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50 [칼럼니스트] 2005년 3월 8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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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무기, 잘난 족속의 잘못된 선택


홍순훈 (칼럼니스트, 아하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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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10일 북한 외무성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지금껏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기 위해 핵을 개발한다든가 핵무기를 만든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미국이 대상인 척하고 실제는 한국이 타깃인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을, 북한은 6.25사변 후 거의 2세대 동안 써 왔다. 핵무기도 예외가 아니란 것을 나이든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본능으로 안다.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사상자 1천만명 이상 발생, 산업 시설 80% 이상 파괴라는 대재앙을 군사 전문가들이 예측하는데, 거기다 인류를 멸종시킬 핵무기마저 만들었다는 북한의 발표에 기분은 울적하고 그들에게 욕을 퍼붓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 발표에 덧붙여, 6자 회담에 무기한 불참한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지난 최근에는 조건과 명분만 마련되면 회담에 참석하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3월2일 북한 외무성 비망록에 의하면, 그 명분이란 미국이 그동안 북한 체재를 '폭정'이라 발언한 것 등을 취소, 사죄하라는 것이고, 그 조건은 적대시(敵對視) 정책을 평화 공존 정책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2003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 미국, 중국 3자회담에 북한이 내놓았던 4가지 요구 조건과 그게 그거다. 문제는, 2003년에는 조건이 충족되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했다가, 이번에는 조건이 충족되면 6자회담에 참석이나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핵무기를 만들었으니 미국의 무조건 항복이나 받겠다는 뉘앙스로, 이런 회담이 개최된다면 오히려 불안하다.

여기서 2003년에 북한이 제시한 4가지 조건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 1. 미국에 의한 불가침 확약 2. 북한과 미국의 외교 관계 개설 3. 한국과 일본의 경제 지원에 대한 미국의 보장 4. 경수로 건설 지연 보상 및 경수로를 완성시킬 것이다. 1번과 2번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만을 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숨긴 뜻은,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베이징 3자회담에 참석시킬 필요가 없고, 불가침 확약이나 외교 관계 따위도 미국과만 맺으면 됐지 한국과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지위의 한국과 '미국의 하수인'인 일본이, 4번과 같은 경제 지원을 북한에게 하도록, 미국이 보장하라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의 '보장'을 요구한다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의 주권을, 그들이 부정한다는 모욕적인 의미다.

2003년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획기적인 해였다. 2002년 말부터 2003년 전반기까지 한국은 대통령 선거와 정권 교체로 혼란스러웠다. 미국은 2002년 12. 12테러를 당하고 2003년 3월부터 이라크 침공에 국력을 기울인다. 이 기회를 틈타 북한은 2002년 12월 폐연료봉 저장 시설에 붙인 국제원자력기구의 봉인을 제거한다. 2003년 1월에는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원자력발전 후 남은 폐연료봉 8천여개를 재처리하기 시작한다. 5월에는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백지화시킨다. 6월 초에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거의 끝마쳤다고 북한 외무성이 발표했다.

이 때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명분이 '핵 억제력'이었다. 미국의 침략을 억제 또는 방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6천인지 1만3천인지 개수조차 불분명한 전략 핵무기를 가졌고, 이를 폐기 처분하는 데만도 골치를 앓는 미국을 억제 또는 상대하기 위해서, 핵무기 몇 발 만들 폐연료봉을 재처리한다는 것은 누가 판단하든 구시대 유물인 가미카제형 명분이며 따라서 설득력이 없다. 이 '핵 억제력' 명분은, 한반도를 강대국들의 핵무기 실험장으로 만들 위험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 명분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폐기한 책임까지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2월10일 북한이 만들었다고 발표한 핵무기가 몇 발인가에 대해, 각국 정보기관이 1-2발에서 몇 10발까지 큰 차이로 추측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에 의하면, 2003년 북한이 재처리한 약 50t의 폐연료봉에서 핵무기 5발 안팎을 만들 24-40kg의 플루토늄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북한이 만들었다는 핵무기도 5발 안팎이어야만 아구가 맞는다. 그런데도 외국 정보 기관들은 이 개수보다 훨씬 더 많게 추측하는 데 그 이유는 뭘까?

우선 의심나는 점은,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한 목적이 핵무기 5발 안팎의 원료만을 추출하기 위해서 였을까다. 물론 5발 안팎의 원료도 추출했겠지만,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핵무기 또는 그 원료를, 세계로부터 '공개적',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폐연료봉 재처리란 일종의 해프닝을 2003년에 벌였던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독일의 '슈테른'지는 구소련의 KGB보고서를 인용하여 '북한은 1990년 2월에 첫 핵탄두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던 사실이 있다.

그리고 작업 순서가 이상했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그 원료인 천연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 발표대로 하면, 2003년 폐연료봉 재처리 이전까지는 핵무기 원료가 없었다. 그런데 1997년부터 2002년 9월까지, 고폭(高爆) 실험--핵무기의 뇌관이라 할 수 있는 핵 기폭 장치를 위한 고성능 폭발 실험--을 70여 차례나 실시했다. 이렇게 뒤집힌 작업 과정은, 1997년 이전에 북한이 핵무기 원료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다. 핵무기 원료만 있으면, 소수의 기술자가 한 공장에서 매년 핵무기 10-20발을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2003년 6월부터 계산하더라도, 2005년 2월 현재 시간상으로는 충분히 외국 정보기관의 추측대로 북한이 만든 핵무기가 몇 10발이 될 수 있다.

핵무기의 기폭 장치를 70여 차례나 집요하게 실험한 까닭은, 장치를 개량하기 위해서다. 개량의 목표는 장치를 가능한한 작게 만드는 것이다. 작게 만들면 당연히 핵탄두도 작게 된다. 작으니 가벼워질 수밖에 없는 핵탄두를 노동 또는 대포동 미사일에 실어 한반도 전역은 물론, 일본이나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김대중정권은 1998년 출범 초기부터 이 고폭 실험을 알았었다. 알았으면서도 북한에 어떤 항의도 없이 남북 정상회담을 했고 경제 지원을 했다. 이번 북한의 핵무기 발표에도, 한국 관료들은 별 것 아니란 식으로 축소하기에만 급급하다. TV 등 언론은 기획적으로 그리고 일제히 주변 국가를 공격하여 한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어쩌다 한국이 이 지경이 됐는지 신기하다.

-200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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