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78 [칼럼니스트] 2005년 6월 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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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 트릭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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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13-15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거기서 '6.15남북공동선언'이 만들어졌다. 이 선언에 담긴 5개 합의 사항을 읽어본다.

<합의 사항 1>은 통일의 원칙을 쓴 것으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다. 이 문장을 '남과 북은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줄여 써도, 2 문장의 뜻은 마찬가지다. 그 까닭은 '나라의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란 말이, 바로 '자주적'(自主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궂이 말을 부풀려 쓴 이유는 뭘까? 그건 '우리민족'이란 낱말을 문장에 넣기 위해서다.

한민족 또는 조선민족이라 쓰면 문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너와 나의 민족'으로, 마치 '우리 사람'처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이다. 이 부적절한 보통명사 '우리'를, 북한에서는 고유명사화했다. 즉 '우리민족'은 '김일성민족'으로, 민족의 태양인 김일성을 모시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를 북한 개념으로 바꿔 쓰면, '고려민주연방공화국[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김일성민족[우리민족]끼리'가 된다. 얼떨결에 남한이 북한에 흡수 통합된 것이다.

<합의 사항 2>는 통일의 구체적 방법을 쓴 것으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다.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는 1980년 10월 조선노동당 6차 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창립하면서 공식화된 것이다. 이 '연방 정부' 아래 남한과 북한은 '지역 정부'로 존재한다. 연방 정부가 지역 정부를 지도, 총괄하여 양쪽의 모든 부문을 균등하게 맞춰 나간다. 이를 위해 '10대 시정 방침'을 정해 놨다. 6.15공동선언은 이 시정 방침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다.

'남측의 연합제안'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아래부터 편의상 DJ로 표기) 개인이 생각한 통일 방안이다. 이 방안은 3단계로 통일하자는 것인데, 1단계는 공화국 연합, 2단계는 연방제, 3단계가 완전 통일이라고 알려졌다.

이 DJ 제안과 북측 제안은, 합의 사항에 써 놨듯 '서로 공통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무력 통일 이외에는, 어떤 통일 방법이든 '단계적 수순'이 안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합의 사항 2'는 DJ와 북한의 제안을 혼합시켜, 이 혼합시킨 방안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인데, 이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국 헌법에 위배된다.

헌법 66조 3항에,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추진 방향은, 헌법 4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것과 일치해야 된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란 그 전제 조건이, 통일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승만정권 때부터 통일을 권력 유지에 악용했기 때문에 생긴 헌법 정신이다. 다만 대통령은 '성실히' 통일에 관한 국민의 의견을 널리 모으고, 중요한 통일 정책은 헌법 72조에 정해 놨듯 국민투표에 붙여 결정해야 된다. 이 질서를 지키는 것만이, 1987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공식적이며 유일한 한국의 통일 방안이다.

그럼에도 DJ는 개인의 통일 방안을 북측에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이뤄진 합의를 국민으로부터든 국회로부터든 대통령 임기 종료인 2003년 2월 이전까지 어떤 동의도 받은 바 없다. 따라서 당연히 '합의 사항 2'는 원천 무효다.

<합의 사항 3>은,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지 방문단을 교환하며 미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올해 8.15에 즈음하여'란 표현이 문제다. 이 표현은 공동선언이 2000년에 한정된 일시적 조치만을 합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후 북한이 인도적 조치를 일방적으로 중지해도 남한은 할 말 없게 됐다. 또 인도적 조치를 할 때마다 보상을 해줘야 하는 빌미를 북한에게 줬다.

<합의 사항 4>가 공동선언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눠 쓰면, 앞부분이 <남과 북은 경제 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다. 이 부분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의 10대 시정 방침 중 세번째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북과 남 사이의 경제적 합작과 교류를 실시하여 민족경제의 자립적 발전을 보장하여야 한다'를 베껴 쓴 것이다.

베껴 쓰면서 '경제적 합작과 교류'를 '경제 협력'으로 바꿨는데, 그게 그 뜻이다. 또 한군데 '자립적'을 '균형적'으로 바꿨는데, 이것은 다른 뜻이다. 10대 시정 방침이 만들어진 80년대는 북한 경제가 남한 못지 않았다. 각자 따로따로 '자립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 북한에게 유리했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역전되어, 남한의 경제 수준이 북한보다 훨씬 높아졌다. 북한 경제를 남한 수준에 '균형적'으로 맞춰야 되니, 남한의 재화를 북한으로 보내라 또는 보낸다는 뜻이다.

합의 사항 4의 뒷부분이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다. 이 부분은, 10대 시정 방침 중 네번째인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과학, 문화, 교육 분야에서 북과 남 사이의 교류와 협조를 실현하며 나라의 과학 기술과 민족문화예술, 민족교육을 통일적으로 발전시켜야 된다'를 간명하게 변형시킨 것이다.

<합의 사항 5>는, 위의 네 가지 합의를 실천하기 위해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한다는 보완 사항이다.

위와 같은 합의 사항들을 쓰고, <김대중대통령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라는 공동선언 후기를 붙였다.

이 초청은 DJ가 대통령직에 있을 때까지 유효하다. 민간인이 되면, 대통령일 때 초청한 것은 무효가 된다. 따라서 김정일 서울 방문의 '적절한 시기'는 정상 회담 후부터 2년 반 정도였다. 언제든 서울을 방문하기에 충분히 긴 기간이었고, DJ도 방문을 여러 차례 촉구했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방문 약속을 어겼다. 이 약속 불이행은 공동선언에 어떤 트릭이 있음을 말해 준다. 당시는 뭐가 뭔지 불분명했었는데 금년 2월 들어서야 전모가 드러났다. 한손엔 노벨평화상, 한손에 핵폭탄을 쥐려는 꿍꿍이들이었다.

후기 아래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두 사람이 서명하는 것으로 공동선언은 끝났다. 그런데 헌법 82조에 '대통령의 국법상(國法上)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고 돼 있다. 공동선언은 문서로써 하긴 했는데, 부서가 없다.

정상의 지위를 대를 이어 물려받는 북한에서는 부서고 나발이고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부서가 없으면 분명히 헌법 82조 위배다. 이 위배를 피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공동선언은 국법상 행위가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즉 6.15남북공동선언은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작성한 사문서 또는 메모랜덤이란 얘기다.

-200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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