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37 [칼럼니스트] 2004년 2월 13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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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네티즌의 직설법

웹에는 은유의 미덕이 더 필요하다. 은유는 표현하려고 하는 대상과 유사한 사물이나 현상을 빗대어 간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기법인데, 직설법보다 메시지의 전달 속도는 더디지만 결국은 더 큰 영향을 준다. 은유가 담긴 글은 독자에게 한 번 더 깊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은유는 감정의 절제를 이끌어 상호간의 직접 충돌을 막아주는 완충제이며 윤활제의 역할을 한다.

뜬금 없이 '은유' 에 관한 얘기를 또 꺼내는 것은, 최근 뜨거운 '웹 이슈' 중 하나였던 '한-일 네티즌간의 싸움' 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분쟁의 불씨는 한국의 문화를 비하하는 자료를 수록한 'K국의 방식' 이라는 일본 사이트가 국내에 알려지면서 일기 시작했다.

시기상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독도는 일본땅' 이라고 한 고이즈미 총리 발언, 한국의 독도우표 발행 계획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도 기념 우표를 발행하자고 제안한 아소 다로 총무상의 제안 등이 여기에 기름을 들어붓는 격이 되어 한국과 일본 네티즌간의 감정 싸움으로 비화한 것이다.

언론 매체들도 덩달아 흥분하며, '한일 사이버 전쟁', '사이버 임진왜란', '갑신왜란' 등 선정적이고도 위험한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한국 네티즌은 세계 최강' 이라는 비뚤어진 자부심이 '잠자는 한국 네티즌의 콧털을 감히 건드리다니' 하는 오만으로 흘러버린 것이다. 과연 '사이버 대전' 에서 승리해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쪽의 서버를 접속불능 상태로 만들어 승리감을 얻고 싶었던 것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겁게 격분한 직설법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은유법이었다. 'K국의 방식' 에서 일본 네티즌이 한국을 비하했다면, 한국 네티즌은 'J국의 방식' 이란 사이트에서 일본에 대한 '피의 보복' 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꾸짖었어야 했다. 그래서 'K국이 방식'이란 부끄러운 사이트를 만든 네티즌을 일본 네티즌 스스로가 벌하도록 했어야 한다.

'K국의 방식' 이 마치 일본 네티즌 전부의 의견을 대변하는 듯 흥분하고 소동을 부추긴 사건은 한국 네티즌의 직설법과 많은 언론매체가 손잡고 빚어낸 흉물스런 작품이었다. 최소한 언론매체만이라도 고이즈미 총리발언과 'K국의 방식' 을 잡탕밥처럼 범벅하여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란 밥상에 차려놓지는 말았어야 했다.

한일 네티즌 싸움이 최고점을 지나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무렵, 26일엔 일본 유학 중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씨의 3주기 추모 행사가 열렸다. 한국 네티즌의 직설법이 고 이수현씨의 고귀한 정신에 누를 입혔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창피하지 않아도 될 것을 떳떳하게 말하는 웹의 직설법과 부끄러워해야 할 것을 뻔뻔하게 말하는 웹의 직설법은 전혀 다르다. 웹 공간에서도 은유의 미덕이 넘쳐 나기를 바란다. 발랄한 직설법과 차분한 은유법의 미덕이 공존하는 건강한 웹 문화를 보고 싶다.

    - <한겨레> 2004년2월 9일

이강룡
readme[a]dreamwiz.com / 웹 문화 비평 readme.or.kr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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