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60 [칼럼니스트] 2005년 4월 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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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왜 사람의 주검을 시신이라고 하는가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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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신의 알현이 시작된 5일 성 베드로 성당 주변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는 가톨릭 신자들과 추도객 10만여 명이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어느 중앙일간지의 6일자 국제면에 실린 '교황서거'와 관련하여 시신알현 10만 인파라는 제목의 첫머리에 나오는 기사내용이다.

이 신문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도 한결같이 교황의 주검을 '시신'이라고 쓰고 있다. 방송도 마찬가지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시신(屍身)을 '송장'이라고 해놓았다. 다시 송장은 '죽은 사람의 몸뚱이. 시구(屍軀). 시신(屍身). 시체(屍體). 유해(遺骸). 주검.'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사람의 주검을 말하는 단어가 여러 개 있다. 시구라는 말은 지금은 사어가 되다시피 했지만 서울 광희동에 있는 광희문을 '시신(屍身)을 내보낸다'는 뜻의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던 것을 보면 옛날에는 일상적으로 썼던 것 같다.

사체라는 단어는 요즘에도 흔히 쓴다. 경찰에서 변사사건이 생기면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하는데, 이때 '사체부검'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평소에 자주 접해서인지 시신이나 시체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언제부터인가 언론에서 사람의 주검을 칭할 때 '시신'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신문사에 있을 때인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언론에서는 당연히 '사체' 또는 '유해'라고 했는데, 요즘에는 입에 담기도 께름칙하고 부르기도 기분이 나쁜 용어를 예사로 쓰고 있다.

자주 쓰지 않지만 유체(遺體)라는 말도 있다. 사전을 보면 「(부모가 남겨 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 몸'을 이르는 말」이라고 돼있고, 송장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이 용어는 좀 생소해서인지 다른 것들과 달리 거부감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순수 우리말인 '주검'은 사전에서 어떻게 풀이하고 있을까. '죽은 몸뚱이. 송장. 시체. 사체(死體). 사해(死骸)' 등으로 설명되어 있다. 숨진 사람이나 동물을 통틀어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이 말은 '죽음'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해서 문장에서는 자주 쓰이지만 일반대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쨌든 교황의 주검을 두고 '시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느냐고 물으면 딱히 꼬집어서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언짢아지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저 고인에 대한 예(禮)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론이 주검을 놓고 시신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특별하게 있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냥 다른 신문이나 방송이 그렇게 하니까, 선배들이 그렇게 했으니까'라고 답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기분이 나빠지는 용어를 굳이 쓸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차제에 독자나 시청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시신'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몇 년 전처럼 '사체'라는 말을 쓰는 것 역시 이상하다면 차라리 우리말인 '주검'이라고 쓰자. 그보다 더 점잖은 것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유체'라는 용어를 추천하고 싶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유체의 알현이 시작된 5일 성 베드로 성당 주변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려는 가톨릭 신자들과 추도객 10만여 명이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 기사 내용에 있는 시신을 이렇게 유체로 바꿔놓고 보니 한결 부드럽지 않은가.

                  - 200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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