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84 [칼럼니스트] 2005년 6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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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와 감고당의 개
김소희 (동물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animalpark


덕성이 높아 국모로서 만백성의 추앙을 받았던 인현왕후가 득남한 희빈 장씨의 간계로 폐서인이 되어 안국동 본가 감고당으로 쫓겨났을 때의 일이다. 언젠가부터 새끼를 가진 개 한 마리가 감고당을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떠날 줄을 몰랐다. 험상궂고 더러운 몰골에 질겁을 한 궁녀들이 아무리 내쫓아봐도 별 소용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인현왕후는 "내 집에 들어온 것이니 그냥 두어라. 이 곳이 좋은 모양이다." 라며, 추운 날씨를 걱정해 헛간에 따뜻한 보금자리까지 만들어 주었다. 폐가나 다름없었던 감고당은 사람 먹을 것도 모자란 형편이었지만, 인현왕후 덕분에 마음 편히 먹고 잘 수 있게 된 개는 당연히 제 할 일이라는 듯 열심히 감고당을 지켰다.

얼마 후 태어난 강아지 세 마리까지 더해 모두 네 마리의 개가 번을 서는 통에 감고당은 저절로 잡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 또, 어려운 형편을 헤아렸는지 개들이 닭을 잡아 마당에 두곤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장희빈과 장희재는 인현왕후를 암살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객을 보냈지만, 개들이 밤낮으로 인현왕후의 곁을 지킨 덕분에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6년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감금 생활을 해야했던 인현왕후가 무사히 복위되어 중궁전으로 돌아가자, 어찌된 일인지 그 날 이후 개들은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폐서인 시절의 인현왕후와 개에 관한 이야기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궁녀가 쓴 소설, <인현성후덕행록>에 전해지고 있다. 이름도 품종도 알 수 없는 이 개들은 왜 하필 감고당에 들어갔으며, 또 그렇게도 열심히 인현왕후의 침소 앞을 지켰던 것일까?

은혜를 갚은 충견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우리네들의 삶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KTF 드라마 클럽, 2005.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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