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86 ]칼럼니스트[ 2005년 6월 2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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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공간'이 돼야 할 사이버세상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netporter


꼭 5년 전인 2000년 7월 어느 날, 인터넷에서 자신을 비방한 글을 본 중학교 2학년생이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인터넷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 같은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숨진 학생이 당한 일은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당시 대전시 교육청 홈페이지의 사이버토론방에서는 '학생들의 용모.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학생들과 교사들의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학생은 귀고리에다 염색을 하고 다녔는데, 친구들이 이에 대해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지만 어쨌든 잘못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비록 '튀는 모양'을 했던 그였지만 심성이 여렸던지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말았다.

야구팬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해 1월 프로야구선수 이승엽도 네티즌들로부터 엄청난 비방공세에 시달려야했다. 당시 선수들이 결성하려던 '프로야구선수협의회'의 결성에 대해 반대입장을 취했던 데 대해 네티즌들이 엄청난 비난과 욕설이 쏟아 부었던 것이다.

네티즌들은 '양심을 판 대가는 어떤 것으로도 용서 안 된다' '국민선수로 부를 수 없으니 은퇴하라'며 무자비할 정도로 사이버폭력을 가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팀 동료의 의견을 따랐다가 뭇매(?)를 맞게 되자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휴대폰도 꺼놓은 채 잠적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앞으로의 세상이 장밋빛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모든 길은 인터넷으로 통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인터넷이 해결해준다'는 의미로 해석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막연한 기대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잿빛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인터넷 상용화 초기인 1995년에 네티즌수가 50만명도 안 되던 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해 불과 4년 뒤인 1999년에 1천만명을 넘어섰다. 2000년도 중반에는 1천500만을 돌파하고 있었다. 네티즌이 늘어날수록 사이버공간은 비방과 비난, 폭력으로 심하게 얼룩져 갔다.

그러자 사법당국은 사이버공간에서의 명예훼손 행위 등 사이버비방이나 폭력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심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를 외면하거나 방치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2000년 5월10일 서울지검 형사6부는 모교의 스승이 자신을 서울대교수로 채용하지 않고 각종 심사위원에서 배제시킨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스승을 비방한 S디자인연구소 대표 황모씨(49)를 명예훼손혐의로 구속했다.

또 같은 달 22일 부산경찰청 수사과는 채팅을 하던 여성들이 만나주겠다는 약속을 어긴데 앙심을 품고 여성들 이름으로 '섹스파트너를 구한다'는 전자우편을 보내 이를 받은 네티즌으로부터 음란전화를 받게 한 김모씨(28·무직)를 명예훼손혐의로 구속했다.

 이보다 5일전에는 한 회사 중간간부인 이모씨(27)가 부하 여직원 2명이 자신을 무능하다고 비방한다는 이유로 인터넷 채팅사이트에 '동거할 남자를 구한다'는 글을 이들의 이름으로 올려 성적수치심을 일으키게 한 혐의(명예훼손)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해 5월29일에는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7단독 홍준호판사는 인기가수 박지윤의 팬클럽 회원인 함모씨(25)가 'PC통신 공개게시판에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안모씨(29)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2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홍판사는 이 때 다음과 같은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의 판결문을 남겼다. "PC통신과 인터넷 등 사이버공간은 자유로운 정보의 소통과 표현의 자유의 폭넓은 보장이라는 순기능 뿐 아니라, 최근 허위사실유포에 따른 명예훼손과 익명성을 이용한 질 낮은 언어가 범람하는 등 역기능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일정한 법적 제한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5년의 상황은 어떤가. 아무 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심화되었다고 하겠다. 갈수록 대담하게, 또는 교묘하게 타인에 대한 사이버 비방·비난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사이버테러'라고 해야 옳을 정도이다. 그 동안 당국이나 사회단체 등에서 많은 애를 썼는데도 '백약이 무효'이니 보통 걱정거리가 아니다.

최근 들어 인터넷 명예훼손 등에 대해 법원이 엄한 처벌을 잇따라 내리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3일 옛 애인(20.여)에게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한달 동안 100여차례 보내고, 남자친구의 개인홈페이지에 그녀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던 남자(23)에게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최근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과 관련, 아무 관계없는 대학생(19)을 비방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B씨가 관련자인 것처럼 신상정보를 올린 사람(20)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2월 학교선배를 비방하는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각종 인신공격성 글을 올린 여대생(20)씨에게 징역 10월 및 집행유예 2년, 16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렸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61조)'은 사이버상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경우 최고 징역 7년 이하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원 측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미니홈피 등에 허위사실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허위내용이 적힌 글을 사실 확인 없이 '퍼나르는 행위'까지 사이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네티즌들이 매일같이 접하고 있는 사이버세상이 아무리 가상공간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세계와 관계없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우리들의 일상생활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인터넷상에서 저지른 일은 현실세계에서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이버세상은 더 이상 남의 명예를 함부로 훼손시켜도 괜찮은 '방종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언동을 삼가야 하는 '책임의 공간'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인터넷상의 사이버폭력에 대해 엄격한 법적 심판을 가하는 한편 건전한 사이버공간을 만들기 위한 전 국민적인 노력도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0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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