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76 [칼럼니스트] 2005년 5월 2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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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식 최고의 상징, 빵과 포도주
박연호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http://columnist.org/ynhp

중학교 체육시간. 차렷자세와 그 정신을 기르치던 체육선생은 벌이 달려 들어도 끄떡하지 않았다는 일본군의 강력한 정신을 예로 들며 땡볕에서 괴로워하는 어린 학생들들을 다그쳤다. 이어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장면을 상기하면서 '서양놈'들의 한심한 정신상태를 비난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 반파시스트파 게릴라의 활약상을 그린 이 영화에서 주인공 조던이 거칠고 험악한 산속으로 들어가자 맨 처음 나온 것이 빵과 포도주였다. 음식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그 체육선생은 빵은 당연하지만 포도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박한 전쟁터에서 술이라니... 대신 빵을 하나라도 더 준비해야지 하며 비분강개했다. 195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4월. 신임 교황을 선출하는 회의 즉 콘클라베에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까지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추기경들을 격리 수용, 3일 안에 새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면 하루 한끼만 주고, 5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면 빵과 물, 포도주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하는 특이한 방식과 그 유래 때문이었다.

50년전 그 체육선생 기준으로 보면 굶겨도 시원찮을 판에 술이라니 하고 혀라도 찼을 터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매스컴의 자상한 설명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도운 측면도 있지만 그 동안 우리가 서양음식을 많이 접한 덕분이기도 했다.

현재 빵은 서양의 정식식탁에서 스테이크를 비롯한 고기에 밀려 상석 밖을 맴돌고 있지만 종가의 품위는 잃지 않았다. 과거에 비해 약간 낡고 퇴색했지만 포도주와 함께 서양음식 최고의 터주대감이라는 자부심만은 여전하다. 식탁 윗자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다.

빵의 본토수복을 위한 사회적, 종교적 뒷받침도 만만치 않다. 영어의 bread winner(가족을 먹여 살리는 집안의 대들보), earn one's bread(생활비를 벌다), out of bread(실직하다) in goodbread(행복하게<불행하게>) 등처럼 서양인들의 사고방식 속에 자리한 빵의 위치 또한 절대적이다.

빵은 인류문명의 발생과 함께 시작했고 그 원료인 야생 밀은 9000년 전부터 채취되었다. 기원전 6000년 전에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밀이 재배되었다. 빵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인들의 식생활을 지배했으며 권력, 종교 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리스, 로마인들은 농업경작을 가장 중요한 생산양식과 최고의 가치체계로 꼽았다. 음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다른 어느 방법, 어떤 수단보다 높은 최상의 대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문화인, 문명인을 자처했다. 경작은 문명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밀, 포도, 올리브등 농작물은 그 시대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초기의 빵은 매우 거칠고 뻑뻑해 포도주를 곁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쪽의 물 사정이 썩 좋지 않은 것도 한 몫했다. 이런 맥락에서 빵과 포도주는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게 되었다.

반면 경작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인 숲과 강에서 사냥과 어로를 통해 양식을 조달, 즉 육식을 위주로 하는 게르만족과 켈트족 등을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또 무어인들이 밀 보리 같은 곡물을 먹기는 하지만 조리하거나 가루로 만들지 않고 '짐승처럼 있는 그대로' 먹는다고 흉보았다.

'일리어드' '오디세이'의 작가 호머는 "인간은 빵을 먹는 사람"'이라고 정의, 빵을 문명의 종합상징으로 치켜세웠고, 피타고라스도 "온 세계는 빵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며 빵의 위치 구축을 거들었다. 고대 지중해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서사시 '길가메시'도 '야만인들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 문명화되었다'고 표현, 빵과 포도주를 멀리 하면 미개인이라는 주장을 강력히 시사했다.

기독교 역시 육식을 경계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씨앗을 주었고, 이것들은 땅에서 나무와 열매가 되며 식량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서한에서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예수 또한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는 자는 그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죽은 짐승의 시체를 먹는 자는 죽인 자가 되는 것이며 또 자신을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라며 육식을 금하도록 했다.

