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41 [칼럼니스트] 2005년 2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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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기행(1) 철새의 낙원 철원평야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철새들은 축복 받은 생명이다. 어디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간다. 비상(飛翔)을 꿈꾸면서도 늘 제자리에 주저앉은 듯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새들처럼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철새들의 낙원을 찾아 훌쩍 떠나자. 희망의 날개를 펴고 철새들이 펼치는 화려한 군무(群舞)를 바라보면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강원도 철원평야는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철새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민통선 부근에는 천연기념물 202호 두루미와 203호 재두루미가 둥지를 틀고, 쇠기러기 떼가 몰려든다. 독수리, 흰꼬리수리, 검독수리, 청둥오리 등 철원을 찾는 철새는 30여종 100만 마리가 넘는다. 철새뿐 아니라 붉은머리오목눈이, 황조롱이, 물까치 등 텃새까지 모여 사는 철원 땅은 새들의 천국이다.

민통선에서 겨울을 나는 두루미 떼 장관

철원을 찾아오는 겨울 진객(珍客) 두루미는 전 세계에 2,000여 마리 밖에 살지 않는 희귀종이다. 이중 400∼500마리가 해마다 민통선 지역에서 겨울을 난다. 철원평야 한가운데 위치한 아이스크림 고지에서 바라보면 철원평야 사방에 두루미 수백 마리가 벼 낟알을 집어먹으며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사진설명: 철원평야를 수놓는 두루미의 비상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인간과 새의 아름다운 공생을 확인할 수 있다.

기러기 떼도 철원평야를 찾아오는 귀한 손님이다. 예로부터 학(鶴)이라 불리는 두루미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문관의 흉배에는 두루미를 새겨 넣었다.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두루미는 고고한 생김새처럼 짝을 잃으면 평생 수절할 정도라고 한다.

철새들의 이동경로는 중국, 러시아, 몽골을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흐르는 아무르강줄기다. 흑두루미는 대부분 아무르에서 동진(東進)하여 태평양을 건너 일본의 홋카이도를 많이 찾는다. 홋카이도의 구시로는 오래 전부터 주민들이 먹이를 주면서 두루미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 세계 최대 흑두루미 도래지가 됐다. 재두루미 경우는 일본과 한국의 철원 등으로 갈린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길들여진 구시로의 두루미는 전염병이 돌 경우 무방비 상태다. 전염병으로 10%가 죽은 해도 있다. 철원평야는 구시로와는 달리 생태환경이 좋은 데다 보기 드물게 두루미, 재두루미가 공존하는 땅이어서 더욱 가치가 높다.

"두루미는 추위를 크게 타지 않아 영하로 떨어지는 매서운 날씨에도 더 따뜻한 남쪽으로 가지 않고 철원에서 겨울을 나지요."두루미학교교장이자 생태사진가인 진익태(45)씨의 설명이다. 진씨는 16대째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에서 살아온 토박이. 농사를 짓는 틈틈이 철새에 관심을 두고 좇아 다닌 게 10년이 넘는다.

공무원들이나 조류학자들이 철원을 오면 일단 그부터 찾을 정도로 철원평야 철새는 그의 몫이다. 철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덕택에 마을에는 철새 모이주기 자원봉사단도 생겼다. 이 달 들어 두루미학교(강원학생통일수련원)에서는 철새생태, 철새탐조요령과 철새먹이 뿌리기 등을 실시했다.

평화의 땅에 들리는 생명의 소리

철원평야의 겨울 철새 가운데 위용을 뽐내는 새는 단연 독수리. 민통선 검문소를 지나서 만나는 토교저수지 제방 위에는 검은 독수리가 거대한 날개를 펴고 선회한다. 해마다 800∼1,000마리의 독수리가 몽골에서 철원으로 날아오지만 올해는 개체수가 부쩍 줄었다. 웬만한 개까지 채 간다는 독수리는 키가 1m가 넘는다.

