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46 [칼럼니스트] 2004년 02월 24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명함으로 만든 소중한 인연

첫 직장에서의 좌절을 딛고 입사한 두 번째 직장은 문화투자회사. 구인공고도 없었던 회사 게시판에 내가 이 회사에 취직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무모하게 협박(?)하고 어렵게 대표님과 면접을 보게 되었고, 대표님은 경험도 미천한 사회 초년병에게 그 가능성만으로 연구원이라는 인턴직책을 맡기셨다. 나에게 주어진 인턴기간은 3개월,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무모한 열정이 자신감이라는 에너지를 무한하게 발산시키고 있었고, 운도 따라주어 입사 2개월 만에 인턴딱지를 떼 버리고 3개월의 파견기간을 거쳐 마케팅팀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늘 꿈꾸었던 마케팅팀장 직책을 맡고 보니 나도 모를 책임감에 조바심까지 나기 시작했다. 성과와 실적이 늘 중압감으로 다가왔고, 서두르지 말라는 대표님의 충고도 그 당시에는 격려로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회사에 대한 공헌과 내 브랜드를 완성시키겠다는 의욕이 앞서 있었던 시간.

어느 날,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서 책상정리를 하다가 6개월 전 발급 받고 채 몇 장도 뿌리지 못한 연구원 명함을 발견한 것은 소중한 인연이 시작되는 행운이었다.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고 다시 사용할 수도 없는 이 명함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명함을 활용한 마케팅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출범한지 1년이 채 못된 신생 벤처기업이었고, 보다 많은 네트워크가 필요한 실정이었다. 또한 나의 업무도 제휴와 회사홍보에 치중되어 있었던 터인지라 명함 200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대상에게 배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연구원 명함을 모두 챙겨서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한 것은 명함을 발견한 날로부터 정확히 1주일이 지난 일요일이었다.

그 당시 출판계에는 벤처기업 열풍을 타고 수많은 관련서적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회사의 중역이상이 되는 분들이 많이 구입하는 경영관련서적이 내가 생각한 명함마케팅의 대상이었다. 슬며시 서점 직원의 눈치를 살피며 명함을 내가 노리는 책 속에 한 장씩 삽입하기 시작했다. 200장을 모두 삽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정도. 내 명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분명 연락하리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명함마케팅을 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회사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낯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책을 구입해서 읽다가 내 명함을 발견했는데 관심이 있으니 한번 만나자는 어느 기업 이사님의 전화였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받고 보니 이상한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등의 고민을 안고 결국 약속한 식사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전화를 주신 분은 국내에서 유명한 중견 게임업체의 이사님이셨다. 명함을 새로(?) 교환하고 격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요지인즉슨 그 분께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큰 기업을 만나서 내 명함을 건네셨는데, 우리 회사의 사업방향과 그 기업에서 새로 추진하는 사업이 잘 어울릴 것 같으니 한번 만나보라고 소개를 하셨다는 것이었다. 감사인사를 거듭 전하며 회사로 돌아온 나는 이 사실을 대표님께 보고 드렸고 결국 그 회사와 만나서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합의를 했다. 이 실적으로 나는 회사 내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 되었고, 여러 가지 포상도 받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업이 진행되면서 넘어야 할 관문이 많았고 그렇게 나는 실적과 성과에만 매달리며 정작 중요한 사람을 놓치고 말았다. 사업이 진행되면 가장 먼저 연락 드려야 할 그 이사님께는 감사인사조차 드리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의 흐르고 나는 정든 회사를 떠나 미국연수를 거쳐 다시 창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창업 후에도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보고 그 이사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정말 오랜만이라며 식사라도 한번 하자는 전화였다. 너무 미안한 나머지 나는 사과인사도 못하고 약속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사님을 만나던 날, 이사님께서는 식사를 사주시며  앞으로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따뜻한 격려까지 해주셨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아마 그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결국 창업한 회사도 어려움에 직면해서 당분간 발전적 해체를 결정하게 되었다. 당장 생활전선에 다시 뛰어들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이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당신이 잘 아는 애니메이션기업이 좋은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데 옆에서 좀 도와주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흔쾌히 수락한 나는 소개 받은 회사를 만나서 계약을 하고 일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이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사님께서는 내가 사람 제대로 소개 시켜준 것 맞지? 하시며 잘 되면 밥 한번 사라고 크게 웃으셨다.

지금 나는 대한민국을 깜짝 놀라게 할지도 모를 프로젝트를 그 이사님의 도움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문화마케팅 프리랜서로 사는 것이 아직은 안정적이지 못해 이런저런 핑계로 아직도 그 이사님께 식사 대접 한 번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나와의 약속은 사람을 위한 사람이 주인 되는 사회에 일조하고 싶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스스로 다짐한 의지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 이사님을 찾아 뵐 작정이다. 소개해주신 프로젝트의 성패여부를 떠나, 일상의 피곤함과 번잡함을 떠나, 사람이 만나고 서로 돕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그 이사님을 통해 깊이 통찰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이 글이 실린 여행스케치에 문화상품권 한 장 실어 이사님께 선물하면서 이제는 당당히 부탁드릴 것이다.

"이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지금까지 저 믿어주셨던 마음 끝까지 변치 말아주세요. 제 개인의 성공을 떠나 이사님의 믿음과 신뢰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소개 많이 부탁 드립니다" 라고...

사람은 변한다. 하지만 사람이 만나고 교류했던 경험과 추억은 변하지 않는 기록이다. 스스로의 지위와 환경을 떠나 소중한 인연의 끈을 버리지 않는 사람, 비록 실수했던 관계도 이러한 마음만 간직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 2004.02

김우정
문화마케팅 전문가, 문화마케팅센터 대표

lutain@freechal.com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