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44 [칼럼니스트] 2005년 2월 19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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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국가를 참으로 사랑하는가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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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일이다. 선친께서 '우리나라에는 국가(國歌)가 없다.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愛國歌)는 국가가 아니다. 하루 빨리 국가를 제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10살 안팎 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필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조회 때마다 부르는 노래가 '국가'가 아니라니? 그러면 왜 국가를 안 부르고 애국가를 부르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친은 이따금 '애국가가 아닌 국가가 있어야 한다'며 흥분하시기까지 했다.

선친이 그렇게 주장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때만 해도 이런 문제로 아버지와 아들이 진지하게 정답게 의논할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가제정에 대한 선친의 생각은 아마도 애국가의 곡조나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공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한 작곡가가 사적(私的)으로 지은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가사 역시 못마땅했음이 분명하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거나 '무궁화 삼천리'라는 문구 등은 선친의 정서에는 전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무궁화'에 대한 인식도 굉장히 나빴던 것 같다. '무궁화는 벌레가 너무 많다'며 '무엇 때문에 국화(國花)로 정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것도 여러 번 들었다.

올해로 이순의 나이가 된 필자 역시 아버지의 생각과 별 차이가 없다. 어쩌면 10살 나이에 세뇌된 탓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애국가에 대해서는 언제나 불만((?)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애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우선 곡조이다. 우선 너무 담담하다는 생각이 든다. 좀 장중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경박스럽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형 밴드가 연주를 하면 장중하게 들리기도 한다. 음악에 관해서는 대중가요나 팝송을 주로 들은 필자가 애국가의 곡조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난센스인지 몰라도 필자의 느낌은 그렇다.

그리고 가사 역시 무게가 모자란다. 온 국민이 부르는 것인 만큼 지나치게 어렵거나 심오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더라도 가사 자체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애국가 가사는 그렇지 않다. 애국가가 국가의 대우를 받으려면 적어도 서사시(敍事詩)에 버금가는 수준의 가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족을 붙인다면, 애국가는 4절까지 있다. 과연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4절을 모두 외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학교 시험이나 방송프로에서 '4절까지 외워보라'는 문제가 자주 나온다. 그럴 때마다 4절은커녕 2절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스트레스까지 주는 것이 바로 애국가이다.

지난 5일 문화관광부에서 행정자치부에 애국가를 사들여 줄 것을 요청하면서 애국가 저작권료 지급문제에 대해 찬반논란이 뜨겁다.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애국가를 테이프나 MP3 파일 형태로 배포하는 행위 등은 모두 불법이므로 애국가 주무부서인 행자부에서 안익태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저작권을 일괄 구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 소식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은  '한 나라의 국가를 돈을 주고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씁쓸하고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어떤 이는 '그럼, 세종대왕 후손에게 한글 사용료를 내야 되느냐'고 비꼬기도 한다. '인기 개그맨이 유행어를 만들었을 경우 일반 국민이 그 것을 사용한다면 저작권료를 줘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이도 있다. '차제에 애국가 대신에 국가를 새로 만들자'는 의견도 매우 많다. 그 이유에 대해 '통일을 준비하는 의미에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에서는 '애국가를 한국민에게 선물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지난 11일부터 1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저작권자인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유족에게 '애국가가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될 수 있도록 한국민에게 선물해달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미디어다음 토론포털 아고라에서 저작권법 불복종운동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는 10명 가운데 9명 꼴로 '애국가 저작권료 불복종운동에 참여하겠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애국가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므로 사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조를 펴고 있다. 애국가는 현재 '국민의 재산'이 아닌 '안익태 유족 개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족 측은 이미 1992년에 '애국가 저작권'을 음악저작권협회에 신탁한 바 있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애국가에 저작권료를 내는 것이 국민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일반 노래와 달리 '공공재'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국가는 고 안익태 선생이란 개인이 1930년대에 '한국 환상곡'의 일부로 만든 곡으로, 우리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국가로 사용해왔다. 따라서 저작권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저작권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어 '한국은 저작권 같은 지적재산권 보호에는 후진국으로 취급된다. 그만큼 국민의 의식 수준이 낮다는 얘기다. 특히 뛰어난 인터넷 환경은 오히려 '펌'을 통한 불법 행위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모범을 보일 필요도 있다. 정부가 애국가 저작권을 일괄 구입하길 바란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언론은 판단잣대를 국민정서 보다는 원리원칙에 맞추는 성향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 세상의 일은 가급적 원리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은 매우 옳은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정서를 외면한 원리원칙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애국가를 굳이 사들일 이유가 없다는 입장에 서있다. 돈을 주고 사야할 정도라면 정식으로 만든 국가를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우리들이 오랫동안 국가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다른 것으로 바꾼다면 어색하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이나 학교의 이름을 바꾸고, 심지어 나라이름까지 바꾸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만약 전국민을 대상으로 '애국가를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하느냐'와 '애국가 가사가 마음에 드느냐'는 두 가지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필자의 일방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부정적인 답변을 하는 응답자가 더 많을 것으로 확신하다.

여기에서 필자가 그동안 늘 생각해왔던 일을 말하고자 한다. 월드컵 축구대회 같은 나라 간의 경기가 벌어질 때면 반드시 국가(또는 애국가)가 연주된다. 일부 나라의 국가는 노래부르기는 좀 어렵다싶을 정도로 매우 빠르거나, 아니면 아주 클래시컬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곡조에 따라 부르기 좋은 속도로 되어 있다.

경기 시작전 운동장에 서있는 선수들은 자기 나라의 국가가 나오면 따라 부른다. 국가를 부르는 표정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조국의 명예를 생각하며 필승의 의지를 다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일본 선수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굳은 얼굴을 한 채 기미가요를 부른다. 그런 모습은 태평양전쟁 때 출전을 앞둔 '가미카제 특공대'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은 어떤가. 정말 이상할 정도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전의를 불사르는 표정의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 놓고 무표정(?)하게 서 있다. 한 둘은 마음속으로 기도를 하는지 눈을 감고 있기도 하다. 어쩌다가 애국가를 부르는 선수가 있지만 끝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필자는 그 이유를 애국가 자체에서 찾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애국가의 곡조와 가사가 마음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애국가를 부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서있기만 하는 것일까. 국제경기 때마다 상대 나라 선수와 달리 우리나라 선수들의 그런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지….

물론 올림픽 경기 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 서 있는 가운데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과 함께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다. 이는 '애국가의 곡조' 때문이라기보다는 '금메달획득'이라는 감동을 다시 한편 되살려 주는 장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 200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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