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83 [칼럼니스트] 2005년 6월 15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거시기 머시기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무시와 인정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열등감이나 마음의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만은 주변의 한 친구는 유독 심해 어느 때는 안타깝다 못해 짜증스러웠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그런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학벌, 금력, 인맥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제대로 없고, 말재주와 넉살이라도 번드르하게 좋으면 괜찮으련만 그렇지도 못하다며 한탄했다.
간신히 중학을 마친 그가 무작정 상경 대열에 끼어 서울땅을 밟은 뒤 매우 친숙해진 곳이 한강변이었다. 맑은 강바람이나 연인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었다. 갈 곳 마땅치 않는 낮과 잠자리 없는 밤이면 그를 반겨주는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그렇게 굶주리고 헐벗으며 온갖 일 물불 안가리고 한 덕분에 나중에는 잘 나가는 보신탕집을 열어 살림기틀을 마련했고 한때는 여관도 운영했다. 그 뒤에도 무슨 일이든지 마다 않고 악착같이 하여 지금은 남부럽잖은 일가를 이루었다.
이는 해방 전후에 태어나 6.25 등 숱한 풍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거의 보편적인 일로 별다른 얘깃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 산전수전을 겪은 당사자들로서는 몇날 몇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부족할 드라마요, 한과 고통, 후회와 긍지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도 주변사람이나 식구들에게 험한 세상을 이렇게 헤쳐왔다며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칠 만도 한데 그의 열등감은 그걸로 해소되지 않았다.
오래전 어느 모임에서 고향친구 두어 명이 가방끈 짧아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그를 비난한 것이 응어리져 마음 깊숙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학력컴플렉스로 삶의  고비마다 쓴맛을 보아오고 있던 그의 가슴에 그들의 사려깊지 못한 한 마디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역시 고향친구들 때문에 받은 또다른 상처가 있었다. 그토록 고생해서 모은 돈을 빌려 줬더니 갚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모멸감까지 안겨 주었다. 그 뒤부터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금전관계를 철저히 따지고 챙겼다. 치사하게 아낀다며 비난하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앞의 문제들과 달리 그를 위축시키는 것이 또 있는데 그건 약간 어눌하고 말수가 적은 점이다. 과묵은 요즘 세상에 미덕이면 미덕이었지 전혀 문제될 것 없는데도 본인은 자신의 학력 등과 결부시켜 흠으로 여겼다.
몹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것을 가방끈으로 폄하할 수 없고, 자기 돈을 떼이며 생긴 불신이야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해도 주변 일부의 편견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인도 주변의 이런 분위기를 눈치 채고 있었다.
5년 전쯤 그가 서울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 그뒤 그의 일상을 대강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부인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는 말을 들으니 꽤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씩 집에 틀어박혀 집안이 숨막히니 친구들이 서울에서 자주 놀러 오든지 아니면 남편을 서울로 불러 내라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의 근황을 물으면 달라진 것 없이 마찬가지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지난 해 가을 나 혼자 그를 찾아갈 일이 생겼다. 몇 번 가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 마음먹고 나선 것이다. 도착하자 점심먹으러 음식점으로 가자는 걸 마다하고 그의 아파트에서 상당히 떨어진 강을 택했다. 강가에 그가 일궈놓은 밭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술과 안주를 싸들고 그곳으로 갔다.
워낙 과묵한 친구라 강가에서 단둘이 마시는 것이 자칫 고역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예상밖의 일이 생겼다. 그가 자기 텃밭 부근에서 일하는 이웃을 불러 인사를 시키더니 같이 한잔 하자고 권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있는 일이지만 이 친구한테는 드문 모습이었다. 평소와 달리 밝은 표정으로 농담도 많이 주고 받았다.
그곳으로 이사한 뒤 텃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가꾸는데 하루가 어떻게 간지 모른다고 했다. 농촌출신답게 농사를 야무지게 지었다. 밭일이 없는 날은 산에서 지내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상처들이 꽤 아물고 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것으로 새로운 환경에 따른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친구가 그처럼 달라진 것은 의외라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몇시간 뒤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강변에서 술을 마시고 그의 집으로 돌아갔는데 저녁을 먹고 가라는 것이다. 인사말로 듣고 사양하니 내가 온다고 해서 이웃 사람 셋을 초대했으니 그리 알라고 했다. 이 역시 평소의 그와 상당히 달라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들은 그보다 나이가 서너살씩 위인데 떠들썩할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며 매우 쾌활했다. 들어보니 거의 매일 그렇게 만나며 누군가가 안 보여도 어디서 뭘하는지 다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 그래도 워낙 달라진 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느낌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로 돌아올 무렵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아파트 앞에서 한 잔 더 하자며 술집으로 끌고 들어갔다. 술도 항시 내가 더 하자고 하면 그는 마지못해 응하거나 사양했으므로 이것도 놀랄 일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3년전쯤 아파트주민회의가 열렸는데 뜻밖에 동대표로 뽑혔고 연임까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과 가까워졌고 지금 자주 만나는 이들은 다른 동대표거나 그와 관련있는 사람들로 늘 접촉하다 보니 친해졌다. 이런 건 어디가나 흔한 일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용인데 그에게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사양했지. 내 성격 잘 알잖아. 그런데도 맡으라고 하니 별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일을 맡고 열심히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고 주민들도 진심으로 고맙다는 반응을 보내왔다.
자기도 모르는 힘과 자신감이 생겼다. 학력, 끗발, 고통스럽던 지난 날의 가난을 가지고 자기를 무시하던 사람들과 달리 이곳 주민들은 그의 현재 능력을 인정하고 믿어주었다. 편견과 선입견 없이 그를 대하고 인정해주는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신뢰가 그처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준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가 사람대접을 받아 본 것이 처음이야. 늘 무시당하고 밟혀왔지만 여기서는 달랐어. 시간이 지나고 더욱 가까워지면서 나중에는 서로 지난날 흔적과 상처도 알게 됐지만 이제는 그게 부담되지 않아. 최소한 이 동네에서만은... 나 자신도 가끔 놀랄 만큼 변했어. 그만큼 자신이 생긴 거지."
가슴이 뭉클해진 나는 말을 잃었다.  '사람대접을 처음 받아본다'느니 '무시당하고 밟혀왔다'는 등의 표현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뜻만은 가슴에 충분히 와 닿았다. 그 동안 상처가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겠는가.
열등감에 시달리던 그의 삶이 남들 보기에 사소하다면 사소한 계기로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항시 어둡던 그의 얼굴이 밤인데도 환하고 목소리 역시 맑고 밝았다. 아무렇지 않게 던진 '사소한' 한마디로 그에게 긴 세월 상처를 주었던 이들의 실수가 크게 떠오르며 선명하게 대비되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면 묵은 빚처럼 늘 무겁게 내 가슴속에 자리잡았던 납덩이도 사라진줄 모르게 어느 새 사라졌다.

-       '우리길벗' 6월호(2005 06)

-----
박연호 글 목록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