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59 [칼럼니스트] 2004년 3월 16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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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섭의 해외여행 / 스위스 융프라우
만년설 굽어보는 ‘천상의 테라스’

만년설에 뒤덮인 알프스의 웅장한 모습,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거대한 빙하,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 풍경,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상의 낙원으로 가꾼 스위스는 ‘세계의 공원’으로 손색없다. 스위스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융프라우는 웅장한 자연과 인간의 힘이 조화를 이뤄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기차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3,454m)역까지 올라가 알프스 연봉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융프라우관광의 묘미다.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 융프라우 관광의 출발지점인 소도시 인터라켄 까지는 3시간 정도.

인터라켄은 융프라우와 아이거를 오를 수 있는 스위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관광도시다. ‘호수와 호수사이’라는 뜻이 담긴 인터라겐은 도시 양쪽에 브리엔츠(Brienzersee)와 툰(Thunersee)호수를 양 날개처럼 거느리고 있다. 여름철에는 등산객들로, 겨울철에는 스키를 즐기는 관광객으로 늘 붐빈다. 호수와 초원을 끼고 달리는 관광버스로 인터라겐 동역으로 향했다.

인터라켄 동역(interlaken ost)에서 융프라우요흐역까지 가는 열차는 2가지 코스. 인터라켄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왼쪽 코스가 그린델발트(grindelwald)역에서 환승하여 클라이네 샤이테크(kleines cheidegg)역을 경유하는 코스이고, 오른쪽은 라우터브룬넨(Lauterbrunnen)역에서 기차를 바꿔 타고 클라이네 샤이테크까지 가는 코스다. 클라이네 샤이테크역까지는 일반열차, 클라이네 샤이테크에서 융프라우요흐역 사이는 톱니바퀴 레일의 등산열차를 이용한다. 어느 코스를 이용하든 인터라켄 동역에서 융프라우요흐역까지는 2시간 30분쯤 걸린다.

인터라켄 동역 매표 창구에서 가고자 하는 루트를 말하면 거기에 맞는 티켓을 준다. 각 구간마다 검표를 하므로 티켓은 잘 보관해야 한다. 오르는 코스는 그린델발트로 하는 것이 산악마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좋고, 내려 올 때는 라우터브룬넨을 거치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과 폭포수를 볼 수 있어 천상의 경관을 보는 듯하다.

필자는 융프라우 여정의 산악마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그린델발트 코스를 선택했다. 산 중턱에는 산장 같은 스위스의 전통 가옥들이 ‘달력 속의 그림’처럼 탁트인 차창을 스쳐간다. 산골짜기 주택과 초원에 지어놓은 ‘샬레’도 이방인의 눈에는 전형적인 주택처럼 보인다. 샬레는 여름에 풀을 말려 겨울에 젖소, 말 등의 먹이를 저장하는 창고다. 열차가 위로 오를수록 울창한 산림과 새하얀 설경이 펼쳐져 여름과 겨울의 세계를 번갈아 오가는 묘미를 느낀다. 동화 속의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어디에선가 불쑥 나타나 손짓 할 것만 같다.

