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75 [칼럼니스트] 2005년 5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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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패트리어트가 한국인 잡는다 (2)


홍순훈 (아하출판사 대표,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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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94년부터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팔지 못한 결정적 이유가, 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미사일 48기에 13억2천만달러, 2조원, 3조4천억원 등 언론조차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못하고, 보도에 따라 조(兆) 단위로 값 차이가 날 정도로 비싸다.

그런데 지난 2월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고 선언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이 핵무기에 대응하여 꺼낼 카드는, 값이 싸고 비싸고를 떠나, 과거부터 논의되던 SAM-X(차기 유도무기 사업)뿐이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쓰던 나이키 미사일을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바꾸는 것이다. 바꾸는데 ‘독일 패트리어트’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노대통령이 4월에 방문한 독일과 터키가, 가장 대규모로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GPR)가 이뤄지는 곳이다. 독일에서는 미군 3만여명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며, 터키에서는 2005년 5월1일 대형 미 공군기지가 이미 폐쇄됐다. 이 곳 대신 폴란드와 헝가리 등에 소규모 전진 기지를 여러 개 새로 만든다. 미군 숫자가 대폭 줄어 든 유럽에서, 지금껏 보유했던 패트리어트를 모두 운용한다는 것은 무리다. 또 러시아의 바로 코 앞인 새 기지로 미군이 보유했던 모든 패트리어트를 끌고 간다면 러시아를 너무 자극한다. 이런 상황이 되자 독일 등지에 있던 상당수의 패트리어트가 처치 곤란해졌다. 이 처치 곤란한 중고 무기를 싼 값으로 줄 테니 한국이 사 가라는 것이다.

이 제안은 미국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굿아이디어다. 왜냐 하면 불필요해진 무기 팔아 돈 벌고, 중국과 북한의 공격을 막는 미사일 방어 체재(MD)에 한국군과 한국 무기를 동참시키기 때문이다. MD는 미 본토, 알래스카, 하와이, 괌 그리고 오키나와 등 미군기지를 방어하는 미국만을 위한 체재다.

한국의 SAM-X사업은 미국 MD에 ‘동참’ 또는 ‘편입’될 수밖에 없다. 그 근본 이유는 수십년 동안 그런 식으로 함께 군사 작전을 펴 왔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SAM-X나 MD나 패트리어트라는 꼭 같은 무기로 구성된다. 그 무기는 인공위성이란 같은 시스템으로 운용된다. 그리고 한국이란 좁은 지역에서 같은 목표물을 요격한다. 이런 동일성으로 말미암아 소규모인 SAM-X가 대규모인 MD에 편입 안 될 수 없고, 또 그들의 기술적 및 전략적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다.

미국 MD에서 한국은 최전방 또는 제1차 요격 베이스다.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중국과 북한에서 뜨는 폭격기나 미사일을, 오산, 평택, 군산, 광주 등지에 주둔한 미군 패트리어트 부대가 격추시킨다. 미국 영토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큰 문제가 생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않았을 때는 비행 물체를 한국 땅에 격추시켜도 수십, 수백명 정도의 사상자로 큰 피해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핵무기를 실은 비행 물체를 격추시키면, 한국 땅이 방사능으로 오염돼 어떤 가공할 일이 벌어질지 예측조차 어렵다.

한국이 배치하려는 패트리어트도 미군 MD와 꼭 같이 방사능 위험만 가중시킬 뿐, 한국 방어의 최대 과제며 임무인 수도권 주민 2천여만명의 생명을 지키는 데는 아무 쓸모가 없다. 왜냐 하면 휴전선 바로 북쪽에서 수도권으로 날아오는 장사정 포탄 및 미사일의 숫자가 24 시간당 1천발일지 2천발일지 부지기수다. 이런 소나기 포격을 방어하는 데, 48기니 몇 10기니 하는 10 단위의 패트리어트는 원천적으로 부적합하다. 여기에 대한 방어는 과거부터 대공포와 호크, 천마 등 국산 지대공 미사일이 맡아왔다.

이런 방어 체제가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지역에 구축돼 있다. 그리고 한국을 공격하는 비행 물체를 요격할 수 있는 F-4 등 비행기가 500여대나 있다. 최근에도 수십대의 F-15를 도입할 예정이란 보도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한국 방어에 지나치게 돈을 처발랐다.

패트리어트는 위와 같이 군사적인 면에서도 자해(自害)성의 불필요한 무기지만, 정치, 외교 측면에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사서 배치할 명분이 없다.

ㅇ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목적이, 한국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라고 공언하고 있다.
ㅇ 정부는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여기지 않고, 남북 대화를 강조해왔다.
ㅇ 남북 대화에 따른 대북 경제 원조가, 북한의 핵무기 제조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한국이 패트리어트를 사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만사가 그렀듯, 돈이다. 2004년에 1인당 세금이 310만원이 넘었다. 4인 가족 1가구가 매달 1백만원꼴로 세금을 냈다. 그럼에도 지난 5월12일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당정 협의에서 조세 부담률을 더 올리기로 했다. 올리는 이유 중 하나가 국방 예산을 연 9-10% 늘리기 때문이라 한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공자가 한 말로 많이들 써먹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인데, 지금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가진 것이라곤 2쪽밖에 없는 서민들이 핵폭탄이 뭬 무섭겠는가? 벼슬아치들, 지금 해도 너무 한다. 패트리어트 사 오지 말고, 세금 더 걷지 말기 바란다. (끝)

-200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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