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130 [칼럼니스트] 2005년 1월 2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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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심각한 '연예인 X파일' 유출 사건


이재일 (정보통신 칼럼니스트)
http://columnist.org/netporter


'연예인 X파일' 유출사건이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시중의 화제도 온통 이 사건에 쏠려있다. 대상이 인기가 높은 유명 연예인들이고, 내용 또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어서 이번 사건의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경찰이 이미 이 연예인들 신상정보와 소문 등을 담은 'X파일'이 인터넷에 유포된 경위 등에 내사에 착수했고, '피해자'들도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인터넷시대의 '윤리의식 확립과 신상정보 보호'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국내 최대 광고기획사인 제일기획은 지난해 11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일반인 1천여명 대상으로 연예인 호감도를 조사한 뒤 스포츠신문 연예담당 기자와 방송국 연예프로그램 리포터 등 전문가 10명과 인터뷰했다. 광고모델로 활동 중인 연예인이 제품 이미지에 적합한지,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좀 더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제일기획은 이를 바탕으로 유명 연예인 99명과 신인 연예인 26명 등 125명에 대한 113쪽 분량 '광고모델 DB 구축을 위한 사외전문가 심층 인터뷰(Depth Interview) 결과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연예인의 현재 위치·비전·매력과 재능·자기관리·소문 등 5개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분야별로 특수기호(★, ☆) 1∼5개로 점수를 매겨놓았다.

문제는 내용이 검증되지 않은 연예계 주변의 소문이 신빙성 있는 것처럼 적혀 있어 연예인의 사생활과 인권 침해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용을 보면 ''호스트바 출입이 잦다'', ''기업 간부가 스폰서다'', ''매니저를 자주 때린다'', ''나이 많은 여자들과 사귄다'', ''게이나 바이섹슈얼이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도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 전문이 지난 17일쯤부터 일부 인터넷 사이트와 모 일간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기 시작했다. 유명기획사가 이를 제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인터넷 메신저나 미니홈페이지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파했다. 자체조사 결과 보고서를 유출한 사람은 동서리서치의 한 직원임이 드러났다.

이렇게 되자 해당 연예인은 물론 제일기획측에 이들의 '신상정보'를 알려준 기자와 리포터들이 난처하게 되고 말았다. 문건에 거론된 연예인이 소속된 20여개 기획사에 이른다. 이 기획사들은 대책위를 구성했으며, 문건을 작성한 제일기획과 동서리서치뿐만 아니라 인터뷰에 응한 기자와 리포터에게도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한다.

제일기획과 인터뷰했던 연예전문 기자와 리포터들도 처지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제일기획이 비공개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우리도 피해를 보고 있다''며 ''이 사태의 책임은 부주의하게 내부 문서를 유출한 제일기획과 동서리서치에 있는 만큼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파문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필자가 이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보고서 내용의 진위도 문제지만, 유명 연예인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인터넷에서 무차별로, 그리고 무더기로 '인격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일은 몇 년 전의 O양이나 B양의 비디오 사건과는 또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다수의 연예인들이 피해자기 때문이다.

광고회사에서 각 연예인에 대해 광고모델 가치를 파악하고 모델 계약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미리 관리하고 대처하기 위해 그러한 조사를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것을 문서화했다는 점과 문건의 표현과 내용이 너무 저속한 점 등은 기업의 양식을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이버공간은 모든 정보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순식간에 전파되는 공간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문제의 문건이 외부로 유출되고, 그것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아무런 사후대책을 세우지 않은 기획사의 처사는 비난을 받아야 한다. 또한 여론조사업체의 직원이 파일을 함부로 다른 이에게 넘겨준 행위는 직업윤리를 발길에 차이는 돌보다 하찮게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심층인터뷰에 응한 스포츠지 기자와 방송 리포터들도 마찬가지다. 직업상 취득한 정보는 보도하는 것 이외에 활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기자의 직업윤리인 터에 미확인 소문까지 거리낌없이 털어놓는 행태는 어이가 없다. 이는 현실적으로 미확인 사실을 일쑤 기사화하는 '못된 습성'에서 비롯됐음이 분명하다.

네티즌들은 또 어떤가. 말초적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터넷상의 '희생물'을 보고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다투듯이 달려드는 그들의 행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강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 네티즌의 의식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윤리의식과는 관계없는(?) 우리나라 인터넷문화의 부끄러운 현주소가 아니고 무엇인가.

직장인들도 일손까지 놓고 '연예인 X파일'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무실 안팎에서는 인터넷으로 훔쳐본(?) 'X파일'에 관한 얘기가 끊이질 않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유명 연예인에 관한 얘기인 만큼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화제의 초점이 어떤 내용인가에 있을 뿐, 이번 사건이 초래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보고서를 철저히 관리하지 못하고, 끝내는 유출되게 한 광고회사야말로 기업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형편없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런 기업을 용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명 연예인들에 대한 불확실한 '신상정보'가 담긴 문건을 유출시킨 광고회사와 여론조사기관에 대해서는 한층 엄격한 잣대로 법적·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자율과 절제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건전한 인터넷문화'가 결코 확립될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울러 윤리의식이 바탕이 된 인터넷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일깨워 주고 있다. '연예인 X파일'이 유출된 일은 '사건'의 차원을 넘어선, 우리 모두가 힘을 기울여 대책을 세워야 할 '중대한 사태'라고 하겠다.

                  - 200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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