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35 [칼럼니스트] 2004년 2월 12일
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 딴 글 보기 | 손님 칼럼 | 의견함 | 배달신청/해지 | columnist.org |
저만 잘난 사람들

퇴직자들이 대부분인 어느 모임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 끝에 ‘전에 다녔던 회사나 조직에서 어느 유형의 사람이 동료나 부하직원을 가장 힘들게 했던가’라는 물음이 나왔다. 이제는 현장을 떠난 사람들이라 상당한 거리를 두고 꽤 객관적으로 당시 동료와 상사들을 생각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답은 여러 가지였다. 아첨을 일삼는 사람, 생색내기 좋아하는 사람, 능력이 부족한 사람, 요리조리 핑계대기 잘 하는 사람 등 많은 유형이 거론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유형이 남과 대화할 때 자기 생각만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과 자신이 매우 우수하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각자가 살아 오면서 경험과 배움을 통해 얻은 지식 즉 정보 교환이 대부분이다. 그런만큼 누구도 독점할 수 없고 또 그렇게 완벽한 정보를 한 개인이 갖출 수도 없다.

그럼에도 단정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어서 자기 말이나 의견 외에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딱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사람일수록 아는 범위가 좁고 한정돼 있지만 본인은 그렇지 않다고 벅벅 우긴다.

서기 1년에 인간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기술이 1750년에 배로 늘었다고 한다. 지식의 수명이 그만큼 길었다는 뜻이다. 그 다음 배증은 150년 뒤인 1900년이었다. 이어 50년 뒤에 또 배로 늘었다. 지식증가에 이처럼 가속도가 붙으면서 10년 뒤인 1960년에 다시 두배로 늘었고 현재는 거의 5년마다 배증하고 있다. 제록스사는 한수 더 떠 자기네 광고에서 2000년 이후에는 73일마다 이용 가능한 지식이 두배로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의 빠르기로 지식과 정보의 양이 늘어나는 것이다. 지식의 수명은 이에 반비례하고 있다. 1세기 전까지는 논어 맹자 등 사서 삼경만 통달하면 평생을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반세기 전에는 대학은 말할 것 없고 초등학교만 성실하게 나와도 어느 정도의 지적 활동이 가능했다. ‘아랫 동네 김씨집 아들은 소학교만 나와서도 면서기를 잘 하는데 너는 중학교까지 나와서 그 모양이냐’는 식의 꾸중이 크게 공감을 얻던 시절이었다. 한번 배운 지식과 정보의 수명이 그만큼 길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과장해서 말하면 대학 1학년 때 배운 지식이 4학년 때는 쓸모 없을 정도로 단명해지고 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학 기술 쪽은 2년도 안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문 사회 쪽도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 수명이 급속히 짧아지고 있다. 오늘 배운 것이 내일도 유용할지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다.

대학까지 16년 배운 것 가운데 계속 쓸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이상의 교육기관이나 독서 등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새로이 재충전하지 않으면 하루도 제대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최종적,절대적인 것이라고 잘라서 말하니 얼마나 불쌍하고 딱한가. 그게 자기만으로 한정되면 그만이지만 주변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회사나 조직에 해를 끼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우기며 절대 남의 말은 아예 무시해버린다. 또 남이 말을 마치도록 놔두지 않는다. ‘에이, 그거 그게 아니라...’하며 중간에 뚝 자르고 덤벼들고 상대방이 싫어하든 말든 혼자 떠든다. 전문화, 세분화된 시대에 한두가지 아는 것으로 모든 상황에 대응하려고 하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개인과 개인, 회사와 회사, 국가와 국가간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정보량은 홍수를 이루고 있는데 낡고 굳어져 유효기간이 지난 단순한 지식으로 동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조직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회사나 국가의 사기 및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런 사람과 안팎을 이루는 유형으로 자기가 매우 우수하다고 굳게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우수하고 똑똑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지력 또는 지식이 풍부하고 지혜가 남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혜란 선악, 사물의 이치에 대한 구분 능력이며 주변과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으로 지식과 달리 일정한 수명이 없다. 고대 그리스나 중국에서 현명한 이들이 구사했던 지혜가 오늘날에도 조금도 다름없이 통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얼마나 유능하고 똑똑한지 돌아볼 수 있는 역사의 거울과 과거의 사례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자기가 똑똑하고 우수하다고 맹신하는 이들은 학교시절 학업성적, 명문학교 그리고 사회적 성공이 바로 지혜의 결과라고 착각하기 일쑤다.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지혜는 그게 아니다.

자신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돌아볼 줄 안다면 그럴 수 없다. 종적으로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우수하고 똑똑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 ‘나는 우수하고 똑똑하다’는 장담이 그리 쉽게 나오지 못할 것이다.

또 횡적으로 보자. 지금의 직장, 이웃 나아가 이 사회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기못지 않게 훌륭한 이들이 많음을 알 것이다. 문을 열고 세계로 나가서 자신이 한심한 청맹과니임을 곧 깨달아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자연과 우주 앞에 인간이 안다고 하는 것이 매우 하찮고 미미한 것이라는 사실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절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툭하면 자기만 잘 났다고 설쳐 동료와 친구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직장의 부하직원 및 조직의 피로도를 높게 만든다. 이는 어느 유형의 인간보다도 해로운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늘 시끄럽고 불안정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각계각층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것이 많고 훌륭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옳다고 믿었던 지식이나 정보보다 더 좋은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음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대안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 경직되고 폐쇄적인 안목과 사고방식에 자기를 가두지 말고, 총체적, 거시적으로 사물과 사람을 읽으며, 넓고 다양한 아량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급변하는 사회와 범람하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기의 적응력을 향상시키고, 직장과 조직 그리고 동료들의 활력을 증가시켜 주는 길이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나라와 사회는 안정과 건강을 되찾을 것이며, 일반시민들은 살맛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 '지방행정' 2월호(2004 02)


-----
박연호
칼럼니스트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http://columnist.org/ynhp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니스트]를 평가해 주십시오. [[평가]]