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57 칼럼니스트 2004년 3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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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과 정치개판

사람 팔자 알 수 없는 것이, 지금부터 150여년 전 지게목발 두드리던 19세 떠꺼머리 총각이 하루 아침에 왕이 됐다. 그가 바로 강화도령이며 철종인데, 전해지는 얘기 한 토막이 있다.

강화도령은 금씨 성을 가진 총각과 친구 사이였다. 둘이 헤어질 즈음, ‘어디로 가야 너를 만날 수 있느냐’고 금씨가 묻는다. 별안간 왕이 되기 위해 끌려가는 도령이니 명확한 대답은 못 하고, ‘서울에 오면 제일 큰 집으로 나를 찾아오라’는 말만 남기고 섬을 떠난다.

얼마 후 금씨는 도령이 좋아하던 개 한 마리를 짊어지고 서울의 빅하우스 대궐로 친구를 찾아간다. 우정의 뜻이야 아름다우나 헙수룩한 신원 불명자가 대궐을 무사 통과할 리 없고, 서슬 푸른 문지기가 대문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쫓아버린다.

마침 어디서 이 난감한 사태를 철종이 보고, 즉시 금씨를 들여보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법도가 벼슬 없는 상것들은 대궐 문지방을 못 넘는다 하니, 왕이라 하여 함부로 이를 어길 수도 없고, 누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것이 금씨 머리에 벼락감투를 씌워 주는 것이었다. 그 벼슬 이름이 ‘도사’였다.

궁궐 안에서 두 사람이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철종은 명령을 내린다. ‘강화유수는 금도사가 달라는 대로 농토를 줘라.’ 금도사는 강화도로 돌아가 자기 집 뒷동산에 올라 눈에 보이는 농토 전부를 요구했다.

친구 잘 둔 덕에 감투 하나 얻어 쓰고 특혜받아 떼부자 됐다는 이 얘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금도사의 후손들이 인천시 강화읍 옥림리에 살고 있다 한다.

위 얘기의 맥락도 마찬가지지만, 철종은 다정다감했다. 궁녀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고 그녀들이 새나 벌레를 죽이려 들면 못하게 말렸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쓰여 있다. 이런 성격의 강화도령을 왕으로 픽업한 이가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다. 머리가 팽팽 잘 돌던 이 여성은, 자기의 친정조카뻘인 처녀를 철종의 왕비로 잽싸게 만든다. 이로써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뿌리내리고, 조선 팔도는 개판이 된다.

직접세인 전정(田政), 인두세인 군정(軍政), 복지 정책인 환정(還政) 즉 3정을 구실로, 악다구니 세도붙이들이 지겟바리로 요즘으로 치면 차떼기로, 온 나라의 재물을 닥닥 긁어 백성들의 숨통을 조이던 내용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비극이 벌어진 밑바탕에는, 다정다감한 철종이 대소(大小)를 판별 못하고 공사(公私)를 구분 못한 책임도 한자락 깔려 있다. 최고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 못한 것이다.

- 2004. 03.11

홍 순 훈

칼럼니스트, 아하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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