살아있는 생물을 사냥하지 못하고 사체만을 먹는 독수리에겐 먹이 감이 부족해 매년 수십 마리씩 굶어죽는다. 주민들이 죽은 닭이나 돼지 등 먹이 감을 주지만, 자연생존력은 뒤질 수밖에 없다. 자연을 청소한다는 독수리에게 청소할 생태계조차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철원이 새들의 낙원이 된 것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분단의 땅이자, 드넓은 평야가 있다는 점이다. 아직도 철원군의 60%가 민통선으로 묶여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만큼 자연이 덜 훼손됐고, 인적이 드문 탓에 철새들이 찾아든다.

철원평야는 강원도 쌀의 3분의 1을 생산하는 곡창지대로 낙곡 등 새들의 먹이 감이 풍부하다. 탁 트인 들판도 짐승들을 경계하기 쉬운 조건이다. 철원읍 천통리 일대 온천지대를 비롯, 겨울에도 얼지 않는 15도 이상의 따뜻한 물이 솟아나는 것도 새들이 겨울을 나는 데 유리한 생태환경이다.

평강에서 발원한 한탄강에는 피라미, 돌마자, 납자루, 갈겨니 등 새들이 좋아하는 물고기가 풍부한 것도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에 안성맞춤이다. 철원에 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400년이 넘는다고 한다.

환경부는 철새가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추수를 하지 않는 논과 밭을 크게 늘렸다. 철원평야와 천수만 등 전국 9개 지역에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사업'을 실시하면서 사업비도 2003년도 18억700만원에서 지난해는 23억7100만원으로 늘어났다. 철새들이 쉴 수 있는 무논을 조성하고 가을걷이도 일정부분을 그대로 둬 새들에게 돌려준다. 생물다양성 관리계약제도는 일본, 영국, 네덜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2002년에 도입하여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민·관·군 한마음으로 철새보호 나서

주민들도 철새 보호에 발벗고 나섰다. 민통선 북방 철원군 동송읍 양지마을은 인간과 철새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철새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들머리에는 '철새마을, 평화의 땅에서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세요'라는 표지판부터 철새들의 천국임을 짐작케 한다.

마을청년회를 중심으로 겨울철마다 강산저수지 앞 등 3곳에서 새벽에 규칙적인 철새먹이주기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철새먹이를 보관하는 창고도 마련하고 밀렵단속반을 편성, 운영한다. 철원군은 1999년 양지리를 철새마을로 지정한 후 차량의 경적금지와 서행을 알리는 입간판 설치 등 체계적으로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 민·관·군이 합심하여 겨울철새들이 독극물 등으로 희생당하지 않게 단속을 편다.

탐조여행은 철새들의 생태를 확인하는 만큼 망원경은 필수 장비. 조류도감도를 가져가는 것도 철 새 종류파악에 도움이 된다. 바람과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방한복도 꼭 챙겨야 한다. 철원군은 2월까지 겨울철새 탐조관광을 돕고 있다. 고석정 전적지관리사무소 2층(033-450-5558)에서 신청하면 셔틀버스로 토교저수지→동송저수지→삽슬봉(아이스크림고지)→월정리전망대→노동당사를 돌아온다. 요금은 1인당 5,000원. 한국조류보호협회철원지회도 방문객들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고 정확한 생태교육을 위해 동송읍 양지리 구 양지초교에 자연생태학습관을 개관해 철새탐조관광을 돕고 있다.

새들이 살지 못하는 세상에서는 사람들도 살아가기 어렵다. 황량한 벌판을 수놓는 철새들의 힘찬 비상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간과 새의 아름다운 공생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 가는 길

서울에서는 의정부∼포천∼운천을 거쳐 신철원으로 가는 43번 국도가 가장 빠르다. 왕복 4차선 도로여서 과속하기 쉽다. 횡단보도와 신호등이 많아 앞을 잘 살펴야 한다. 차가 밀리지 않으면 서울에서 약 1시간 30분 걸린다.

   -월간 '광업진흥' 0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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