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45 [칼럼니스트] 2004년 2월 2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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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성이 희망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올림픽선수단이 귀국하던 날이었다. 그 가운데서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은 한 선수를 놓고 취재단과 팬들이 거의 납치할 듯한 태세로 공항에 몰려 들었다.

선수의 가족과 체육회 임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할지 고민이었다.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받은 전화에서 몸상태가 좋지 않아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는 아들의 말을 들은 선수 부모는 빨리 데려가 뭘 좀 먹여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언론과 팬들이 저렇게 진을 치고 있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체육회 임원들이 수단을 강구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기자회견만 마치고 선수를 빼돌려 비밀리에 예약해 놓은 장소로 데리고 가기로 한 것이다. 비슷한 차량을 여러대 동원했기 때문에 체육회 사람들과 친지들도 선수가 탄 차를 구별해 내기 힘들 정도였다.

그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돼 취재단과 팬들을 무사히 따돌리고 차가 공항을 막 빠져 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어떤 여자가 양팔을 벌리며 정면에서 차를 막았다. 깜짝 놀라 차를 멈추고 보니 어느 방송사의 기자였다.

운전사 옆에 타고 있던 체육회 간부가 문을 열고 “ O기자 좀 봐 줘. 다 알만한 처지에 왜 그래?” 하며 애원조로 말했다. 여러 언론사가 그 선수를 붙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방송에만 나오면 다른 경쟁사들이 자기를 거의 죽이려고 덤벼들테니 제발 좀 봐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그 여기자는 듣는 척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가 앉았던 자리로 밀고 들어왔다. 자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 간부 위에 포개 앉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면서 이 차는 자기 회사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밤 11시 특별인터뷰 시간에 그 선수가 예정되어 있는데 안 가면 펑크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쪽 사정도 급하지만 선수가 피로와 배고픔으로 지쳐 있으니 좀 양해해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기자와 선수측의 주장이 극도로 치달아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여기자가 “내가 남자라면 이렇지 않는다. 선수 인터뷰에 실패하면 부장이 ‘역시 여자라서 안된다’란 말을 할 것이 뻔하다. 나는 그런 말 듣고는 살 수 없다. 그러니 선수측이 양보해달라”며 절규하둣 소리를 질렀다. 이 말에 분위기가 급변, 결국 그 차는 방송국으로 먼저 갔고 인터뷰는 무사히 방영되었다.

그녀의 한밤중 외침에는 그 동안 이땅에서 부당하게 억압과 차별을 당해 온 여성들의 불만과 원한이 응축되어 있었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입장과 모든 것을 대변한 절절한 항의가 아닐 수 없었다.

역사 이래 동서고금이 여성 억압의 길을 걸어왔지만 조선조 500년 동안 유교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우리나라는 특히 심했다. 여성의 능력을 사장시킨 것은 물론 기본 인권마저 가혹하게 짓밟았다. 한 사회의 집단적 경험과 지혜를 단적으로 반영한다는 속담을 보면 그 실상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우리의 속담은 여성과 장애인, 상공업 종사자에 대해서는 편견과 비하를 가차없이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를 비롯 ‘여자 말을 잘 들으면 패가하고 안 들으면 망신한다’ ‘여자는 사흘을 안 때리면 여우가 된다’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런 정신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나라를 경영했으니 그 모양 그 꼴이 되었고 결국은 일본에게 먹힌 것이다. 실수는 한번으로 끝나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이 되고도 이런 폐습을 정리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여성 에너지를 사장하거나 방치하는 실수를 반복해 왔다.

다행히도 근년에 들어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이 늘었다. 정치 경제 교육 언론 사업 의약 국방 등 각 분야에 많이 진출했다. 예전에 비하면 가히 눈부시다고 할 만하다. 그리고 똑같은 조건에서 남성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많다. ‘여자치고는 잘 한다’는 상대적 조건부 평가가 아니다. 여자가 갑자기 남성보다 우수해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사장되고 저평가되어 왔던 여성의 진정한 힘이 현실화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의 활동에 대해 공정하고 타당한 대우를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면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할 분야가 그리 많지 않다. 아직도 구습과 남성권력의 맹목적 편견이 여성들의 길을 막고 있다. 그건 여성만의 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희망이자 사회를 이끌어 갈 강력한 동력인데도 말이다. 남녀 차이에 대한 오해가 넓고 두텁게 깔려 그게 말끔히 걷히기에는 먼 실정이다.

관계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유전자 3만여개 가운데 남녀가 다른 것은 약 15개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갈라지는데 이것은 생리적인 차이이지 능력의 우월을 가르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성권력 일방의 이 사회는 생리적 차이를 능력의 우열로 의도적으로 왜곡, 여성 차별의 도구로 악용해 왔다. 차이란 것은 문자 그대로 단순한 다름인데 이를 잘나고 못난 경계로 삼아온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이제는 남녀평등이 목표가 아니라 여성이 사회발전의 핵심임을 인정하는 선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성이야말로 교육,사회보장제도, 물(21세기에는 물로 인한 전쟁이 빈번하리라는 경고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분배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볼 때 남자를 교육시키는 것보다 여성을 교육시키는 것이 사회에 더 큰 보탬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를 특정인이 여성 편을 드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건 저차원의 착각이고 폐습에 얽매인 구차한 비난이다. 자크 아탈리 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자연과 생명의 섭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잘못된 남성 기득권을 버리고 여성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인류의 진정한 진보를 기약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타개하려면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잠재력이 풍부한 여성의 힘을 더욱 광범위하게 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부존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요 희망이기 때문이다. 능력과 자질이 풍부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더욱 늘어나고 이들이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해피 다이어리' 15호(20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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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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