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33 [칼럼니스트] 2005년 1월 27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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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기행(1) '눈물은 왜 짠가'의 함민복 시인

이규섭 (칼럼니스트, 시인)
http://columnist.org/kyoos

"뻘 밭에 서면 나는 작은 점이 된다"

강화도 남쪽 끝자락 화도면 동막리 너른 갯벌 앞에서 혼자 사는 마흔 세 살의 함민복 시인. '눈물은 왜 짠가'에서 가난을 더 없는 절창으로 뽑아 올린 그는 자본과 욕망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시인이다. 삶의 색깔이 저마다 다르지만, 그는 왜 혼자 살고 있을까. 가난의 가치기준도 제각각이지만, 눈물은 왜 짠가. 돈이 되지 못하는 시는 무엇인가. 세속적이고 원초적인 물음표를 가슴에 품고 그를 만나러 갔다. 겨울의 길목에는 안개가 잦다. 우리의 삶도 안개처럼 젖어 눅눅하다. 살아가면서 보송보송한 날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김포와 강화를 잇는 초지대교를 넘어서자 바람 끝에 갯내음이 묻어 온다.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와 마을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한낮이 되어서야 안개가 걷히고 투명한 하늘이 드러난다. 오후 늦게 바다에서 돌아 온 함민복 시인을 작은 포구에서 만났다. 동네 청년들과 함께 바닷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추위를 녹이며 술잔을 기울인 탓인지 동안에 홍조가 깃들었다. 선물로 가져간 민속주 한잔씩을 권한 뒤, 시인을 앞세워 동막갯벌로 향했다.

#시인의 갯벌사랑

물 빠진 갯벌은 눈이 시리도록 아득하다. 잿빛 갯벌은 끝없이 이어져 바다와 만난다. "갯벌의 힘은 말랑말랑 한데 있지요. 문명화란 땅 속의 시멘트를 꺼내서 수직을 만드는 딱딱한 쪽으로 편향돼 있습니다. 뻘은 아무것도 안 만들고, 반죽만 개고 있고요. 집이 필요하면 뻘에 사는 것들은 구멍을 파고 들어갈 뿐 표면은 부드러운 수평을 유지합니다." 그는 '딱딱하게 발기하는 문명'에 비해 갯벌은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라고 한다. 바로 이 부드러움 때문에 물이 빠질 때 생긴 '갯골'이 기하학적으로 이리저리 이어져 풍경을 만들고, 너른 가슴으로 생명체들을 품는다.

동막갯벌과 만난 바다 끝에는 옛날 이성계와 최영 장군이 활쏘기 연습을 했다는 시도(矢島)가 보인다. 그 옆으로 신시도, 장봉도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이 솟아 있다. 그는 동네 청년들과 시도에 말뚝을 구하려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동막갯벌의 뻘 밭은 1800만평으로 여의도의 20배다. 강화도는 미 동부해안, 캐나다 동부해안, 아마존강 하구, 북해 연안과 함께 세계 5대 갯벌지역으로 꼽힌다. 그를 강화도로 끌어들인 것도 갯벌이다. 1996년 한 문화재단에서 창작지원금 500만원을 받았다. 모처럼 거머쥔 목돈이지만 거처를 정하기 어려웠다. "원래부터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살아왔다"는 그는 "일산에 살다가 신도시가 들어서자 문산으로 갔고, 그곳 땅값이 올라 머물 곳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 때 떠올린 것이 강화도. 언젠가 마니산에 올랐다가 내려다본 광활한 뻘 밭 풍경이 생각나 동막으로 왔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과 함께 그의 거처에 들렀다. 집 뒤에 동막교회와 100년이 넘었다는 덩치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있어 그의 누옥(陋屋)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녹슬고 빛 바랜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당 수돗가에 면도기, 칫솔, 야외용 취사기구 등이 흩어져 있다. 낡은 응접세트와 냉장고뿐인 썰렁한 거실, 책상과 컴퓨터가 있는 침실에는 1인용 침대가 외롭게 놓여 있고, 흔들거리는 책장에는 어지럽게 책들이 꽂혀 있다. 또 다른 방에는 축구 경기만을 보기 위해 간혹 켠다는 TV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원래는 컬러지만 지금은 흑백으로 변했다.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씩 내고 9년째 살고 있다는 집이지만 그는 세 개의 '궁궐'을 거느리고 있다고 순박하게 웃는다. "빨간 양철지붕의 안채는 자금성이고, 파란 양철지붕의 행랑채는 청와대, 흰 페인트가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의 화장실은 백악관"이니 부러울 게 없다는 것이다.

