있으니까 자연적으로 수집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수집한 골프공은 좀 애를 쓴 편이다. 어쩌면 '기획수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부부 공동명의로 된 홀인원 기념 골프공을 만들 것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돈 안 들고, 힘 안 드는 '수집활동(收集活動'은 죽을 때까지 계속할 작정이다.
                  - <0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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