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61 [칼럼니스트] 2005년 4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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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도 거역할 수 없는 디지털의 힘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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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 달에 한번쯤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부근에 있는 부산의료원에 간다. 그 곳에는 가정의학과장을 맡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만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진다. 그냥 놀러 갈 때도 있지만, 내 몸이 조금만 이상하거나 아내가 아플 경우 찾아가서 진찰(?)을 받는다.

이 친구를 특히 고맙게 여기는 것은 필자가 몇 년 동안 앓았던 병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적절한 치료를 받게 했고, 덕분에 고통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살 때 심장병(?)을 앓아 6∼7년 동안 온갖 처방으로 치료를 했으나 실패하고, 끝내는 모든 것을 버린 채 1998년 고향인 부산으로 낙향했다.

필자는 현대병이라고 할 수 있는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지는 증세가 나타나 병원엘 갔더니 심장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심장병 치료만 받았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오진(誤診)이었으니 아무리 좋은 약을 먹어본들 증세가 호전될 리 없었다.

공황장애라는 질환은 평소에는 괜찮다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너무 피로할 때 증세가 나타난다. 그러나 심장병으로만 알고 있었던 만큼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몇 년 동안 다니던 병원의 치료를 그만 두어버렸다.

필자가 잘 못 알고 있는 일인지 모르지만, 의사들은 자신의 오진에 대해 스스로 털어놓지 않는다. 자신이 맡고 있는 환자가 오랫동안 낫지 않을 때 오진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갖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진임을 확신하게 되겠지만 자신의 실수를 밝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럴 때는 환자가 지쳐서 더 이상 오지 않길 바라는 것이 의사들의 심리가 아닐까.

계속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고향에서 살다가 죽자''하는 심정으로 24년 동안 다니던 신문사도 그만 둔 채 낙향을 했다. 1998년의 일이다. 고교 동창생들 가운데는 유난히 의사들이 많은데, 부산에만도 20여명이나 된다. 부산의료원의 친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 친구는 마취과 전문의여서 수술에 참여한 경험이 매우 많다. 그래서 웬만한 병은 문진(問診)만으로도 알아내는 실력을 갖춘 명의(名醫)이다. 필자는 몇 년 동안이나 겪고 있는 병세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대뜸 ''''공황장애''이니까 내일 당장 의료보험카드를 갖고 오라''는 게 아닌가. 그의 말로는 신문기자생활을 하면서 얻은 ''직업병''이라는 것이었다.

공황장애(恐惶障碍)-. 의학적으로 설명하면 인체를 보호하기 위해 일어나는 투쟁·도피반응으로 응급반응의 일종이다. 실제적인 위험대상이 없는 데도 마치 죽을 것 같거나 미칠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면서 자제력을 잃는 증세이다. 다시 말해, 곧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아주 심한 불안상태를 말한다.

결국 3개월 동안 약물치료를 받은 끝에 증세는 완전히 없어졌다. 이후로는 재발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오진 때문에 증세를 다스리지 못하고 다니던 신문사까지 떠나야 했던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만큼의 건강이라도 지키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겠다.

그의 직책이 가정의학과장인지라 X레이 판독은 주요 업무의 하나이다. 판독기술도 의사마다 큰 차이가 있음을 아는가. 부산에서는 그 친구의 X레이 판독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나다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의사들은 X레이실에서 촬영한 커다란 필름을 형광등이 붙어있는 판독판에 붙여 놓고는 자세히 살펴본다. 환자가 있으면 이상한 부분을 지적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그냥 보기에는 조그마한 점이지만 면밀히 관찰해 그것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내기도 한다.

동기생들 가운데는 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위암이나 폐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수술을 받고 생명을 건진 사람도 여러 명 된다. 가끔은 단순한 점이나 혹을 큰 병일 것으로 지레 짐작하여 난리(?)를 피우는 일도 있지만, 친구들의 건강을 위해 애쓰는 그의 정성은 갸륵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전한 컴맹·넷맹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상에는 놓여 있는 컴퓨터는 쓸모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남들이 그러니까 그냥 갖다 놓았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이다. 첨단기기는 생리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킨다며 아직까지 휴대폰조차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그의 방에 놀러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환자가 들어왔다.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마우스로 클릭을 몇 번 하는 게 아닌가. 그랬더니 환자가 X레이로 찍은 폐(肺)사진이 나타났다. 그는 화면의 일부분을 크게 했다 작게 했다 하면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 컴퓨터를 배워 ''디지털영상전송시스템(PACS : Picture Archiving and Communication System))으로 X레이를 판독하기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얼마 전에 자체 교육을 받았다면서 ''겨우 클릭만 할 줄 알뿐 키보드는 독수리타법 수준도 안 된다''는 설명까지 해주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 친구의 워드솜씨는 초보이다. 그런데도 클릭하는 손놀림은 제법 빨라졌다. ''조금만 노력하면 키보드 다루는 실력이 늘 테니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이 것도 힘든데 무슨 말을 하느냐''며 오히려 핀잔(?)까지 준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어쨌든 컴퓨터 화면으로 보니 매우 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훨씬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디지털의 고마움은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PACS는 11년 전인 1994년 삼성서울병원이 최초로 도입한 이후 대형 병원들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5일자 중앙일보는 ''디지털에 밀려난 X선 필름''이라는 제목으로 PACS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환자의 X선 검사 결과를 모든 진료과에서 함께 보기 때문에 그만큼 오진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내용도 소개되어 있다.

1895년 W. K.뢴트겐이 진공방전 연구 중 우연히 발견한 X레이-. 그 것으로 촬영한 필름은 그동안 인류의 질병을 고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완전히 자취를 감출 운명에 놓였다. 촬영결과를 디지털로 보관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게된 것이다.

지금은 컴맹이든, 넷맹이든 자신이 의사라면 환자의 질병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야 하는 세상이다. 필자의 친구가 이제는 마우스로 클릭만 하지말고, 키보드를 능숙하게 다루고, 나아가서는 인터넷을 벗삼는 ''노티즌''이 되길 바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 200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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