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55 [칼럼니스트] 2004년 3월 11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포장만 요란한 웰빙

웰빙(well being)바람이 요란하다. 상술과 언론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복의 묘약이라도 되는 듯 호들갑이다. 이 대열에 끼지 못한 사람들의 열등감을 가차없이 자극하며, 이래도 불행하고 비참하지 않을 거냐고 삿대질이라도 할 기세이다.

인류가 등장한 이래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쫓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파랑새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쫓는 과정 즉 인생은 곧잘 한 바탕의 꿈이라든지 고통의 바다로 일컬어 왔다. 바위를 산꼭대기에 밀어 올리지만 정상에 도달하면 다시 굴러내리므로 영원히 같은 노동을 되풀이해야 하는 시지프스나, 바위산에 묶여 낮에는 독수리가 간을 쪼아먹고 밤이면 다시 생겨나는 고통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프로메테우스의 처지와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 아내 판도라의 상자 때문인가. 인간에게는 시지프스나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파랑새가 자기 집, 즉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희망을 남겨 놓았다.

웰빙은 그 희망의 확인이자 실현이다. 달리 말하면 몸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다. 경쟁과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비하고, 마음의 방향과 시각을 바로 잡아가면서 행복을 찾는 고통의 반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자는 노력이다.

인류역사는 종교, 교육 등을 통해 꾸준히 희망의 실행방안과 행복의 실체를 깨닫고 이행하도록 가르치며 안내해오고 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면 행복하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인간의 삼대독소 제거, 사소하고 평범한 모든 일에 감사할 것 등을 비롯한 소비축소, 자연친화, 인간성 회복 등이 웰빙의 전통적인 얼굴들이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말들이 아닌가. 지금 열풍을 몰고 온 웰빙은 이런 것들을 달리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 포장한 것을 가지고 탓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인 변하면 그에 걸맞게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웰빙바람은 이런 차원을 꽤 벗어난 것 같다. 상술과 언론은 이러이러한 것이 웰빙이라며 규격화, 계량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묵은 제품이나 신통찮은 상품까지 웰빙제품이라고 다시 포장하여 내놓으며, ‘웰빙족’이라는 미명하에 새로운 명품족 또는 과소비족을 추켜세우느라 야단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 그렇게 물적 위주로 실현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 목표인 행복 역시 인간의 숫자만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파랑새 찾기의 고통이 계속되어 온 것이다. 행복을 최종 확인하는 것은 정신의 깊숙한 내면인데 현재의 웰빙바람은 거기에서 상당히 비껴가고 있다.

이기심을 가능하면 줄이고 남과 더불어 사는 마음을 기르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지 않는 한 웰빙은 일과성 호객행위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잔해는 먹고 버린 과자봉지처럼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며 우리의 천박성을 비웃을 것이다. 종전의 수많은 유행성 소비열풍들이 그랬던 것처럼.

- 충남신문 2004.03.08


-----
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ynhp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