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의 산내들<1> 천안삼거리
삼남 잇는 사통팔달, '흥타령'에 어깨춤 절로
이규섭 http://columnist.org/kyoos
휘늘어진 능수버들 가지에 물이 오른다. 봄 햇살에 발정 난 바람이 흥흥거리며 버들가지를 희롱한다. 살포시 고개를 내민 버들가지 움은 연두 빛이 완연하다. 바람 끝에 묻어나는 향기가 봄나물처럼 상큼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 길을 떠난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가 아니다. 가상의 공간인 '삼포 가는 길'도 아니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 마음의 길은 더욱 아니다. 능수버들이 제멋에 겨워 흥∼흥 거리는 천안삼거리 공원에 발길을 멈춘다.
영남루(永南樓)난간에 기대어 옛 길의 명성을 떠올린다. 예부터 남부지방에서 서울로 갈 때 한번은 거쳐야하는 길이 천안삼거리다. 한쪽 길은 문경새재를 넘어 영남으로 가는 길이고, 한쪽은 공주를 거쳐 호남으로 이어지는 삼남(三南)을 잇는 사통팔달의 길목이다. 경상도와 전라도사람들이 충청도에서 만나 길동무를 했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남여(藍輿)에 앉아 거드름을 피우던 관료로부터 초라한 선비, 장돌뱅이 보부상까지 숱한 사람들이 애환을 남긴 유서 깊은 길목이다. 삼남사람들이 오가고, 팔도의 역마가 드나들던 천안은 나그네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장이다. 능수버들 늘어진 천안삼거리로 대변하던 '길목'으로서의 명성은 사라져갔지만 아직도 부여·공주 등 내륙지방에서 이어지는 옛길이 남아 있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충남권 민족관광지와 수도권 배후도시로 탈바꿈했다.
천안(天安)은 '천하대안(天下大安)'의 줄임말로 '하늘아래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이 담겨 있다. 고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 끝까지 항거한 이 지역 백제 유민의 저항정신을 다스리려 했다. 이곳이 조용해야 세상이 편안하다는 의미는 그래서 나왔다. 동국여지승람은 천안을 다섯 마리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오룡쟁주(五龍爭珠)'의 형세라고 했듯이 천안은 역동적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천안대로, 새 천안 번영로 등 왕복 8차선 길이 잇따라 생겨 길에 대한 애착은 여전하다.
천안삼거리공원은 원래 위치에서 조금 옮겨져 옛길은 아니다. 옛 삼거리는 천안터미널에서 대전으로 가는 1번 국도와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사거리로 변했다. 1970년 초부터 1만5000여평에 조성한 삼거리공원은 능수버들과 정자, 아담한 연못이 있어 나그네의 쉼터로는 안성맞춤이다.
영남루(문화재자료 12호)는 조선 선조 35년(1602)에 창건한 화축관의 문루(문간채)다. 화축관은 임금이 온천으로 거동할 때 행궁으로 사용했던 곳. 중앙초등학교 정문에 위치해 있었으나 1959년 이곳으로 옮겨 옛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공원 들머리에 세워놓은 '흥타령(興打令)'비에는 전라도 고부(古阜) 고을의 선비 박현수와 이곳 기생 능소와의 사랑에 얽힌 전설이 녹아있다. 하룻밤 이곳에서 묵었던 선비는 능소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훗날 장원급제하여 돌아왔다. 이 때 능소가 '천안 삼거리 흥/능수야 버들은 흥/제멋에 겨워서 흥'으로 시작되는 '흥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능수버들에 얽힌 전설도 그럴듯하다. 충청도에 사는 홀아비가 어린 딸 능소를 삼거리주막에 맡겨두고 길을 떠나면서 버드나무 묘목을 심었다. 나중에 돌아와 보니 수양버들 그늘아래 장성한 딸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부터 버드나무는 능소의 이름을 따서 능수버들이 됐다는 것.
공원 안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을 비롯, 독립투사들의 혼이 담긴 기념비와 2.9의거 기념탑이 서있다. 천안시 입장면 출신인 고 김석야(金石野·2000년 사망)씨가 짓고 가수 최희준이 불러 히트한 '하숙생' 노래비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해마다 10월이면 이 공원에서 천안삼거리 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천안의 상징인 능수버들이 꽃가루 공해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관광문의 천안시 문화체육담당관실(054-550-2032)
#천안 명물 <호두과자>
천안 '호두과자'는 교통문화와 함께 성장해온 대표적 먹거리.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 교통체증이 심한 도심도로에서도 따끈하게 구워낸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다. 기차를 타고 천안역을 지날 무렵이면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호두과자의 원조는 학처럼 빛나라는 뜻이 담긴 '학화(鶴華)호도과자'. 천안역에서 아산방향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934년 천안사람 조귀금(작고)-심복순 부부가 처음 시작하여 맛과 품질로 70년째 명성을 지켜왔다.
밀가루 반죽도 물 대신 묽은 우유에 설탕을 가미한 뒤 숙성과정을 거친다. 인공적인 감미료나 방부제를 쓰지 않고, 순도가 높아 구어 놓은 뒤 열흘이 지나도 굳기는 해도 쉬거나 상하는 법이 거의 없다. 딱딱해진 호두과자도 별미다. 우유에 잠시 불려 우유와 함께 3∼4개만 먹으면 아침식사가 거뜬할 정도로 맛과 영양에서 손색없다. 천안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 아들이 경영하는 분점을 냈다. 호두과자의 속을 장식하는 팥도 본점에서는 흰 팥 앙금, 분점에서는 붉은팥 앙금만을 사용해 차별화 했다.
#주변 가볼 만한 곳
▲독립기념관=일제 강점기의 항일 투쟁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120만평의 넓은 부지에 산 역사교육을 위한 각종 전시관과 기념물들이 빼곡하다. 겨레의 집 뒤편에 있는 전시관은 시대별·주제별로 근대민족운동관, 일제침략관, 3·1운동관 등 7개관으로 나뉘어졌다. 야외에는 통일염원 동산, 청산리 사격장, 솔숲·대숲 쉼터, 추모의 자리 등이 있다. 경부고속도로 목천 IC를 빠져나와 2㎞를 직진하면 기념관으로 연결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30분∼오후 5시(월요일 휴관). 입장료 어른 2,000원, 청소년 1,100원. 문의 (041-560-0114)
▲유관순열사사적지=기념관에서 열사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와 아우내만세운동을 묘사한 부조물 등을 볼 수 있다. 기념관 뒤편으로 500m쯤 떨어진 매봉산 기슭에 초혼묘(招魂墓)가 있다. 1991년 복원한 생가는 매봉산 자락을 돌아 800m쯤 가야 한다. 독립기념관을 나오자마자 3거리에서 좌회전, 21번 국도를 타고 병천 방향으로 7㎞가면 된다. 입장료는 없다. 기념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문의 (041-564-1223)
▲이밖에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광덕사와 해외동포를 위한 국립묘원 망향의 동산이 있다. 대형 놀이시설로 숙박시설과 함께 아쿠아피아, 놀이공원을 가진 테마파크 천안상록리조트도 가볼만 하다.
#여행쪽지
▲교통편: 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1번 국도이용 삼용사거리에서 병천, 진천 방향 21번 국도를 이용하여 500m쯤 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천안역이나 터미널에서 시내좌석버스 이용. 10분 소요.
사진 : 공원 들머리 '흥타령(興打令)'비에는 전라도 고부(古阜) 고을의 선비 박현수와 이곳 기생 능소와의 사랑에 얽힌 전설이 녹아있다.
- <충남신문 2004년 3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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