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82 [칼럼니스트] 2005년 6월 1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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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인사말, 올바로 씁시다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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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날들을 모아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부디 오셔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저희 두 사람이 이제 믿음과 사랑으로 한 길을 가고자 합니다. 부디 오셔서 축복해 주십시오.』

위에 예를 든 2개의 문장은 자녀들의 결혼식에 와주시기를 바라는 뜻으로 친지에게 보내는 청첩장에 적힌 내용이다. 두 가지가 어슷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약간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우선 첫째 문장을 살펴보자. 얼른 봐서는 이 글을 보낸 사람이 혼인당사자인지, 그들의 부모인지 알 수가 없다. 당사자라고 봐도 되고, 어른이라고 봐도 어색할 것이 없다. ''사랑을 키운 두 사람''이라는 말 앞에 ''저희''라는 말이 없으니 신랑신부의 부모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두 번째 문장은 어떤가. ''저희 두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저희''라고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혼인을 하게 되는 신랑·신부를 말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결혼식을 올리게 되니까 친지들이 식장에 오셔서 축복해 달라는 뜻이다.

필자의 나이가 이순(耳順)에 접어들면서 한 달에 5통 안팎의 결혼청첩장을 받고 있다. 대부분 친구들의 자녀들이다. 사실이지 축의금 내는 일에 부담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의 자식이 배필을 만나게 됐으니 기뻐할 일이다. 그리고 결혼식장에 가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기분은 더욱 좋다.

옛날부터 관례·혼례·상례·제례의 4가지 예를 말하는 관혼상제(冠婚喪祭)는 대사(大事)였다. 그래서 혼례나 상례를 치를 때는 온갖 예를 갖추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허례허식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 혼례의 경우 ''자식 시집보내다가 기둥뿌리가 빠지겠다''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5월17일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 잡겠다며 만든 것이 ''가정의례준칙''이다. 이 때문에 거창하게 벌어지던 피로연이 없어지고 답례품도 사라지는 듯 했다. 만약 이를 어겼다가는 무슨 화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치를 봐서 음식도 대접하고 답례품도 주는 풍습을 버리지 못했다.

가정의례준칙에는 ''혼인은 당사자간의 합의로 결정하며 혼례식에는 친척과 가까운 친지에 한하여 초청하고 청첩장은 내지 않도록 한다''는 조항이 있다. 신랑·신부의 부모들이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청첩장까지 보내지 말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가정의례준칙이 현실과는 적지 않은 간극을 보이게 되자 정부당국은 조금씩 완화하기 시작했다. 음식대접, 선물증정, 청첩장보내기 등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것이 결혼식과 관련한 일이다. 특히 자식의 혼인을 앞두고 부모들이 친지들에 청첩장을 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절차이자 예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의 청첩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가 누구를 청첩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심하게 말하면 몰상식한 경우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청첩인은 분명히 혼인당사자의 부모들인데 내용은 그게 아니다. 청첩장에 적혀 있는 문구는 거의가 결혼하는 본인들의 인사말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식장에 꼭 참석해달라는 내용들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니, 이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필자가 최근에 받은 청첩장의 인사말은 이처럼 8할가량이 신랑신부가 어른들에게 드리는 말씀으로 되어 있었다. 2건 가량은 앞에서 말했듯이 인사말의 주체가 ''애매''했다. 딱 부러지게 부모들이 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문맥의 청첩장은 한번도 보지를 못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결혼식의 청첩은 어른들이 하게 되어있다. 부모가 없으면 집안의 다른 어른이 대신하는 것이 예의이다. 결혼 당사자가 부모를 놓아두고 어른들에게 청첩인사말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례(無禮)''한 일이다. 그런데도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까.

어쭙잖은 일 같지만, 이런 청첩장을 받아 볼 때는 기분이 썩 나빠진다. 그렇게도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일컬어지는 혼례의 과정에서 이런 실수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청첩인이 반드시 청첩인사말을 쓰는 예법을 갖추도록 하자.

                  - 200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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