이런 주장들과는 다른 차원이지만 1776년 아담 스미스도 "고기가 생명 유지에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심스럽다. 경험에 의하면 고기보다는 밀이나 다른 식물성 음식이 더 풍요롭고 건강에 좋으며 영양가도 높아 활력을 준다. 격조 높은 식사라고 할 때 반드시 고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는 평민들의 고기 요구를 일축하는 반서민적이고 불순한 주장이라는 의심을 불러 일으켰지만 채식을 강조하는 것만은 일맥상통했다.

그러나 고기쪽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세기 전반에 이미 빵을 비롯한 채식보다 더 강력한 맛과 힘을 가지고 식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회세력과 종족이 로마제국 변방에 모습을 드러내고 '야만인' 출신이 황제가 되는 일도 생기면서 육식이 강력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고기를 먹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경멸스러운 짓이라는 등 지금으로 봐서는 어처구니 이를 데 없는 반발이 잇따랐지만 '문명인'들도 결국 고기맛을 알았다.

중세에 들어 숲의 경제적 가치가 급속도로 커지면서 고기도 덩달아 중요한 식량의 위치를 확보, 고기소비는 체력과 능력의 척도로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즉 권력이 큰 사람들의 몫이 되었고, 프랑크족은 육식포기는 무기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간주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식탁에서 빵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빵은 나의 몸이요, 포도주는 나의 피이니라' 하며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기독교가 로마의 정식 종교로 인정되면서, 포교의 주요 수단이 된 빵과 포도주의 위치는 오히려 더욱 견고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빵 역시 빈부와 귀천을 가르는 반갑지 않은 잣대 기능을 하게 되었다. 즉 흰빵은 귀족, 성직자가 아니면 엄두도 못냈고 서민들은 호밀로 만든 흑빵에 만족해야 했다. 평생 소원인 흰빵이 먹고 싶어 성직자의 길을 택한 사람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영양가가 높다고 해서 흰빵보다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당시 갓 구워낸 흑빵은 밀가루 흰빵과 달리 맛이 없고 소화도 잘 안되었다.

현재 세계적 명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독일 베스트팔렌의 호밀빵 품파니켈에는 그 당시 서민들의 정서가 잘 반영되어 있다. 베스트팔렌 사람들은 매우 거칠고 잘 구워지지도 않으면서 석탄처럼 새카맣기만 한 이 호밀빵을 품파니켈이라고 불렀다. '품파'는 방귀를 뀐다는 말이고 '니켈'은 악마 니크라는 뜻이다. 소화가 잘 안돼 악마조차 방귀를 뀌는 빵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나마도 먹기 힘든 빈민들은 밀가루 약간, 우유, 야채 등 여러 가지를 뒤섞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끓여 먹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수프다. 그렇게 시작된 수프는 식량이 풍부해지고 요리내용이 바뀌었음에도 그대로 살아남아 식사 코스로 당당히 자리잡았을 뿐만 아니라 식당의 음식솜씨를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 되었다.

빵이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식탁의 중심자리에서 밀려나 있지만 본토회복을 위한 재역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단순한 꿈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건강과 환경보호 차원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종교계 역시 반육식의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육식의 종말'을 저술한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이런 흐름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문명인'을 자처하며 빵과 포도주를 내세운 그리스 로마인 즉 남유럽인들이 북유럽의 게르만 켈트족 등의 육식을 경멸했던 것처럼 '야만인'들이 마시는 맥주에 대해서도 편견이 매우 심했다. 30년 전쟁 당시 한 스페인 병사는 '맥주가 열병에 걸린 말의 오줌 같다'며 마시기를 거부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남유럽의 '문명인,들이 맥주를 대하는 전반적 정서는 이 병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맥주도 육식이 채식을 위협한 것 못지 않게 포도주 영역을 파고들어 그에 못지 않은 지지세력을 확보했다. 대중성에 있어서는 포도주를 완전히 따돌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빛이 바랬어도 종가는 종가인 법. 빵과 포도주가 이처럼 강력한 경쟁자들을 만나 지난 날의 영광을 되찾는데 고전하고 있지만 그 역사성과 종교적 상징성은 여전히 막강하다. 또 그에 대한 현실적 여건도 꽤 우호적이어서 유럽음식의 핵으로 복귀하는 날이 의외로 빨리 올지도 모른다.
         - '용품정보' 5.6월호 (20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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