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85 [칼럼니스트] 2005년 6월 2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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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난사 사건과 컴퓨터 게임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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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병은 매우 침착하고 덤덤하게 진술했다.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경기도 연천의 모 부대에서 총기난사 사고를 일으킨 김동민 일병을 면담했던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한 말이다.

사건 당일인 19일 오후 사고현장으로 가서 김일병을 40여분간 면담했던 조사관들은 "그는 사람 죽이는 것을 전투게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일병은 조사관들에게 "군대생활 자체는 괜찮았지만 부대원들과의 대인관계가 어려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필자는 정신분석학자나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다. 그러나 조사관들과 김일병의 설명과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번 사건이 컴퓨터게임과 상당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김일병이 컴퓨터게임 중독에 깊이 빠진 상태였다면, 이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침착할 수 있다는 점. 자신의 범행에 대해 후회하거나 반성의 빛이 없다는 점. 자신의 절친한 친구까지 살해했다는 점.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는 점. 이러한 정황들은 김일병이 컴퓨터게임에 중독되었을 것으로 짐작케 하는 요인들이 되고 있다. 대학 입학 후 제출한 학생카드에도 취미가 '컴퓨터게임'이라고 적었을 정도로 그는 '게임광'이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지금 온라인상에서는 김일병이 평소에 컴퓨터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네티즌들 사이에 사건의 동기와 관련해 컴퓨터게임 때문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다 보면 현실과 게임을 착각할 수도 있다"는 주장과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데, 게이머가 모두 잠재적 범죄자인가"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군대에서 관리 잘못한 건 뒤로 빼고 순전히 게임 때문에 그런 걸로 밀고 나간다. 게임 없던 시절에는 이런 사고가 없었나? 군대여 정신차려라." "네모난 막사를 모니터로 착각했다고? 정말로 기가 찬다." "어이가 없다. PC게임 때문에 그렇게 됐단 말인가. 문제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잃어버린 권위주의적인 군대문화이다."

"컴퓨터게임과 인과관계가 없다고 볼 수만은 없다. 실제 리니지를 광적으로 즐기던 학생이 교사가 몬스터 같다는 이유로 폭행한 일도 있었고, 이번 경우에도 김일병이 실제 사람을 상대로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리는 등 게임에서 학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확인사살, 정조준 등 보통 저 정도면 자살을 하는데 김일병은 범행 직후 무척 태연했던 점은 게임중독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필자는 이번 사건이 컴퓨터게임 중독과 상관관계가 많다고 주장하는 편에 서있다. 희생자 가족 중의 한 사람은 "부대 병사들이 유족들에게 김일병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가 '카운터 스트라이크'란 총격게임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김일병의 범행과정은 마치 컴퓨터게임을 한 것 같았다는 '증언'은 우리들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테러리스트와 반테러부대의 두 팀으로 나눠 '폭탄 설치', 'VIP 암살', '인질 구출' 등의 임무를 놓고 겨루는 1인칭 게임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상대팀 요인 암살, 상대진영을 폭파, 인질구출의 임무를 완수해야 승리를 거두게 된다. 무기는 권총부터 소총과 기관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살인경험이 없는 김일병이 흥분하거나 정신을 잃지 않고 차분한 조준사살과 확인사살을 했던 점으로 미루어 그가 게임광이었다면 순간적으로 GP 내부를 컴퓨터 가상현실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진 뒤 복도를 따라 가며 체력단련실에 있던 소대장을 사살한 과정이 컴퓨터 게임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같은 군 관계자의 말들은 상당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컴퓨터게임은 폭력적인 것이 많은데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김일병이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미리 "부대원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고 범행을 미리 계획했던 점은 컴퓨터게임에서 전략을 세우는 것을 연상시키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사이버공간에 접속하면 뇌기능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컴퓨터게임에 중독되면 현실과 가상세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가상현실 장애'를 앓게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컴퓨터게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가상과 현실 사이에 혼란을 느껴 현실에서도 가상공간에서처럼 '살인'과 '폭력' 등의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밖에 대인기피증세를 보이거나 강박감, 편집증 같은 증세를 보이고 심할 경우 '리셋증후군(reset syndrome)'을 앓기도 한다. 이 증후군은 컴퓨터가 이상을 일으켰을 때 리셋 버튼을 누르면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이나 인간관계 등을 포기해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김일병이 절친한 친구까지 죽인 사실은 리셋증후군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전방초소 총기난사 사건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군대문화와 게임중독에 빠진 게임광의 광기(狂氣)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게임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현대적 질병'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김일병에 의해 희생당한 장병들이 이번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갔다가 억울하게 죽은 그들이야말로 아무 죄 없이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다. 잔인무도한 김일병이 '잘못된 군대문화' 때문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며 옹호하는 분위기는 사라져야 한다.

세인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이 마치 군(軍)에만 있는 것처럼 나무라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쉽게 좌절하고, 조그만 일에도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갖게 된 것은 과연 누구 때문인가. 군을 나무라기 전에 가정과 학교,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힘쓰는 것이 순서이다.

                  - 200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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