* 사진 : 뻘 밭에 선 함민복 시인

그는 없는 게 많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래서 세속의 시각은 그를 늘 가난한 시인으로 규정한다. 그는 "그게 싫다"고 한다. "가난한 삶을 소개하려면 소년소녀 가장이 바람직 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문학강좌 강의료와 고료로 한 몸 건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이만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선한 마음을 가진 함민복 특유의 낙관이다. "가난하다는 게 결국은 부족하다는 거고, 부족하다는 건 뭔가 바라는 것이 많다는 건 데 욕심이 없으니 마음은 부자"라고 한다. 혼자 사니까 필요한 것이 별로 없고. 이 집도 언젠가 비워줘야 할지 모르지만 빈집이 수두룩하니 걱정 없다는 말에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는 지난해 펴낸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에서 노모와 둘이서 설렁탕을 먹는데 모친이 설렁탕이 짜다며 국물을 더 시켜 아들 그릇에 몰래 부어주던 일화를 소개하여 독자들의 가슴을 짠하게 울렸다.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듯, 가난의 설움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눈물의 짠 의미를 모른다.

#자연이 가족이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함민복은 학비가 무료라서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몇 년 근무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서울예전에서 문학을 전공하다가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그는 첫 시집 '우울氏의 하루'(1989)에는 가난과 슬픔의 기억들이 갈피마다 묻어난다. 두 번째 '자본주의의 약속'(1993)에서는 도시와 자본의 천박성과 폭력성을 노래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다. 세 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서는 꽃이 핀다'(1996)에서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고단한 삶의 체험을 관대한 즐거움으로 끌어올렸다. 1998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관광부)을 수상했다. 뻘 밭과 이웃의 삶을 주제로 쓴 네 번째 시집이 곧 출간된다. 그는 "시는 쉬운 것이고, 시인은 삶을 옮기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 삶이 곧 시고, 시가 삶이라는 것이다. '형님 내가 고기 잡는 것도 시로 한번 써보시껴/ 콤바인 타고 안개 속 달려가 숭어 잡아오는 얘기/ 재미있지 아느시껴 형님도 내가 태워주지 않았으껴/ 그러나저러나 그물에 고기가 들지 않아 큰일났시다”(미 발표작 <어민후계자 함현수>에서) 그는 새벽 4시쯤이면 눈을 떠서 시를 생각하고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하루를 연다. 처음엔 뻘 밭과 산을 누비며 소일했고, 겨울철 바닷가에 나가 낚시대를 드리웠다가 '미친 놈' 취급도 받았다. 지금은 마을사람들과 친해져 정치망 배를 타고 나가 노동력을 보탠 뒤 농어와 숭어 따위를 얻어와 반찬으로 삼으며 동막리 사람들과 한통속이 되었다. 밤 9시 무렵이면 라디오를 듣다가 잠이 든다.

일주일의 절반을 안양예고에 강의를 나갔으나 거리도 멀고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겨 그만뒀다. 요즘엔 일주일에 두 번 김포읍에 나가 문학강좌 강의를 한다. 뻘 밭에 나가고 동네 일에 참견도하고, 오늘처럼 손님을 맞이하면서 보낸다. 왜 혼자 사느냐는 우문(愚問)에는 "편하다"고 짧게 말꼬리를 자른다. 어렸을 적 어머니께 입산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절에 가면 밥은 굶지 않겠다"며 흔쾌히 허락했고, 절 대신 객지를 떠돌아도 홀어미는 결혼을 채근하지 않아 부담이 없단다. 혼자 살며 '몸이 많이 아픈 밤'이면 하늘과 산과 땅, 태양과 달과 바람, 온 우주가 다 달려 와 '피를 순환시켜주었다.'고 노래한 그에게는 자연이 가족이다.

#선천성 그리움

시인의 거처를 거쳐, 다시 동네청년들과 만났던 포구를 찾아가니 술은 바닥이 났다. 시인의 얼굴에 짧은 노을이 잠시 스친다. 청년들이 한 턱 쏘겠단다. 비닐하우스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셨싱까(오셨습니까)" 함축된 음률과 말끝을 말아 올리는 강화도 사투리에 정감이 묻어난다. 숭어회를 안주로 이야기는 이어졌다. "객지에와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보기 좋다"고하자 "10년이면 객지사람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동네 사람이라"고 합석한 청년이 거든다. 말머리를 '수능 휴대폰 컨닝'으로 슬쩍 돌렸다. "입시위주의 교육과 우리사회에 팽배한 학벌만연주의가 근본원인"이란다. 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땅에 떨어진 윤리의식을 바로 세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막골 뻘 밭가에 살면서 '선천성 그리움'을 독자에게 배달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말랑말랑한 힘이 되어 어둠 속에 빛난다.

  - '교육마당21' 200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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