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73 [칼럼니스트] 2005년 5월 20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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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란(動靜欄) 소식이 개인정보 유출?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서울칼럼니스트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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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기업체라면 사보(社報)보를 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사내보를, 대기업은 사외보를 주로 만든다. 사보는 기업의 방침·정책·실태를 전달하고, 종업원을 교육하며, 종업원에게 상품지식을 보급하거나 종업원 의견을 경영자에게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종업원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하게 함으로써 상호교류의 광장이 되기도 한다.

사보는 대체적으로 정보적 기능, 설득적 기능, 오락적 기능 등 3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종업원이나 소비자의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끼치려 하면서, 즐거움도 선사하는 것이 사보제작의 목적이라고 하겠다.

사보(House Organ)의 종류를 좀 더 세분화하면 △사내보(社內報 Internals) △사내외보(社內外報 Combinations) △준사외보(準社外報 Sub-externals) △사외보(社外報 Externals) △전자사보(電子社報)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사내외보는 기업 밖에서의 기업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독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을 뜻한다.

한편 전자사보는 인터넷 열풍으로 전자출판시대가 열리면서 생긴 사이버공간에서의 사보이다. 말하자면 종이에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화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전자사보는 시간이나 장소의 제한이 없이 필요한 내용을 적절한 때에 올리면 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사보의 효시는 1840년 미국의 로웰방직회사(Lowell Cotton Mills)에서 창간한 ''로웰 오퍼링(Lowell 0ffering)''이다. 그 뒤 다른 기업체에서도 이러한 사보를 다투어 발행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미국에서만도 10만종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금융기관이나 기업체에서 사보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사보는 화장품 메이커 태평양화학이 1958년 발행한 ''화장계''로 알려져 있다. 이 사보는 1968년 ''香粧''으로 제호를 바꿔 재창간했는데, 현재 발행부수가 월 130만부라고 한다. 1960년 1월에 창간된 동양맥주의 ''사보 OB''가 국내 최초의 사외보로 인정받고 있다.

기업체들이 사보를 발행하는 것은 그것이 사원들에게 '가정과 일터를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종업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에게도 읽을거리와 함께 일터를 이해하는 내용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보이다. 사보는 경영진과 일반 직원, 상급자와 하급자, 동료를 위한 상호교류의 광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17일자 조간신문에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일본의 대형 석유 도매업체인 코스모 석유의 사보가 수십년 전통의 고정코너를 최근 폐지했는데, 그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회사의 사보는 입사 12년이 지날 때마다 사원들의 변화된 근황을 사보에 소개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개인정보를 유출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어 이 코너를 없앴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결혼기념일을 맞은 사원을 축하하는 칸과 자녀출산 정보도 사라졌다는 소식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본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민사상 배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 책임도 물을 수 있다. 개인정보의 유출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이 법이 마련됐다고 하니 일본 역시 우리나라의 사정과 비슷한 모양이다.

지금 일본에서는 기업들마다 사보제작에 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엄밀히 따지면 직원들의 결혼, 자녀출산, 신입사원 소개 등도 개인정보에 속하는 만큼 이를 함부로 게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보제작 담당자들이 본인의 사전동의를 얻는데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사보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실린다. 대표자 인사말에서부터 각종 사내 뉴스, 부서나 동호회 소개, 임원칼럼, 사원들의 수필이나 여행기 등 각종 투고, 책이나 영화 소개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반드시 들어가는 항목이 바로 사원들의 동정란(動靜欄)이다. 이 난에서는 입사, 혼인, 출산, 회갑, 부고, 손님 등의 소제목아래 사원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있었던 갖가지 일들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

동정란을 보면 회사의 누구누구가 언제 결혼을 하고, 자녀들 낳았으며, 상을 당했는지 알 수 있다. 또 신입사원의 이름과 본사를 찾은 손님이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사보에는 사원들이 당한 경조사가 실려있기 때문에 이를 몰랐던 사람들은 늦게나마 축하하거나 위로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의 정보는 아무리 보호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보화사회에서 개인정보보호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사보에 사원들의 동정을 게재하는 일을 '본인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로 규정한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것 같다.

사보는 경영진과 사원들이 서로의 생각을 서로 알게 해주고, 사원들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창구가 된다. 사원가족들의 소식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가정과 일터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하지 않는가. 회사의 발전과 사원들간의 화합을 위해서는 '동정란'을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보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들이 구독하는 신문에도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동정란'이 있다. 우리는 이 난을 읽고 승진자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내고, 상을 당한 사람에 대해서는 조의를 표한다. '동정란' 없는 신문을 생각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사원동정'을 싣지 못하는 사보를 생각하기도 어렵다. 일본과 같은 불상사(?)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2005.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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