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51 칼럼니스트 2004년 3월 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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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주민투표

180여일에 걸친 집회 끝에, 지난 2월 14일 전북 부안에서 ‘원전 수거물 관리 시설’의 유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있었다. 그 결과는, 전체 투표권자 절반 이상이 유치를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자치적으로 실시한 이 투표를 인정치 않은 정부는, 합법적인 주민투표를 거친 후 다시 부지를 선택하겠다는 내용의 ‘재공고’를 2월 5일에 냈었다. 결국 산 넘어 또 산 꼴이 됐는데, 그 동안 느꼈던 점 몇 가지를 적어 본다.

첫째, ‘원전 수거물 관리 시설’의 정체가 무엇인가다. 지금까지 이 시설에 중, 저준위 수준 즉 방사능에 노출됐던 장갑 등 폐기물을 지하에 보관한다는 것으로 알고들 있다. 그래서 부안 주민들도 ‘방폐장’이란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2월 5일자 재공고를 보면, 한국원자력연구소 산하 기관인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장’도 공고자로 되어 있다. 이 사업단이 외딴 섬에서 원전 쓰레기나 뒤적거릴 것이란 판단은 할 수 없다. 만약 ‘수거물 관리’에, 고준위 즉 발전 후 남는 핵 연료의 ‘재처리’나 ‘연구’도 포함됐다면, 이는 국민이 알고 있는 관리 시설과 다르다. 정부는 시설의 설치 목적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둘째, 부안의 위도에 관리 시설을 설치하려 했던 당위성이 무엇인가다. 물론 지역 군수가 유치 신청을 했기 때문이며, 그 곳이 ‘활성 단층’이 아니기 때문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수거물을 대량 배출하는 고리, 월성, 울진 발전소는 모두 동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먼저 시설 설치가 취소됐던 ‘굴업도’도 마찬가진데, 위도는 서해안에 있어 이 배출 지역들과 정반대의 위치다. 이 형태는 운송면에서 비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운송 거리만큼 넓은 영역이 핵의 위험에 노출된다. 이런 불합리성은 시설 유치 지역 주민들의 유치 반대 근거가 된다. 다음의 합법적인 주민투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셋째, 관리 시설 설치에 정부가 관여하는 근거가 무엇인가다. 김대중정권 시절인 2001년에 한국전력이 ‘민영화’ 정책에 따라 분해됐다. 즉 현재의 한국전력공사가 송변전, 배전, 전력 판매만을 하는 정부 투자 기관으로 남고, 수력과 원자력 발전을 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 및 화력 발전을 하는 ‘한국동서발전소’ 등 5개가 민영화된 것이다. 민영화(民營化)란 말 그대로 민간이 경영한다는 뜻이다. 공공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자산과 사업의 내용이 변경되는 것이며, 공기업이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주식회사란 사기업의 형태로 되는 것이 민영화다. 당연히 사업에 따른 이익도 주주의 몫이다.

그런데 2월 5일자의 부지 공모의 재공고를 보면, 행정자치부장관, 과학기술부장관, 산업자원부장관,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장, 한국수력원자력(주)사장 5인이 공고자로 되어 있다. ‘민영화’란 상식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주)’만이 ‘전기사업법에 의한 원전 수거물 관리 사업자’로 공고자가 될 수 있다.

‘전기사업법’에 의한 사업이므로 정부가 부지 공모에 개입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규모 토목 공사 쳐놓고 관계된 법에 의하지 않는 공사는 없다. 이 정부의 개입은 공기업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 원칙이다. 그리고 사업 내용상 정부가 관여 안 할 수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주요 사업을, 더구나 1백여년 간 사회 구성원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 발전 시설을, 누구를 위해 무슨 이유로 정부가 ‘민영화’시켰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넷째, 그 동안 수거물 시설 설치를 ‘국책’ 사업이라 얘기들 했었는데, 이 표현은 위와 같은 민영화란 이유로 국책이 될 수 없다. 전자기기나 자동차 제조업이 국책 사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부안이든 어느 지역에서든 수거물 시설을 유치하면 세금으로 경제적 혜택을 준다는 관료들의 얘기는 법적으로 그들 권한 밖의 얘기다. 한국수력원자력(주) 측만이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법’에 의해 마련한 얼마의 자금을 ‘전용’(轉用)하여 혜택을 준다는 내용으로, 주민들과 논의했어야 하며 또 이후에도 법과 조직이 바뀌지 않는 한 마찬가지다.

다섯째, 위도의 시설 설치가 백지화됨으로 말미암아, 정확한 액수는 발표된 것이 없지만, 한국수력원자력(주) 측에 분명히 손실이 났는데 그 손실은 어떻게 처리되는가다. 이 손실이 발전 원가에 포함되어 공공요금인 한국전력공사의 전기요금에 붙어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한다면 이것은 잘못이다. 이런 계산 방식은 민영화의 원칙에 어긋나며, 그들 손실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 자체가 책임져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그들 책임을 제대로 수행했는가다. 이 의문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면, 몇 년 동안 정부는 ‘퍼 주기’란 비판을 들어가며 북한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북한의 신포 지구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 발전소 일부도 건설했다. 또 얼마 전에는 대만의 핵 폐기물을 북한에서 받아들이려 했었다.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정부는 원전 수거물 처리에 대한 어떤 제안도 북한에 한 것이 없다. 해야 할 일을 모르면 무능한 것이다.

- 2004. 03.03

홍 순 훈

칼럼니스트, 아하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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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lumnist.org/h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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