그린델발트에서 내려 커피를 마시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그린델발트는 전형적인 스위스의 산골 마을로 주변에 목장이 많은 국제적인 휴양도시다. 인터라켄이 속초라면 그린델발트는 설악동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린델발트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클라이네 샤이테크역까지는 30여분. 클라이네 샤이테크역은 그린델발트를 걸쳐온 열차와 라우터브룬넨을 걸쳐온 열차가 만나는 곳이다. 주변에는 산장과 호텔이 있고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작은 도로가 나 있다. 또한 클라이네 샤이테크(해발 2061m)는 알프스의 초원지대와 만년설 봉우리가 만나는 접점이다. 융프라우봉(4,158m)을 비롯, 묀흐봉(4,099m), 아이거봉(3,970m) 등 4,000m급의 알프스의 세 고봉이 한 눈에 올려다 보이는 고원의 중심이다. 아이거는 난공불락의 북벽이 유명한 봉우리로 산악인들이 동경하는 도전의 무대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출발한 빨간 등산열차는 융프라우요흐를 향해 수직으로 2000m나 솟은 아이거 북벽 산을 오르다 터널 안으로 들어선다. 아이거봉의 암반 속이다. 터널 안에도 아이거반트(2865m)역과 아이스메어(3160m)역 두 곳이 있다. 열차안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도 반갑지만 우리말 안내방송이 나와 뿌듯하다. 아이거반트 정거장에 정차하면 아이게르 빙하의 북면 한가운데 서서 그린델발트 계곡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 정거장인 아이스메어는 빙하가 시작되는 곳이다. 전망대에서면 그린델발트 빙하가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등산열차로 바꿔 탄지 50여분만에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 융프라우요흐역에 도착했다. 종착역의 건물은 ‘베르크하우스’. 벽이나 천장은 단장하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 이용한 역사(驛舍)로 바위를 뚫어 통로를 만들었다. 베르크하우스와 연결된 ‘아이스 팔라스트’(얼음궁전)에 들어가니 바닥과 천장, 벽이 온통 얼음이다. 갖가지 동물과 이름 모를 형상들의 조각들은 환상적이다. 에스키모인들이 이글로 앞에서 얼음 낚시를 즐기는 모습이 있는가하면 애완용처럼 앉아 있는 물개가족들, 비상할 듯 날개를 펴고 있는 독수리의 모습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단을 따라 건물 밖을 나서면 전망대. 오른쪽에 솟아있는 융프라우 정상은 만년설로 뒤덮인 채 구름 속에 묻혔다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데다 산소 부족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고산증이 심하면 ‘술은 멀리, 물은 자주 마시는 게 요령’이다. 여름에도 쌀쌀하고 햇빛이 강해 긴 팔 옷과 선글라스는 필수.

그러나 얼음궁전 통로에 설치해 놓은 나무난간과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 등에 휘갈겨놓은 한국인들의 낙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인! 제발 국가 망신시키지 맙시다’란 낙서까지 적혀 있어 볼썽사납다. 세계적인 관광지의 낙서 흔적은 오히려 나라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행위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3,454m) 옆에 세운 ‘스핑크스’ 전망대(3,571m)는 새로운 명물. 돔형 지붕의 스핑크스는 3년간의 걸친 난공사 끝에 1996년 6월에 문을 열었다. 험한 암벽의 정상에 지하 암반을 뚫고 인공동굴을 만들어 통로로 이용한다. 수직으로 굴을 파 설치한 고속엘리베이터는 108m 높이를 25초만에 오른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 두 배 규모의 전망대가 추가 됐고 그 외곽에 스핑크스 주위를 한바퀴 둘러 싼 야외테라스가 설치됐다.

야외 테라스에 서면 알레취 빙하, 그린델발트 마을, 인터라켄 등 알프스 고봉과 산악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져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상 대기오염 등을 측정하는 관측소가 있을 뿐 아니라 우체국도 있다. 유럽서 가장 높은 역에서 그곳의 사진이 담긴 그림엽서에 사연을 쓰고 ‘융프라우요흐 톱 오브 유럽’이라는 스탬프를 찍어 우체통에 넣어 가족과 친구나 보내는 것도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톱니바퀴 레일의 산악열차

1893년 8월 초록의 알프스 고원. 스위스 국기의 빨간색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꽃 알펜로제가 흐드러지게 피어 마음에도 곱게 꽃 물을 들인다. 딸과 함께 하이킹을 나온 엔지니어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꽃향기에 취한 듯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산악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융프라우요흐까지 철도를 놓을 수는 없을까?”하고…. 융프라우철도 아이디어를 떠올린 첼러는 그 날 호텔에서 밤을 새우며 기본 설계에 들어갔다.

