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68 칼럼니스트 2004년 3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홈) |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홍 순 훈
herbhong 'a' yahoo.co.kr
http://columnist.org/hsh

위에 쓴 긴 이름의 법이, 금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51, 반대 2, 기권 10명으로 의결된 것이다. 이 법을 제안한 이유가 ‘반민족 행위의 진상을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사료로 남겨 둠으로써 왜곡된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세우고 이를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것’이라 한다.

이 법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가 있던 기간을 ‘일본제국주의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로 잡았다. 기간의 끝은 분명한데, 시작의 시점이 애매하다. 국권 침탈의 시점을 1910년 8월 한일합병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침탈 전후에서 ‘전’(前)이란, 외교권을 뺏긴 1905년 을사조약 때는 물론 1894년 동학혁명을 빌미로 일본군이 한반도를 유린한 때도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법의 제목과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목에 표현한 ‘일제 강점하’는, 1910년 8월 한일합병 이후부터 1945년 8월 해방 때까지라는 것이 상식이다. 제목은 이렇게 붙여 놓고, 내용에서는 위와 같이 여러 시기로 소급 해석할 수 있는 ‘국권 침탈 전후’라 써 놓았으니, 논리란 아예 내팽개친 법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는 대한민국과 관계된 사항만을 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마나 한 소리다. 헌법에, 대한민국은 1919년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하니, 임시정부 수립 이후부터는 대한민국 국회가 한반도와 거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에 관한 법을 만들어도 상관 없다 치자. 그렇게 치면, 임시정부가 생기기 전 즉 ‘일제 강점하’였지만 1918년 이전의 사항에는 대한민국 법이 적용될 수 없다. 같은 민족이었음으로 상관 없다 할지 모르겠으나, 조선국 백성에게 어떻게 대한민국 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특별법의 내용에, ‘친일 반민족 행위를 조사함에 있어서 조사 대상자와 그 배우자와 직계 비속 등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와 증거 자료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친일 반민족 행위를 확정하여 그 내용을 조사 대상자 등에게 통지하고, 통지 대상자가 이의 신청의 제기 등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되어 있다.

이 내용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親族)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헌법 13조에 위배된다. 이유는,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던 조사 대상자들은 현재 거의 사망했고, 그 직계 비속 등이 ‘친족’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기의 행위가 아닌 윗대의 잘못을 정부가 ‘통지를 해 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신적 고통이란 불이익을 받는다. 구시대의 유물인 연좌법(連坐法)이 바로 이런 형태인데, 목적이 좋다 하여 국가의 기본인 헌법마저 위배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뒤돌아보면, 1946년 2월에 ‘민주주의 민족전선’이 규정한 민족반역자들의 명단이 나왔었다. 1947년 7월에 과도입법의원의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됐었다. 그리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와 ‘반민족행위특별검찰부’가 설립되어, 64명에 대한 조사와 재판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정치꾼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에 휩싸여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흐지부지 됐었다.

그로부터 거의 2 세대가 흐른 이제 와서, 다시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통령 소속의 위원회를 만들어, 형사적인 처벌도 없이, 3년 동안 사료(史料)만을 남긴다는 것은, 무슨 이유를 붙였든 이승만정권의 술수만을 떠올릴 뿐이다. 지금 친일 반민족에 대해 연구하는 연구소나 학자들이 많다. 또 일제 시대의 신문, 서적 등은 웬만한 도서관에는 다 구비되어 있다. 해방 후 작성됐던 처벌 대상자들의 명단, 재판 기록 등은 인터넷에서도 검색되어진다. 그런데 뭘 더 정부가 나서서 사료를 수집하여 남기고 말고 할 것이 있는가?

-2004.03.22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