클라이네 샤이테크역을 출발하여 아이거봉의 바위를 뚫고 계속 올라가 묀흐봉의 암반속을 거쳐 융프라우봉과 묀흐봉 사이에 말안장처럼 앉아 있는 융프라우요흐까지 오르는 코스를 떠 올렸다. 암반동굴 속의 가파른 철로를 오르기 위해서는 ‘토블러’라고 불리는 톱니레일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알프스에는 철도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그 누구도 융프라우요흐까지 철도 부설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종착역이 클라이네 샤이테크 이었다는 점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세 자매’로 불리는 첼러의 계획은 스위스 의회에서 논란 끝에 통과됐고, 1896년 역사적인 철도 건설의 첫 삽질이 시작됐다. 그러나 혹한과 강설, 기압 등의 혹독한 자연조건과 공사비조달의 지연, 붕괴사고 등으로 당초 7년 정도 예상했던 공기는 16년으로 늘어났다. 1912년 8월1일 스위스 독립기념일에 맞춰 유럽 최고의 철도는 개통식을 가졌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융프라우요흐역은 그렇게 완성됐다. 애석하게도 설계자 첼러는 공사가 시작 된지 3년만인 1899년 60세의 나이로 융프라우 철도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길이 9.3㎞의 레일 철도가 개통된지 84년만에 스피크스 전망대까지 개설하여 융프라우요흐는 해마다 50여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주변 볼만한 곳

융프라우를 오르지 않고 보는 여행의 맛을 즐기려면 뮤렌 지역에 가야 한다. 융프라우 건너편 1,600m고지에 위치한 뮤렌은 융프라우봉 등 3개의 봉우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지역.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위치한 뮤렌은 케이블카와 45도 경사의 케이블열차로 오를 수 있으며 타는 것 자체가 재미거리다. 뮤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아이거호텔의 테라스에서 쳐다보는 융프라우는 압권이다. 3㎞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거의 수직으로 4,000여m 솟아오른 융프라우를 보면 인간이 왜소해지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실감케 한다.

뮤렌은 영화 ‘007 여왕폐하’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쉴트혼으로 가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쉴트혼의 2,970m 봉우리에는 회전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전망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융프라우를 비롯, 사방의 경치를 즐기는 맛 또한 괜찮다.

#여행길잡이

스위스는 3개월 이내의 여행은 비자가 필요 없다.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아 유로화가 아닌 스위스프랑(SFr)을 써야 한다. 인터라켄 등 관광지에서는 달러를 받기도 하지만 현지 화폐를 챙겨 가는 것이 편하다. 1스위스프랑은 960원 안팎.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융프라우 열차 요금은 왕복167 스위스프랑. 인터라켄 동역에서 오전 6시30분 출발하는 첫 열차를 이용하면 120프랑으로 할인된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하는 첫 열차는 06시35분. 정상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만큼 관광하는 시간까지 감안해 시간을 여유 있게 잡아야 한다. 이 구간은 개인철도 구간이어서 유레일패스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유레일패스 소지자와 스위스 레일패스 소지자에게는 25%의 할인혜택을 준다. 또 할인쿠폰을 가져가면 120 스위스프랑만 내면 된다. 쿠폰은 융프라우철도 한국총판인 동신항운(02-756-7560)에 신청하면 된다(www.jungfrau.co.kr).

스위스에서는 철도와 포스트버스(우편버스)가 가장 보편적인 교통수단. 철도는 4일과 8, 15, 21일, 1개월 단위의 스위스 패스가 편리하다. 2등석과 1등석이 있으며 철도와 버스, 지하철, 전철을 횟수 제한 없이 탈 수 있다. 스위스 국철뿐 아니라 글래시어 익스프레스,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등도 탈 수 있다. 4일권의 경우 160~245 US달러. 스위스국철(0900-300-300), 스위스 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02)739-0034

가능하면 빵이나 식료품을 구입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좋다. 특히 융프라우 정상까지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보통 한나절이 소요되므로 꼭 점심거리를 준비해가자. 중간역인 클라이네 샤이데크 역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간이식당에서 우동을 판다. 융프라우요흐 역에도 카페가 있으며 빵과 음료를 판다.


사진 : 유럽의 지붕 스위스 융프라우 전경. 산마루는 하얗다 못해 파르스름한 빛이 도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 <월간 ‘광업진흥’ 2004년 2월호>

이규섭

여행작가·시인·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kyo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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